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서양 백인 중심 사회는 붕괴했다
2026년 1월 30일,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300만 페이지 분량의 ‘제프리 엡스타인 파일’이 추가적으로 쏟아졌다. 대중과 호사가들은 그 방대한 문서의 덤불 속에서 클린턴, 트럼프, 혹은 영국의 왕자 앤드루 같은 유명인들의 이름을 찾아내는 ‘숨은 그림 찾기’에 열광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실시간으로 타전되고, 소셜 미디어는 그들의 성적 일탈에 대한 조롱으로 도배되었다. 그러나 내가 그 문서의 행간에서 목격한 것은 가십이나 성범죄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경외해 마지않았던, 그리고 이 세계의 표준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서구 지성사의 파산 선고’였다.
문서 속에서 가장 나를 전율케 한 이름들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노암 촘스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마빈 민스키. 한때 우리는 그들을 진보의 상징이자 기술 혁신의 아이콘으로, 혹은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는 선지자로 추앙했다. "언어는 인간의 본능"이라며 인간 지성의 고귀함을 설파했던 언어학자,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겠다"며 천문학적인 기부금을 쾌척하던 자선가,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던 혁명가. 그러나 그들의 지적인 가면 뒤에는, 자신들의 유전자만이 우월하다고 속삭이는 비틀린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이 엡스타인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교류의 정황들은, 그 만남이 단순한 사교 모임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우생학’을 논했다. 엡스타인이 꿈꿨던, 자신의 DNA를 퍼뜨려 인류를 개량하겠다는 그 기괴한 망상은 소수의 권력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공유되는 지적 유희였다.
여기서 미셸 푸코가 설파한 ‘생명관리정치’의 가장 타락한 형태를 본다. 근대 국가와 권력이 인구, 위생, 유전자를 통제함으로써 생명을 관리하려 했다면, 이들 슈퍼 엘리트들은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채 스스로 ‘신’의 위치에 올라 생명을 선별하고 개량하려 한다. 그들에게 여성과 미성년자는 존엄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들의 우월한 유전자를 착취하거나 실험하기 위한 생물학적 도구에 불과하다.
서재에 꽂힌 촘스키의 책과 빌 게이츠의 자서전을 꺼내 든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리하여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이 활자들은 과연 진리였을까. 아니면, ‘백인 남성’이라는 승자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된 교묘하고도 세련된 알리바이였을까. 책장에서 풍기는 묵은 종이 냄새가 오늘따라 유독 역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썩어가는 권위의 시취다.
현실은 픽션보다 비겁하다
법은 그들을 단죄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법은 그들을 단죄할 의지가 없었다. 엡스타인은 감옥에서 의문사했고, 살아남은 공범들은 공소시효라는 견고한 방패 뒤로, 혹은 비밀유지계약(NDA)이라는 자본의 벽 뒤로 유유히 숨어버렸다. "정의는 승자의 것이다"라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해야 하는 이 거대한 무력감 속에서, 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우먼 오브 더 데드>의 설원을 떠올린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오스트리아의 고립된 스키 휴양 마을과, 엡스타인이 왕국을 건설했던 카리브해의 ‘리틀 세인트 제임스 섬’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두 공간 모두 외부와 단절된 ‘밀실’이자, 권력자들의 이중성이 극대화되는 무대다. 드라마 속 범인들은 낮에는 존경받는 성직자,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부유한 사업가로 행세하며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들은 가면을 벗고 동유럽 이주 여성이나 가출 청소년 같은 약자들을 사냥하는 포식자로 돌변한다.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해당해도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 존재를 일컬어 ‘호모 사케르’라 명명했다. 엡스타인의 섬으로 불려 간 소녀들, 그리고 드라마 속 스키장의 지하실에 갇힌 여성들은 바로 현대판 호모 사케르였다. 그곳은 주권자(권력)가 법을 정지시키고 예외 상태를 선포한 공간, 즉 ‘수용소’와 다를 바 없었다. 법이 작동하지 않는 그곳에서 피해자들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벌거벗은 생명’으로 전락했다.
<우먼 오브 더 데드>의 주인공 블룸은 경찰이나 사법 시스템에 호소하는 대신, 자신의 직업적 기술인 장의사의 도구를 든다. 그녀는 시신을 닦고 방부 처리하듯, 마을의 악마들을 하나씩 찾아내 정성스럽게 ‘청소’하고 ‘해체’한다. 그녀의 복수가 잔혹한 살육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는 현실의 사법 시스템이 호모 사케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자들에게 면죄부를 쥐여주는 공범자임을 우리가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블룸은 피 묻은 손으로라도 정의를 세우지만, 현실의 수많은 블룸들은 법정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채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현실은, 언제나 픽션보다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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