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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갇힌 뮤즈 <피에르 보나르, 마르타 보나르>

11월 28일 개봉

by 조하나



색채 속에 갇힌 사랑, 캔버스 너머의 진실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의 거장, 피에르 보나르. '행복의 화가'라 불리며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찬란한 색채로 옮겼던 그의 캔버스에는 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평생 그의 그림 속에서 씻고, 먹고, 잠들었던 여인 마르타.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의 신작 <피에르 보나르, 마르타 보나르>는 미술사 뒤편에 박제되어 있던 이 '뮤즈'의 존재를 현실의 땅 위로 불러내, 두 사람이 함께 쌓아 올린 예술과 사랑의 연대기를 재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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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쓴 연애편지이자 그림자에 관한 고백


영화의 시선은 보나르의 화풍처럼 빛과 자연의 질감을 탐미합니다. 센강 변의 목가적인 풍경과 남프랑스의 뜨거운 햇살, 그리고 마르타가 끊임없이 머물렀던 욕실의 물기 어린 공기까지. 카메라는 인상주의 회화의 붓터치처럼 부드럽고 유려하게 움직이며 두 사람의 삶을 감쌉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미장센 이면에는 거짓말로 시작된 관계, 폐쇄적인 생활, 그리고 치명적인 외도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영화는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라는 예술과 삶의 아이러니를 시각적으로 웅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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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회화, 그리고 세실 드 프랑스의 압도적 존재감


제76회 칸 영화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되어 첫선을 보인 이 작품에 대해 해외 평단은 "마치 인상주의 명화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황홀경"이라며 촬영과 미술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특히 마르타 역을 맡은 세실 드 프랑스의 연기는 영화의 백미로 꼽힙니다. 귀족 출신 고아라 속이고 이름조차 바꿨던 마르타의 기이한 신비로움과 신경증적인 예민함, 그리고 예술가를 지배하는 동시에 그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복합적인 내면을 완벽하게 형상화했다는 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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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공생과 구속'의 드라마


일부 평단은 이 영화가 전형적인 전기 영화의 문법을 따른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감독이 '뮤즈'를 다루는 방식에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영화는 보나르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대신, "당신은 나를 그림 속에 가뒀다"는 마르타의 절규를 통해 창작이 타인의 영혼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냉정하게 응시합니다. 이는 단순한 낭만적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었던 두 영혼의 치열하고도 고통스러운 '공생'에 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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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보나르, 마르타 보나르>는 묻습니다. 예술가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대상을 그린 자신의 그림을 사랑하는 것인가. 마르타가 없었다면 보나르의 색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색채의 기원'이자, 영원히 그림 속에 살아야 했던 한 여인에게 바치는 늦되지만 가장 아름다운 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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