극장 개봉 신작 <여행과 나날>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을 통해 청춘의 공기와 일상의 빛을 가장 섬세하게 포착해 온 미야케 쇼 감독. 그가 이번에는 눈 덮인 산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신작 <여행과 나날>은 슬럼프에 빠져 언어를 잃어버린 한국인 각본가가 낯선 설국으로 떠나, 그곳의 무심한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우는 여정을 그립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감독과 배우의 앙상블입니다. 일본 영화계의 '빛과 바람의 연금술사' 미야케 쇼 감독은 주인공 '이(Lee)' 역으로 한국 배우 심은경을 선택했습니다. 심은경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고독과 창작의 고통을 섬세한 표정 연기로 빚어냅니다. "국적이나 언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라는 감독의 말처럼, 카메라는 심은경이라는 배우가 지닌 투명하고도 단단한 질감을 있는 그대로 담아냅니다.
전작들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비췄다면, 이번 작품에서 미야케 쇼가 천착한 것은 '바람'입니다. 야마가타현의 깊은 숲과 설원을 배경으로, 카메라는 눈보라가 치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순간들을 집요하게 응시합니다. 주인공 '이'가 무뚝뚝한 여관 주인 '벤조'와 함께 잉어를 잡으러 가거나 눈을 치우는 육체적 노동을 하는 동안, 영화는 대사(언어) 대신 바람 소리와 눈 밟는 소리(감각)로 스크린을 채웁니다. 이는 말에 지친 주인공에게, 그리고 소음에 지친 관객들에게 전하는 가장 영화적인 위로이자 '감각의 테라피'입니다.
제목 <여행과 나날>은 얼핏 모순처럼 들립니다. '여행'은 비일상의 이벤트이고, '나날'은 반복되는 일상이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이 두 단어가 충돌하지 않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도피하듯 떠나온 여행지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새 소중한 '나날'이 되고, 그 시간들이 다시 주인공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됩니다. 츠게 요시하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미야케 쇼 특유의 리듬감으로 재해석된 이 작품은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실은 가장 경이로운 영화적 순간임"을 증명합니다.
<여행과 나날>은 겨울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따뜻한 손난로 같은 영화입니다. 로카르노가 선택한 압도적인 영상미와 심은경 배우의 깊어진 눈빛을 확인하고 싶다면, 올겨울 이 조용한 여행에 동행해 보시길 권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음에서 벗어나, 당신의 마음속에 부는 바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