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시즌 2
에미상 8관왕 그 후, 더 지독해진 분노의 굴레
제75회 에미상 8관왕이라는 거대한 왕관의 무게도 이성진 감독의 폭주를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는 훨씬 더 지독하고 캄캄한 철학적 심연으로 거침없이 액셀을 밟았다. 전 세계적인 비평적 찬사를 이끌어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앤솔로지 시리즈 <성난 사람들>이 완벽하게 새로운 캐스트와 판을 짜서 시즌 2의 막을 올렸다.
전작이 로스앤젤레스 도로 위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난폭 운전을 매개로 1.5세대 이민자 두 명의 파괴적인 연결고리를 끈적하게 조명했다면, 이번에는 체급부터 확연히 다르다. 서사의 무대는 캘리포니아 몬테시토의 초호화 컨트리클럽 '몬테 비스타 포인트'에서 출발해 한국의 서울 한복판까지 단숨에 뻗어나간다. 거대한 공간의 이동을 발판 삼아 사회학과 철학의 영역까지 파고드는 야심 찬 역작의 탄생을 알린다.
독립된 서사 구조를 택한 이번 시즌의 칼끝은 다방면으로 예리하게 번뜩인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미시적 계급 갈등, 후기 자본주의가 교묘하게 억누르는 인간성의 상실, 디아스포라가 겪는 짙은 정체성의 혼란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얽히고설킨 징그러운 인간관계 속에서 기어코 마주하고야 마는 절대적이고 치명적인 '단절'의 순간을 기막히게 포착해 낸다.
앞으로 펼쳐질 비평에서는 이 작품이 이뤄낸 압도적인 서사의 진화를 하나씩 뜯어볼 작정이다. 후기 자본주의적 계급 투쟁의 실상부터, 한국인의 시선으로 읽어낸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문화적 재현의 권력 역학을 짚어본다. 배우들이 빚어내는 입체적인 앙상블은 물론, 미술과 문학과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호텍스트적 미학까지도. 마지막으로 작품 전체의 뼈대를 이루는 동양 철학적 결론인 '윤회'와 수미상관의 굴레까지 파헤쳐 볼 예정이다.
파괴적 '연결'에서 절대적 '단절'로
시즌 1의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는 서로를 파멸시키려 폭주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이게도 내면의 가장 어두운 우울과 심연을 공유했다. 파괴적인 행위를 통해 현대 사회의 지독한 고립을 돌파하는 기이한 연결에 닿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즌 2는 방향타를 완전히 꺾어버린다. 현대인의 관계 깊숙이 뿌리내린 본질적인 고립과 철저한 절대적 단절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성진 감독은 "시즌 1이 각자 고립된 두 개인이 함께 살아갈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었다면, 시즌 2는 그 사람과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며 붕괴하는 관계에 돋보기를 들이댔음을 분명히 했다.
밀레니얼 부부: 서로의 바닥까지 다 아는 가장 정직한 지옥
몬테 비스타 포인트 클럽의 총지배인 조쉬(오스카 아이작)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린지(캐리 멀리건) 부부가 보여주는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이 그 첫 번째 증거다. 겉보기에 완벽한 밀레니얼 부부인 이들의 내부는 이미 시궁창처럼 썩어문드러졌다. 39세의 린지는 노화에 대한 공포와 낭비해 버린 젊음에 대한 편집증적 불안에 짓눌려, 과거의 선택이 자신의 삶을 화석처럼 굳게 만들었다고 악을 쓴다.
반면 조쉬는 병든 어머니의 치료비로 린지의 유산까지 모조리 탕진한 상태다. 린지는 이를 빌미로 이혼마저 거부하며 지독하고 파괴적인 동거를 이어간다. 두 사람은 서로의 치부와 결핍을 너무나 투명하게 들여다보기에 오히려 더 맹렬하게 증오를 퍼붓는다. 가장 정직한 형태의 단절이다. 사회적 체면과 경제적 안위를 지키려 대중 앞에서는 견고한 파트너십을 연기하지만, 문을 닫는 순간 폭력과 경멸이 난무한다. 데이비드 체이스의 <소프라노스>나 잉마르 베르히만의 <결혼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끔찍한 질감 속에서, 현대인의 사랑이 어떻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계약으로 곤두박질치는지를 여과 없이 폭로한다.
Z세대 커플: '테라피 화법'으로 포장한 기생적 착취
조쉬 밑에서 일하는 Z세대 커플, 오스틴(찰스 멜튼)과 애슐리(케일리 스패니)의 관계는 또 다른 형태의 얄팍한 단절을 비춘다. 이들은 소위 '테라피 화법'이라는 매끄럽고 고상한 심리학적 어휘들로 서로의 상처와 애정을 예쁘게 포장하지만, 정작 상대의 진짜 자아는 털끝만큼도 보지 못하는 맹목적인 상태다.
극 후반부, 한국 서울의 트로코스 클리닉 억류실에서 이들의 알량한 기만은 산산이 조각난다. 오스틴은 애슐리에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며 차갑게 선을 긋는다. 나아가 그녀가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진짜 이유는 부모의 이혼 트라우마가 남긴 '버림받는 것에 대한 원초적 공포'일 뿐이라고 잔인하리만치 정확하게 진단한다. 애슐리 역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불안을 덮어줄 안전 기지로 소비했을 뿐이다. 이들의 사랑은 서로의 영혼을 응시하는 대신 각자의 결핍을 땜질하기 위해 상대를 착취하는 기생적 단절이다. 오스틴의 이별 선언 직후, 애슐리가 자신에게 '생존 가능한 배아'가 남아있음을 들먹이며 생물학적 유산으로 억지 연결고리를 만들려 하는 대목은 완전히 박살 난 관계 속에서도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려는 인간의 징그러운 집착을 꼬집는다.
최상류층의 결합: 삶을 소유하기 위한 비정한 거래
이 모든 촌극의 맨 꼭대기에는 몬테 비스타 포인트를 집어삼킨 한국의 억만장자 박 회장(윤여정)과 남편 김 박사(송강호)가 군림한다. 극 중 김 박사는 트로코스 클리닉의 복도를 거닐며 두 번째 결혼의 씁쓸한 본질을 롱테이크 독백으로 쏟아낸다. 첫 번째 결혼이 사랑을 좇는 것이라면, 두 번째 결혼은 누군가와 함께 '삶 그 자체'를 사랑하기 위한 타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내 돈과 권력이 그 진실된 얼굴을 흉측하게 가리고 있다며 아픈 자조를 내뱉는다.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이들의 끈끈해 보이는 결합조차 결국은 자본의 논리와 사회적 체면을 방어하기 위한 지독한 거래적 단절임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종국에 김 박사가 경찰과 내통하려 하자, 권력의 실세인 박 회장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를 처형대에 올린다. 부부라는 알량한 껍데기를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는, 절대적 단절의 파괴적인 마침표다.
후기 자본주의와 미시적 계급 투쟁
<성난 사람들> 시즌 2는 인간의 감정과 사랑, 나아가 생명 윤리마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하위 항목으로 편입되어 거래되는 과정을 무자비하게 해부한다. 이성진 감독은 "현대 사회에서 계급과 자본주의의 변수를 빼놓고는 솔직한 이야기를 쓸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상류층의 은밀한 안식처인 몬테 비스타 컨트리클럽은 겉보기에 평화롭지만, 실상은 치열한 계급 갈등을 배양하는 완벽한 축소판으로 기능한다.
의료 부채와 도덕적 타락의 끔찍한 물물교환
Z세대 오스틴과 애슐리 커플이 우연히 상사 조쉬와 린지의 파괴적인 부부싸움을 목격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행위. 이 협박극은 관음증이나 알량한 복수심에서 튀어나온 충동적 일탈이 결코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의료 시스템의 붕괴'가 무겁게 도사리고 있다. 애슐리는 난소 염전이라는 치명적인 응급 질환을 앓고 있지만, 살인적인 청구서와 건강 보험의 부재 탓에 수술대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가혹한 현실이 두 젊은이를 절박한 범죄자로 등 떠밀었다.
이들은 조쉬의 치명적인 약점을 쥐고 흔들며 승진과 함께 번듯한 직장 의료 보험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고결한 도덕적 가치나 진실한 사랑 따위보다 빳빳한 건강 보험증 한 장이 인간의 존엄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표로 작동한다. 거대한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약자로 하여금 또 다른 약자의 목을 잔인하게 조르게 만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너진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인의 도덕성을 갉아먹고 계급 간의 수평적 폭력을 부추기는 과정을 입증하는 날카로운 사회과학적 텍스트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 그리고 종속된 사랑
극의 철학적 심연은 후반부 박 회장(윤여정)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매서운 통찰에서 정점을 찍는다. 박 회장은 "자본주의는 자연의 섭리이며, 사랑 역시 그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기생할 뿐"이라고 차갑게 읊조린다. 이 오싹한 철학에 따르면 인간의 애틋한 감정조차 자본의 논리에 지배받는 얄팍한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다.
박 회장은 남편 김 박사가 수술 도중 의료 과실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자, 이를 은폐하려 발 벗고 나선다. 조쉬가 클럽에서 푼돈을 만지며 쓰던 자금 횡령 수법의 몸집을 거대하게 뻥튀기해 완벽한 자금 세탁 네트워크를 구축해 낸다. 타인의 억울한 생명을 지워버리고 끔찍한 죄책감을 틀어막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는 다름 아닌 압도적인 '자본'이다. 철저한 손익 계산기가 인간성을 완벽히 대체하고 만다.
종국에 이르러 "내가 진정으로 아끼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고 선언한 박 회장은, 눈엣가시가 된 남편과 테니스 코치로 잠입한 양아들 우쉬(BM)마저 흔적 없이 제거하는 무자비한 얼굴을 드러낸다. 감정이나 사랑 따위는 거대한 자본 앞에서는 언제든 쓰레기통에 처박힐 수 있는 허상이라는, 후기 자본주의의 끔찍한 정수를 정통으로 찌른다.
세대 간 연대의 환상과 각자도생의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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