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높은 문화의 힘
소리 내어 부를 수 없던 노래에서 세계를 흔드는 선율로
1926년 개봉한 나운규의 흑백 무성 영화 <아리랑>은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작품이었다. 3·1 운동의 후유증으로 미치광이가 된 주인공 영진이 결국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며 아리랑 고개를 넘는 결말부에서 주제가로 연주되었고, 조선인 관객들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항일 의지를 다졌다.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극장 안팎에서 관객들이 아리랑을 떼창하고 독립 만세를 외치는 일이 빈번해지자, 일제는 기마 순사를 동원해 사람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나아가 조선총독부는 아리랑이 망국의 서러움을 자극하고 민족 감정과 독립정신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해당 노래를 '치안을 방해하는 불온음악'으로 낙인찍고 대중가요 금지곡으로 지정하여 억압했다.
통치가 본격화되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거나 부르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으며, 우리 노랫말 대신 일본 군가와 일제가 허락한 노래만 강제로 부르게 했다. 음반 발매와 가사 출판을 엄격히 검열해 막았고, 길거리나 극장 등에서 아리랑을 부르다 적발된 사람은 즉각 경찰서로 연행해 형사처분했다.
강압적인 권력을 동원해 노래를 지우려 했지만, 한국인들은 타국이나 전장에서도 은밀하게 아리랑을 부르며 저항과 명맥을 이어갔다. 아리랑은 슬픔을 위로하는 노래에 그치지 않고, 조국을 되찾겠다는 굳은 결의를 담은 투쟁의 노래로도 폭넓게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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