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 해방 일지

두려움과 증오를 거쳐 연민으로, 잿더미에서 일어선 어느 한국인의 고백

by 조하나



서양인들은 모르는 욱일기 아래의 진실


마룬5(Maroon 5)는 아시아 투어 공식 홈페이지에 욱일기 문양을 내걸었다가 팬들의 거센 항의를 받자 별도의 사과 없이 이미지만 슬그머니 교체했다.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는 욱일기 재킷을 입거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도 "그저 아름다운 사원인 줄 알았다"는 짧은 해명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서구의 팝스타들이 이토록 가볍게 무지를 전시할 때, 나는 그 깃발 아래서 아시아 전역에 자행된 성노예 제도와 731부대의 끔찍한 생체실험의 역사를 배우며 자랐다.


무지함은 때로 그 자체로 날카로운 폭력이 된다. 2019년 에드 시런(Ed Sheeran)은 SNS 홍보 영상에 욱일기를 사용했다가 비판을 받자 영상을 삭제하며 사과했고, 뮤즈(MUSE)는 뮤직비디오 도입부에 이 문양을 넣었다가 "역사적 배경을 몰랐다"며 즉각 영상을 수정하는 소동을 빚었다. 앤 마리(Anne-Marie) 역시 방송 중 욱일기 머리띠를 한 출연자들과 찍은 사진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지만, 이들의 반복되는 실수는 서구권이 아시아의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증명할 뿐이다.


특히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아들 숀 레논(Sean Lennon)의 대응은 상징적이다. 그는 욱일기에 항의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욱일기는 나치 문양과는 다르다"거나 "한국인들이 역사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며 오히려 피해자를 조롱하고 무지를 당당함으로 포장하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자신의 일본인 정체성을 옹호하려는 욕구와 서구권의 역사적 무지가 뒤섞였기 때문이다. 피해 국가의 비극적인 역사보다는 자기 어머니 나라의 문양을 '예술'이나 '전통'으로만 보려는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을 향해 "역사 교육을 다시 받으라"며 훈계를 늘어놓았던 그의 모습은, 가해자 측의 시선에 서서 피해자를 조롱하는 무지함의 정점이었다.


자라(ZARA)나 메종 키츠네(Maison Kitsune), 디올(Dior) 같은 거대 패션 브랜드들조차 이 피비린내 나는 욱일기 문양을 '세련된 오리엔탈리즘'의 소품으로 소비하다가, 논란이 생기면 슬그머니 이미지를 내리고 침묵하는 기만적인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서양인들의 눈에 일본은 그저 닌텐도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쿨하고 신비로운 문화 국가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나치 독일과 결탁해 수많은 아시아 국가를 유린했던 분명한 제국주의 가해자였다. 서양인들에게 귀엽고 쿨해보이는 일본 문화가,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인에게는 선망과 혐오를 동시에 안겨주는 아프고 치욕적인 금단의 열매였다.


나치 문양에는 그토록 엄격한 서구 사회가 욱일기라는 또 다른 전범기 앞에서는 이토록 관대하고 무감각하다. 이 지독한 모순은 세계의 시선이 여전히 얼마나 불균형한지 여실히 증명하며, 전쟁 범죄의 피해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에게 깊은 서글픔과 박탈감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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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모방의 시대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전쟁의 참혹한 폐허 위에 남겨진 잿더미 속에서 한국인들은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당시 동아시아는 미국과 소련, 북한이라는 거대한 이념이 날카롭게 충돌하는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미국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을 최후의 방파제로 일본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일본의 끔찍한 전범 행위와 과거사 책임은 미국의 묵인 아래 철저히 면죄부를 받았다. 미국의 안보 우산과 경제적 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신생 독립국 한국은, 일본을 향해 제대로 된 과거사 사과조차 요구할 수 없는 굴욕적인 지정학적 족쇄에 묶여 있었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의 배경이 된 1970년 요도호 사건은 이 기형적인 역학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일본의 극좌파 테러리스트들은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을 시도했고, 한국은 미군의 협조 아래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위장하는 숨 막히는 작전을 펼쳤다. 전범국인 일본 내부의 이념 갈등이 촉발한 테러 위기마저 분단국가인 한국이 미군의 지휘 아래 대리해서 수습해야 했던 당시의 처절한 현실은, 이념의 화약고 속에서 한일 양국의 운명이 이토록 철저한 불평등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얽혀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굶주린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법은 자존심을 꺾고 원수인 일본의 기술을 구걸하며 기민하게 모든 것을 흡수하는 길뿐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일화가 지금은 불닭볶음면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의 삼양라면 창업주 전중윤 회장의 이야기다. 1960년대 초, 미군 부대에서 버려진 햄 조각과 음식물 쓰레기를 한데 모아 끓여낸 일명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는 국민들의 참상을 목격한 그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식판에 섞여 들어간 담배꽁초나 씹던 껌이 튀어나오기도 했던 이 비참한 생존식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서양인들조차 열광하는 K-푸드 '부대찌개'의 뼈아프고 처절한 기원이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쓰레기마저 끓여 먹어야 했던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 그는 일본 라멘 회사인 묘조식품을 찾아가 거듭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제발 기술을 가르쳐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일제강점기의 깊은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시점에 과거의 압제자에게 경제적 기술을 빌려야 했던 뼈아픈 모순은, 당시 한국인들이 짊어져야 했던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


경제 발전 모델부터 패션,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규칙까지 철저하게 일본을 모방하고 흡수해야 했던 절박한 생존기였다. 특히 80년대와 90년대 한국 사회에는 일본의 성공 비결과 그들의 독특한 민족성을 파헤치려는 일본 사회 분석 서적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은 없다』나 『축소지향의 일본인』 같은 책들을 탐독하며, 한국인들은 일본의 '메이와쿠(민폐 안 끼치기)' 문화나 '혼네와 다테마에(속내와 겉치레)'를 철저히 해부했다. 이는 언젠가 그들을 앞지르기 위해 적의 심리를 분석하는 지독한 '학습'이자 '극일(克日)'의 과정이었다.


한국 사회학자 장경섭이 명명한 '압축적 근대성(Compressed Modernity)'이라는 개념이 당시의 척박한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서구 사회가 수백 년 동안 점진적으로 이룩한 경제 발전과 사회 구조의 변화를 한국은 단 두세 세대 만에 강박적으로 욱여넣어야 했다. 자연스러운 발전을 기다릴 시간조차 없었던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도의 노동과 희생을 감내하며 타국의 선진 기술과 문화를 닥치는 대로 흡수하고 빠르게 압축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찬사하는 기적적인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이처럼 처절한 굴욕과 눈물이 깊게 배어 있었다.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과 냉전의 이데올로기 아래 합법적으로 짓눌린 당시 한국인들의 역사적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배출구는 스포츠 분야의 '한일전'뿐이었다. 외교 무대나 경제 지표에서는 감히 일본의 적수가 되지 못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는 공정한 룰 아래 물리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기에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대리전의 광기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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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한 사랑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 수입은 법적으로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언어와 이름을 철저히 빼앗겼던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깊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군대를 앞세웠던 과거의 제국주의가 이제는 거대 자본과 화려한 대중문화를 무기로 다시금 한국의 정신을 잠식하고 문화적으로 종속시킬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채 아물지 않은 역사적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세워둔 단호한 차단벽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의 일상은 해적판으로 조잡하게 인쇄된 좌우 반전 일본 만화책과, '어린이용'이라는 기형적인 틈새를 타고 불법으로 밀수입된 <초신성 플래시맨> 비디오, 그리고 엑스재팬(X-Japan)의 복제 테이프 같은 음성적인 하위문화로 가득했다. 낮에는 학교 교실에 앉아 그들의 잔혹한 식민지 만행을 배우며 주먹을 쥐었고, 밤에는 출처조차 모르는 그들의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흥얼거리는 지독한 모순의 일상이었다.


이 지독한 짝사랑 같은 문화적 비대칭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한국의 목소리는 이미 일본의 심장부를 파고들고 있었다. 공식적인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가왕' 조용필은 일본의 국민 엔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 일본인들의 정서를 흔들며 NHK 홍백가합전 무대에 서고 있었다. '엔카의 여왕' 김연자는 화려한 한복을 입고 일본 안방극장을 점령하며, 식민 지배의 가해국인 일본인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아내는 기묘한 광경을 연출했다.


특히 이 문화적 저류의 가장 깊은 곳에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사슬에 묶여 끌려갔거나, 지독한 수탈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해방 후에도 분단된 조국의 비극과 빈곤 앞에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재일교포들의 시린 애환이 서려 있었다. 고국에서는 잊힌 존재가 되고 일본 사회에서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멸시받던 그들은, 생존을 위해 일본인들이 기피하던 파친코 산업을 밑바닥부터 일궈냈다.


김민진 작가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이자 애플tv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파친코>는 바로 이들의 4대에 걸친 처절한 생존 서사를 정면으로 다루며, 서구권 독자들에게 재일교포가 겪어야 했던 정체성의 혼란과 제도적 차별을 일깨웠다.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가 외면한 개인들이 파친코라는 위태로운 숨구멍을 통해 어떻게 자신들의 존엄을 지켜냈는지 보여주는 이 기록은, 한반도의 특수한 비극에서 확장되어 전 세계가 공감하는 인류 보편의 서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재일교포들의 질긴 생존 본능은 파친코라는 음성적인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식탁 위까지 조용히 파고들었다. 온갖 멸시 속에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재일교포들이 한국식으로 화로에 구워 먹던 고기는 어느새 '야키니쿠'라는 이름으로 일본인들의 미각을 서서히 길들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식용으로 쓰지 않고 쓰레기처럼 내다 버리던 소와 돼지의 내장을 주워다 양념해 구워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워야 했던 피눈물 나는 생존의 음식은, 오늘날 일본 전역의 뒷골목을 점령한 '호르몬야키(곱창구이)'의 기원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건너가 이제는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특산물이자 일본의 국민 반찬이 된 '멘타이코(명란젓)' 역시 그 뿌리는 온전히 한반도에 있다. 화려한 무대 위의 가수들 뒤에는 이처럼 돌아갈 곳을 잃은 채 일본 사회의 실핏줄 속에서 한국의 숨결을 끈질기게 수혈해 온 이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국은 일본의 세련된 시티팝과 애니메이션을 갈구했고, 일본은 한국의 한 맺힌 음색과 강인한 생존력이 밴 음식문화에 매료되었다. 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이 '가난한 이웃'에서 '추격하는 라이벌'로 변모하던 그 시기, 양국의 젊은이들은 서로의 정부가 세운 높은 법적 장벽 아래서 몰래 담장을 넘겨보듯 서로의 문화를 탐닉하고 있었다. 정치와 역사가 만든 거대한 빙벽 아래서, 대중문화라는 뜨거운 조류는 이미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해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며 교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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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최초 피해자의 증언


그러던 1991년 8월 14일, 무해하고 화려해 보이던 그 문화 이면에 숨겨진 피의 진실이 거실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반 세기에 가까운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와 최초로 공개 증언을 한 날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 일제강점기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일본군 성노예제의 비극을 한국 방송 사상 최초로 적나라하게 파헤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방영되며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이전의 시대극이 주로 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치욕스럽고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금기시되던 전시 성폭력과 생체실험의 끔찍한 민낯을 안방극장에 처음으로 끌어들인 파격 그 자체였다.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이미 수년간의 치밀한 사전 제작과 촬영을 거쳤던 이 드라마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 맞춰 급조된 기획일 리 없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절묘하고 극적인 역사의 동시성이 발현된 순간이었다. 최고 시청률 58.4%를 기록하며 방영 시간마다 거리를 텅 비게 만들었던 <여명의 눈동자>는, 텍스트로만 짐작하던 일제의 참상을 가장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고통으로 안방극장에 쏟아냈다.


화면 속 할머니의 피맺힌 목소리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재현해낸 참혹한 역사의 민낯은 어린 소녀였던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고 어른들은 이 끔찍한 역사를 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도 이 모든 충격적인 일제의 전쟁 범죄를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연이어 겪으며 배고픔에 허덕이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은 30여 년간의 압축 성장을 마치고 이제 한 숨 돌리려던 차였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는, 우리조차 그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생존자들이 오랜 세월 참혹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가 제대로 먹고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외면했던 어두움과 아픔이었다.


가부장제의 침묵을 깬 할머니의 피맺힌 육성 증언과 텔레비전 화면 속 참혹한 재현이 같은 해에 맞물려 터져 나오자,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한국인들의 대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불길로 폭발했다. 막연한 역사적 지식으로 맴돌던 전쟁 범죄가, 당장 내 가족이 겪은 일처럼 살갗을 찢는 구체적인 현실의 감각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어린 세대가 일본의 대중문화를 몰래 탐닉하며 품었던 은밀한 동경조차 곧바로 맹렬한 혐오와 역사적 배신감으로 타올랐다. 이 거대한 충격파는 이듬해 1월 시작된 '수요집회'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이 평화 집회는 '단일 주제로 열린 세계 최장기 집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결코 멈추지 않았으며, 대다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제 5분의 생존자만이 남은 2026년 현재까지도 매주 수요일마다 34년이 넘도록 어김없이 이어지며 역사적 진실 규명과 사죄를 향한 끈질긴 투쟁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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