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의 방한 뒤에 숨은 할리우드의 오만한 착각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어떻게 아시아를 기만했나

by 조하나


전 세계 한국 최초 개봉의 이면: 아시아 시장을 향한 이중잣대


지난 4월 초, 한국 영화계는 한껏 들떠 있었다. 오는 4월 29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전 세계 최초 개봉을 앞두고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내한해 대규모 프로모션을 펼쳤다.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가득 메운 환호성은 할리우드가 아시아 시장을 얼마나 매력적인 거대 자본으로 인식하는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축제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4월 17일, 예고편 속 새 캐릭터의 묘사가 공개되며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중국계 비서 캐릭터의 이름 '진 차오(Jin Chao)'가 아시안 멸칭인 '칭총(Ching Chong)'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 큰 문제는 캐릭터의 외형과 서사 배치에 있다. 우리는 이 사태를 규정하는 언어부터 다시 고쳐 잡아야 한다. '동양인 차별'이라는 프레임은 피해자인 아시아인에게 초점을 맞춰 사안의 본질을 교묘하게 흐린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를 배태하는 '백인 우월주의'라는 구조적 폭력과 그들의 권력 유지 방식에 있다.






'동양인 차별' 프레임의 한계: 촌스러운 안경에 숨겨진 백인 우월주의


패션의 최전선을 다루는 영화에서 유독 이 아시아계 비서만 두꺼운 안경에 촌스러운 체크 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예일대 졸업과 평점 3.86, 대학입학시험(ACT) 만점이라는 화려한 스펙을 기계적으로 읊어대지만, 세련미와 예술적 감각은 철저히 결여된 전형적인 너드(Nerdy)로 묘사된다. 아시아계 캐릭터에게 촌스러운 안경을 씌운 행위는 아시아인의 실제 특징을 묘사한 결과가 결코 아니다. 백인인 자신들이 항상 가장 우월하고 세련된 위치에 존재해야만 안심하는 기득권층의 병적인 방어 기제가 발동한 결과다. 미디어라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열등한 타자'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주입함으로써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지켜내려는 아주 치밀한 백인 우월주의의 발현으로 보아야 정확하다.


현재 글로벌 럭셔리 패션 산업을 견인하는 핵심 소비층이자 트렌드 세터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다. 수많은 아시아계 셀러브리티들이 전 세계 명품 하우스의 앰버서더로 활약하고 있다. 가장 트렌디해야 할 패션 영화가 이런 현실의 문화적 지형도를 전혀 읽지 못한 채 과거의 고정관념을 재현한 행태는 지독한 모순을 드러낸다.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을 하고 대규모 프로모션까지 진행하는 마당에 이런 시대착오적인 장면을 버젓이 넣은 처사는 용납할 수 없는 오만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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