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神聖)의 파괴
2026년 4월, 세계는 기괴한 두 장면을 동시에 목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하는 AI 이미지를 소셜 미디어에 전시했다. 종교계의 거센 비판 직후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구원자의 이미지를 차용해 스스로를 우상화하려는 세속 권력의 오만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같은 시각, 레바논 데벨의 한 민간인 집에서는 이스라엘 군인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의 머리를 망치로 박살 내고 있었다. 타인의 깊은 신앙과 삶의 터전이 군화 발길질 한 번에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끔찍한 현장이다.
미국의 유력 지도자는 신성함을 철저히 정치적 도구로 소비하고,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은 타국의 종교적 상징을 물리적으로 훼손한다. 이 두 사건이 겹쳐지는 풍경은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윤리적 파산을 선고받은 시대의 필연적인 결과물과 같다.
한나 아렌트는 권력이 도덕적 가치를 잃고 폭력 그 자체로 군림할 때 악이 얼마나 일상적인 형태로 나타나는지 경고했다. 자본주의적 선동의 최정점에 있는 미국 정치인과 배타적 우월감에 취한 이스라엘 군인의 모습은 정확히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개의 기형적인 가지다. 타자에 대한 경외심이 거세된 사회는 결국 자기 파괴적인 폭주를 멈추지 못한다. 명분과 도덕을 상실한 21세기 제국의 씁쓸한 민낯을 폭로하는 완벽한 대칭이다.
기이한 맹신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극대화된다. 과거 기독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유대인을 '신을 죽인 자들'이라 규정하며 수백 년간 참혹한 탄압을 가했다. 십자군 전쟁의 학살부터 홀로코스트의 사상적 토대가 된 반유대주의까지, 핏빛 교리 전쟁의 역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의 보수 복음주의(MAGA) 진영은 이스라엘의 국가 폭력에 열렬한, 아니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 종교적 원수였던 자들이 어떻게 가장 강력한 정치적 후원자로 둔갑할 수 있었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거대한 무대 장치로 이스라엘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건국과 유대인의 귀환이 곧 예수 재림의 필수 조건이라는 '기독교 시오니즘'이 그 근간이다. 이 맹목적인 종말론적 신앙을 달성하기 위해 보수 기독교계는 과거의 앙숙 관계조차 지워버린 채 현세의 도덕을 유보하고 철저히 결탁했다. 타국의 폭력 행위를 묵인하는 수준을 넘어, 그 폭력을 신의 뜻이 성취되는 신성한 과정으로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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