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2026년 3월 8일. 거리에 장미가 흔들리고 빵의 온기를 나누어야 할 '세계 여성의 날'이다. 100여 년 전, 생존과 존엄을 외치며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던 여성들의 숭고한 용기를 기리는 날. 그러나 오늘, 축하와 연대의 인사를 건네기엔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의 지표가 너무나도 참혹하다. 불과 며칠 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과의 전면전이 시작되며 또 다른 거대한 비극의 막이 올랐고, 우크라이나부터 가자 지구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 세계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일상의 평화는 무너졌고,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국제사회의 중재 시스템은 완전히 작동을 멈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 여성의 날은 축제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전장이자 생지옥이다.
최근 유엔(UN)이 발표한 보고서는 이 야만적인 현실을 건조한 숫자로 증명한다. 불과 최근 2년 새 무력 분쟁 지역에서 발생한 성폭력 건수가 무려 87%나 폭증했다. 하지만 이 87%라는 수치는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통신이 단절되고 철저히 고립된 교전 지역의 특성상,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공식적으로 집계조차 되지 못한 피해자의 수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법과 질서가 붕괴된 무법천지에서 가해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완전한 '면책 특권'을 누리며 폭력을 자행한다. 우크라이나의 무너진 도시들, 그리고 잿더미가 된 가자 지구의 참상 한가운데서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전장'이 되어버렸다. 국가 간의 영토 분쟁과 거창한 정치적 명분 아래, 가장 취약한 여성들의 신체가 적을 모욕하고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한 체계적인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무력 충돌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피난길에 오른 여성과 소녀들은 정부군과 반군 양측 모두에게 가장 손쉬운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 국경의 검문소를 넘거나 당장의 구호물자를 얻기 위해 생존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끔찍하게도 성착취는 목숨을 담보로 한 잔혹한 통행세가 되기도 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표적 공습 등으로 필수 의료 인프라가 철저히 파괴되면서 생존자를 위한 사후 피임이나 감염 치료의 골든타임인 '72시간'마저 완벽하게 박탈당했다는 사실이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응급 처치도 받지 못하고 이중, 삼중의 고통 속으로 내몰리는 것. 원치 않는 가해자의 씨앗을 강제로 잉태해야 할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치명적인 질병의 위협 속에서 여성들은 신체적 파괴를 넘어 정신적 자아까지 처참하게 찢기는 영구적인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이것이 2026년 세계 여성의 날이 마주한 잔혹한 현실이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전쟁이 나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이토록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는가? 군인들이 통제력을 잃고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일탈인가? 결코 아니다. 국제사회와 인권 전문가들은 이를 적대 집단의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수치심을 심어주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명백한 '전쟁 무기'이자 군사 전술로 규정한다. 개인의 빗나간 욕망이 아니라 적국의 뿌리를 뽑기 위해 국가 기구와 지휘 체계가 은밀히 승인하거나 방조하는 비열한 테러 행위인 것이다.
그 근저에는 여성을 남성, 혹은 가문과 민족의 '소유물'이자 '명예'로 간주하는 낡고 폭력적인 가부장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적의 여성을 짓밟음으로써 상대방 남성들에게 "너희의 소유물을 지키지 못했다"는 극도의 무력감을 안겨주는 방식이다. 이는 현대에 갑자기 등장한 전술이 아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이 자행한 '강제 임신' 수용소는 적의 혈통을 훼손하려는 인종 청소였고, 1994년 단 100여 일 만에 80만 명이 희생된 르완다 대학살에서 후투족은 에이즈(HIV) 감염자를 생물학적 무기로 동원했다. 2010년대에 기승을 부린 ISIS와 보코하람은 여성을 전리품으로 삼고 성 노예 제도를 조직 유지의 근간으로 삼았다. 평시에 만연하던 젠더 불평등과 대상화가 전시라는 예외적 상황을 만나 가장 끔찍한 형태로 극대화된 것이다.
오늘날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보여주는 행태는 이를 '여성 학살'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산부인과를 비롯한 재생산 시설을 체계적으로 파괴하여 팔레스타인의 세대 연속성 자체를 끊어내려 한다. 폭격의 잔해 속에서 마취제도 없이 제왕절개를 감행하고, 전력이 끊긴 인큐베이터 안에서 갓난아기들이 숨을 거두는 것은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극도의 과밀 수용과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무너진 공동체 내부에서조차 여성과 소녀를 향한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급증하는 참담한 연쇄 작용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주도하에 구금 시설에서 자행되는 성폭력은 이제 여성을 넘어 남성 포로와 아동에게까지 확장되어 정보를 캐내고 굴복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고문 도구'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여성은 육체적 훼손의 대상을 넘어 정치적, 심리적 무기로까지 도구화된다. '여성은 유순하다'는 고정관념이나 전통 의상(히잡, 부르카 등)을 악용해 여성과 어린 소녀를 인간 폭탄(자살 테러범)으로 동원하거나, 서구 강대국이 타국을 침공할 때 "억압받는 현지 여성들을 구원한다"는 기만적인 명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타국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더러운 전쟁에 여성의 인권마저 철저히 포장지로 착취당하는 셈이다.
얼마 전 미국은 이란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이란 남부 미나브의 여자 초등학교를 폭격했다. 미군의 정보 실패와 정밀 타격 시스템 오류는 핑계일 뿐이다. 첨단 AI 표적 시스템을 전장에 투입하는 강대국들이 단순히 '몰라서' 민간 시설을 쐈다는 해명은 비겁한 기만에 불과하다. 군사 기지 바로 옆 학교에 어린아이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방대한 데이터로 인지하고도, 목표물 제거의 속도와 효율성을 위해 아이들의 생명을 '감수할 수 있는 부수적 피해'라는 차가운 통계 수치로 치환해 버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쟁의 대량 학살이 이제는 알고리즘의 계산식으로 완벽히 기계화되고 합리화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군사주의와 폭력의 가장 밑바닥에서 피 흘리고 찢겨나간 희생자는 165명이 넘는 7~12세의 어린 여학생들이었다. 의도된 젠더 폭력이든, 오만한 강대국의 치명적 과실이든, 남성 중심의 국가 권력이 충돌할 때 가장 먼저, 가장 처참하게 부서지는 것은 언제나 여성과 아이들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