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계의 광장들
2025년 12월 3일, 다시 겨울입니다. 탱크와 총검으로 권력이 또다시 헌법을 유린하려 했던 2024년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 하지만 대한민국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엄동설한에 패딩 하나 걸칠 시간도 없이 슬리퍼를 신고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과 계엄군의 침투에도 기어이 의사봉을 두드렸던 입법부의 절박함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여기, 우리와 비슷한 겨울을 났으나 서로 다른 봄을 맞이한 세 나라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 3편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한국의 촛불이 홍콩의 우산이 되고, 우크라이나의 방패가 다시 한국의 촛불을 지키는 힘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보이지 않는 연대의 증거들입니다. 우리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다짐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세계의,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를 돌아봅니다.
12.3 불법 비상계엄, 우리는 군인의 총칼뿐만 아니라 검찰과 사법 카르텔의 법과 제도를 악용한 ‘친위 쿠데타’의 위험성을 목격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브라질의 기득권 카르텔이 어떻게 ‘탄핵’과 ‘법률’이라는 합법적 도구를 이용해 민주 정부를 무너뜨리는지 보여줍니다.
작품 속 브라질의 의사당과 1년 전 한국의 국회는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브라질의 의사봉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룰라의 후계자, 호세프 대통령을 찍어내는 흉기였지만, 한국의 의사봉은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주의를 소생시킨 도구였습니다. 시민의 감시가 없다면, 입법부와 사법부라는 시스템도 언제든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후 브라질은 극우 보우소나루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의 암흑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2023년 대선 불복 폭동을 딛고 룰라 대통령이 복귀하며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특히 폭동을 배후 조종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게 최근 중형이 확정되며 “민주주의를 위협한 자는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교훈을 역사에 남겼습니다.
혹한의 추위,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그리고 공권력의 폭력 앞에 맨몸으로 맞선 시민들. 이 작품만큼 1년 전 우리의 겨울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소환하는 다큐멘터리는 없습니다. 93일간의 유로마이단 혁명 기록은 ‘자유’라는 단어의 무게를 물리적 통증으로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다행히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승리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독재자를 몰아낸 대가로 참혹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나무 방패 하나로 총탄을 막아내는 청년들의 눈빛을 보며 우리는 일종의 부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평화로운 승리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속 수많은 ‘마이단’들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2014년 광장의 청년들은 이제 참호 속의 군인이 되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3년 넘게 이어지는 전쟁. 그들은 여전히 전 세계 민주주의의 최전선 방파제로서 고독하고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실패한 혁명’의 기록입니다. 거대 제국 중국에 맞서 홍콩의 자치를 지키려 했던 10대 소년 조슈아 웡과 친구들의 투쟁기입니다.
우산 혁명 당시 조슈아 웡은 “한국의 촛불혁명은 홍콩 민주화의 본보기”라며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반대로 12.3 비상계엄 당시, 많은 한국 시민들은 “지금 막지 않으면 우리도 홍콩처럼 된다”는 공포와 절박함으로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준 셈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성공한 우리가 실패한 그들을 위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홍콩의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차례 투옥된 조슈아 웡은 현재 또 다른 기소가 더해져 무기징역에 처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제국은 소년의 청춘을 가뒀지만, 그가 쏘아 올린 자유의 염원까지 가두진 못했습니다.
12.3 불법 비상계엄 실패 1주년. 3편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의 승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기적적인 것인지 확인하는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싸우고 있는 또 다른 시민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브라질의 법정, 우크라이나의 참호, 홍콩의 감옥, 그리고 서울의 광장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뜻하고 안전한 집에서 이 치열한 기록들을 시청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호사스럽고 강력한 ‘12.3 불법 비상계엄 실패’ 1주년 기념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