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할 수 있을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에밀리아 페레즈>

by 조하나




인간은 과연 변할 수 있는 존재일까요?


아니, 더 근원적으로 질문해 봅시다.


한 인간의 영혼 안에 '악마'와 '성녀'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멕시코 카르텔이라는 폭력의 세계와 뮤지컬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충돌시키며, 이 묵직한 철학적 난제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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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보스 '마니타스'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 여성 '에밀리아 페레즈'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리며, '인생 2막'이라는 달콤한 단어 뒤에 숨겨진 도덕적 모순과 구원의 정당성을 묻습니다.







괴물의 죽음, 그리고 성녀의 탄생


영화의 전반부, 마니타스는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악(惡)' 그 자체입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성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권력을 사용하고,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죽음을 위장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에밀리아'는 마니타스와 정반대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녀는 카르텔이 학살한 실종자들의 시신을 찾아 유가족에게 돌려주는 자선사업가가 되어 '선(善)'을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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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관객은 거대한 딜레마에 봉착합니다.


에밀리아가 베푸는 선행은 진심입니다. 그녀 덕분에 수많은 유가족이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찾아주는 시신들은 과거의 자신(마니타스)이 죽이고 유기한 사람들입니다.


과연 마니타스가 죽고 에밀리아가 태어났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학살의 죗값은 소멸하는 것일까요?








단절된 과거, 기만적인 '인생 2막'


현대 사회는 종종 "과거를 털고 새롭게 시작하라"며 '인생 2막'을 장려합니다. 하지만 <에밀리아 페레즈>는 묻습니다. 속죄 없는 새 출발이 과연 정당한가?


에밀리아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거나 처벌받는 대신, 막대한 부를 이용해 신분을 세탁하고 도덕적 우위를 점합니다. 그녀의 선행은 타인을 위한 이타심일까요, 아니면 자기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나르시시즘의 연장일까요?





영화는 에밀리아를 무조건 비난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허용을 통해 그녀의 내면을 노래하게 함으로써, 그녀가 느끼는 해방감과 죄책감의 기묘한 공존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지만, 그녀의 천국은 결국 타인의 피와 눈물(마니타스의 유산)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었습니다.







선과 악, 그 불가분의 샴쌍둥이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되는 이분법적 세계를 거부합니다. 흉악한 범죄자 마니타스와 자애로운 성녀 에밀리아는 결국 하나의 육체, 하나의 영혼에서 나온 존재들입니다. 영화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그리고 '악'에서 태어난 '선'이 과연 온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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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한 조 샐다나,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셀레나 고메즈의 앙상블은 이 복잡한 도덕극에 강렬한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특히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보여주는, 야수와 성녀를 오가는 연기는 훌륭합니다.(그녀는 지난 칸영화제에서 트랜스젠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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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페레즈>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에밀리아의 눈물에 속을 것인가, 아니면 마니타스의 피 냄새를 기억할 것인가.


과거를 지우고 선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려 했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 그것은 숭고한 '구원기'일까요, 아니면 가장 화려한 '자기 기만극'일까요.


판단은 당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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