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추천작 <더 소사이어티>
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소사이어티>가 공개되었을 때 반응이 상당했다. <기묘한 이야기> <빌어먹을 세상 따위> <아임 낫 오케이> 등의 틴에이지 물을 통해 전 세대와 공감한 넷플릭스이다. 십 대는 절대 얕잡아봐선 안 된다. 또한 십 대의 이야기로 만든 콘텐츠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는 십 대에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에 매달렸다. 성인이 되고 나면? 먹고살기 바빠 그런 생각조차 사치다.
<더 소사이어티>의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으나 넷플릭스에서 플레이 버튼을 누른 건 최근이다. 작년 국내 개봉한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베이비티스>의 평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남자 배우 토비 월레스(Toby Wallace)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가는 길 <더 소사이어티>가 있었다.
<더 소사이어티>의 시작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지?” 프로듀서이자 작가인 크리스토퍼 케이저(Christopher Keyser)가 이 철학적이고도 깊이 있는 질문을 재미있는 쇼로 만들고 싶어 <더 소사이어티>를 기획했다. 여기에 <500일의 썸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마크 웹이 합류해 흥미로운 틴에이저 재난 생존 시리즈가 탄생했다(<더 소사이어티> 에피소드에서 배우들이 영화를 보는 장면에 <500일의 썸머>가 등장하기도 한다).
<더 소사이어티>는 코네티컷 주 웨스트 햄 고등학교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며 시작한다. 가는 도중 여행은 취소되고 다시 돌아온 마을은 텅 비었다. 그리고 마을은 외부로 통하는 길이 끊기고 전화와 인터넷이 작동하지 않는 고립 상태가 된다. 마을에 남은 십 대들은 제한된 자원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해야 한다. 아이들의 부모들이 마을에서 사라진 건지, 아이들이 원래 살던 마을과 똑같지만 다른 곳에 갇힌 건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을을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외부와 차단된 고립된 커뮤니티’만큼 극단으로 내몰린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 좋은 소재는 없다.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로 만든 시리즈 <언더 더 돔> 역시 문명과 차단되고 물리적으로 폐쇄된 고립 사회가 배경이다. 여기에 어른들이 없고 십 대가 주가 되어 커뮤니티를 이끄는 <원헌드레드>도 생각난다. <더 소사이어티>는 틴에이저로 가득한 <로스트>이기도 하다.
이 쇼를 관통하는 철학적 주제는 십 대들로 가득한 고립된 사회에서 예상되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난다. 생사를 위협하는 원초적이고도 본능적인 요소, 즉 먹고 자는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어른들이 없는 사회는 곧 규제와 규범, 법과 질서가 없는 사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곧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이기도 하다. 그동안 어른들이 일군 사회 시스템을 충분히 학습하기도 했다는 의미다. 어른들이 각 집마다 남겨둔 총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마을에 고립된 십 대들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십 대들이 가진 순수함과 잔인함은 언제나 충돌한다. 누군가는 사회 전복을 꿈꾸고 누군가는 사회 변화를 위해 고무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누군가는 공산주의를 외치고, 누군가는 자유주의를 외치고, 또 누군가는 파시즘을 외친다. 연대와 경쟁, 폭력, 죽음이 혼재한다. 새로운 문명과 사회, 규칙을 만드는 방법과 과정이 제각각 다른 캐릭터를 통해 그려진다. 고등학교 내의 성차별이 사악하고 끔찍한 여성 혐오로 번지기도 하고, 이를 위한 정의와 처벌에 대한 갈등이 극에 다다른다. 기성세대와 이전 사회 시스템을 통해 체득한 경험과 학습에 스스로 믿는 것, 그것에 대한 실천의 용기, 새로 눈뜨게 된 욕망과 탐욕 등이 얽힌다. 아직 가치관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불안한 십 대 끝자락 인물들의 판단과 결정 하나하나가 하나의 사회, 새로운 문명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더 소사이어티>가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곳곳에 배치한 캐릭터의 상황과 환경, 그로 인한 인물들의 변화는 매력적이다. 오바마 시대의 진보주의 속에서 자라다 트럼프 시대 부활한 사회주의와 권위주의의 부활을 목격하고 끔찍한 기후 변화와 ‘Black Lives Matter’ ‘#MeToo’ 운동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인 십 대들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듯 그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회 또한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이들은 기성세대처럼 다시 한번 실패할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의 기회를 끝내주게 잘 이용할 것인가?
글로벌 팬데믹으로 전 세계 곳곳, 모든 것이 통제되고 고립된 요즘 <더 소사이어티>가 던지는 질문은 누구에게든 유효하다. 그리고 쇼에서 ‘그리즈’가 ‘샘’으로부터 선물 받아 읽게 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답을 찾게 되리라 힌트를 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즌2 제작이 무산되며 넷플릭스는 공식적으로 <더 소사이어티>의 시즌이 더 이상 제작되지 않을 거라 밝혔지만 타 방송사에서 버림받은 <루시퍼>도 살린 넷플릭스이기에 팬데믹 상황이 나아지면 좋은 소식이 들려올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시즌2가 나오지 않더라도 시즌1에서 던지는 질문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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