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관대해져야 타인에게도 관대해진다
풍요 속의 결핍, 스스로 영혼을 갉아먹는 사회
한국은 이제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듯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미 충분한 부를 일구어낸 세계적인 국가다.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는 눈부신 성취를 이룬 선망의 대상이지만, 정작 그 안을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은 어딘가 심하게 허기져 있다. 우리 사회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셔 보면, 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이 짙게 깔려 있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직 멀었다", "더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렇게 여유롭게 쉴 때가 아니다." 잠시라도 멈춰 서서 지금 가진 것을 누리려 하면, 금세 누군가에게 뒤처지거나 도태될 것만 같은 집단적인 공포가 우리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마치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달리는 법밖에 배운 적이 없어 계속 페달을 밟아야만 안심하는 사람들 같다.
굶주림의 공포는 오래전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심리적인 빈곤이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적표 이면에는 극심한 탈진과 무기력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강박이 스스로의 숨통을 조이는 셈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스스로 영혼을 갉아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을 돌아보자. 서로가 이뤄낸 성취를 온 마음으로 축하하고 기념하기보다는, 기어코 흠집을 찾아내 혐오하고 비난하며 끝없이 남과 나를 비교한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앞서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기보다, 나의 처지와 비교하며 씁쓸해하거나 상대의 결점을 깎아내리기 바쁘다. 타인의 성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흠집을 내야만 비로소 내 위태로운 마음이 편안해지는 왜곡된 심리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좋아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 스스로를 좀먹고 있다면, 결국 누구에게도 관대하지 못한 팍팍한 삶이 될 뿐이다. 타인을 향한 날 선 공격성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깊은 불안과 불만족을 비추는 거울이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왜 우리는 이토록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씁쓸한 모순의 뿌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칭찬을 잃어버린 유년기, 미세한 전체주의의 탄생
이 숨 막히는 잣대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기원은 우리의 유년 시절에 깊게 박혀 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열 개 중 여덟 개를 잘해도 그 여덟 개에 대한 뜨거운 칭찬을 받기 어려웠다. 오히려 온전히 기뻐할 새도 없이, 나머지 두 개를 왜 놓쳤는지 추궁당하는 일에 훨씬 익숙했다. 엄마도, 선생님도, 심지어 친구들조차 언제나 내가 놓친 두 개의 실수를 찾아내 질책하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나의 고유한 장점과 성취를 들여다보기보다는, 구멍 난 곳을 메우고 남들과 비슷한 평균치를 맞추는 데 온 힘을 쏟아야만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잘한 것을 축하하기보다 못한 것을 기어코 찾아내 다음을 위해 고쳐야 한다는 완벽 강박이 애정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주입되었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익숙한 변명 뒤에는, 한 번 미끄러지면 도태되고 만다는 기성세대의 지독한 생존 본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 부족한 사람, 언제나 무언가를 고치고 반성해야만 하는 별로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칭찬의 결핍은 내면의 단단한 믿음인 자존감을 얕게 만들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잔뜩 날을 세운 얄팍한 자존심뿐이었다. 누군가 내 약점을 찌르고 들어올까 봐 두려워, 속으로는 불안하면서도 겉으로는 문제없는 척 가시를 세우고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아 올린 것이다.
가장 큰 비극은 이러한 억압 속에서 자란 우리가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얼마나 가혹한 평가 기준에 짓눌려 살아왔는지, 나의 마음이 얼마나 멍들어 있는지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자신이 어떤 병적인 완벽 강박에 시달리는지 모른 채 성인이 되었고, 이제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과 사회 집단에서 타인에게 완벽을 강요하게 되었다. 내가 받은 억압과 질책의 방식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게 그대로 휘두르고 마는 것이다. 남의 티끌을 기어코 찾아내 지적하고 그것을 조언으로 포장하며 서로를 촘촘하게 검열하는 일상 속의 미세한 전체주의는 그렇게 탄생했다. 나 자신에게조차 작은 여유를 허락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숨통을 조르고 감시하는 거대한 감옥을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겸손이라는 굴레, 그리고 실종된 자신감
오랜 시간 타국에서 생활하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부대꼈을 때 그 깊은 간극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있다.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낯선 타국을 누비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호흡을 맞출 때, 서구권 친구들은 내가 잘한 여덟 개를 발견하면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칭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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