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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사랑한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의 BEST 3

사랑과 증오, 그 폭발하는 감정의 미학

by 조하나


우리는 종종 영화를 논리적인 '이야기'로 이해하려 합니다. 하지만 어떤 영화들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 먼저 닿습니다. 터질 듯한 색감, 귀를 찢을 듯한 음악, 그리고 서로를 할퀴면서도 끝내 끌어안는 애증의 인물들. 19세에 칸 영화제를 뒤흔들며 등장해 '젊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자비에 돌란의 세계가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과거 자비에 돌란의 영화들을 국내에 배급하는 앳나인과의 협업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는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영화와 OST를 해설하는 글을 기고하고, 밴드 쏜애플의 윤성현과 함께 GV를 진행하며 돌란의 에너지를 현장에서 함께 나누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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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비에 돌란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감각적이고 압도적인 세 편을 소개합니다. 이 작품들은 그가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발을 들이기 전, 고향인 캐나다 퀘벡에서 쏟아냈던 가장 순도 높은 초기작들이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진출 이후의 그의 작품들이 다소 정제되거나 결이 달라졌다면, 이 시기의 작품들에는 타협을 모르는 20대 천재의 치기 어린 열정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날것 그대로 펄떡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퀴어'나 '성장'이라는 장르에 가두기엔 아까울 만큼 파격적입니다. 과감한 화면비 파괴와 원색적인 미장센, 그리고 배우들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응축된 시각 예술의 정점이라 할 수 있죠. 자비에 돌란의 가장 '돌란스러웠던' 순간들을 목격할 수 있는, 이성보다 본능을 자극하는 이 스타일리시한 걸작들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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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색으로 써 내려간, 불멸의 러브레터

<로렌스 애니웨이>


2012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여우주연상 & 퀴어 종려상 수상

2012년 토론토 국제영화제 최우수 캐나다 영화상 수상


"반항하는 거야?"

"아니요. 이건 혁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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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미장센의 향연


자비에 돌란의 미학적 야심이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 작품입니다. 감독은 로렌스와 프레드, 두 연인의 10년에 걸친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대사보다 이미지를 택합니다. 하늘에서 오색 옷가지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환상적인 장면이나, 인물의 등 뒤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등은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환희와 절망을 시각적으로 폭발시킵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쏟아지는 강렬한 색채와 90년대 팝 음악은 당신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마법 같은 체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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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를 초월한 관계의 본질


이 화려한 영상미는 '사랑의 한계와 영원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전달하는 그릇이 됩니다. 영화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하려는 로렌스의 성전환 수술 자체보다 그 변화가 연인 프레드와의 관계를 어떻게 뒤흔드는지에 집중합니다.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너는 그냥 로렌스일 뿐이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고, 그럼에도 다시 서로를 갈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젠더를 넘어선 사랑 그 자체의 본질을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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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면비에 가둔 구원과 파국, <마미>


201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2015년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 외국어영화상 수상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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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활용한 혁신적인 연출


영화 <마미>는 현대 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화면 연출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감독은 인스타그램 사진처럼 좁은 1:1 정사각형 화면비 안에 인물들을 가두어 버립니다. 이는 ADHD 아들과 억척스러운 엄마, 그리고 소심한 이웃 여자가 느끼는 답답한 현실과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폐쇄적인 관계를 시각적으로 은유합니다. 그렇기에 영화 중반,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 흐르며 아들 스티브가 답답한 화면을 양손으로 젖혀버리는 순간, 관객이 느끼는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는 그 어떤 블록버스터의 클라이맥스보다 강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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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그 양날의 검


이 파격적인 형식은 '모성애'가 가진 구원과 파괴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엄마 디안은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때로는 그 사랑이 아들을 질식시키는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영화는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큰 힘이자 무거운 형벌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가장 불안정한 엄마와 아들이 서로를 가장 뜨겁게 끌어안는 이 이야기는, 정상 가족의 범주를 벗어난 곳에서 피어나는 가장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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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해서 가장 상처주고 싶었던,

<아이 킬드 마이 마더>


2009년 칸 영화제 '감독 주간' 3관왕 (예술영화상, SACD상, 젊은 시선상)

2010년 밴쿠버 비평가 협회상 4관왕


"가장 주목해야 할 천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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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에너지


자비에 돌란이 불과 19세에 만든 이 데뷔작에는 어떤 기교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펄떡이는 '날것'의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포착한 거친 앵글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속사포 대사, 그리고 흑백의 독백 장면을 교차하는 편집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사춘기 소년의 불안한 내면 그 자체입니다. 세련되게 정제되지 않았기에 더욱 가슴에 박히는, 천재 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도발적인 선언문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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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살해와 성장통


이 거친 연출은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독립하고 싶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소년의 '이중적인 심리'를 적나라하게 포착합니다. 제목의 '살해'는 실제 범죄가 아닌, 유년 시절의 안식처였던 엄마를 마음속에서 지워내야만 어른이 될 수 있는 소년의 성장통을 의미합니다. 촌스러운 엄마의 패션과 말투에 짜증을 내면서도 밤이면 사랑받길 원해 우는 후베르트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었을 '가장 사랑해서 가장 상처 주고 싶었던' 그 시절의 기억을 아프게 소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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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 돌란의 이 세 작품은 '퀴어 영화'나 '예술 영화'이기 이전에, 영화적 쾌감과 스타일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수작들입니다.


파격적인 연출에 놀라고, 터질 듯한 감정선에 전율하다 보면, 어느새 그 안에 담긴 '관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가슴에 남습니다. 자비에 돌란이 설계한 '감각의 폭풍' 속에 빠져보세요. 이 작품들이 주는 시각적 충격과 묵직한 여운은 당신의 시간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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