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천의 여름’을 박제하기로 했다.
나는 해병의 가족이다.
우리 아빠는 해병대 333기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 욕실엔 빨간색 해병대 수건이 걸려있었고, 아빠 차엔 빨간색 해병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TV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을 볼 때면 아빠는 누가 해병대를 나왔고, 몇 기인 지를 읊었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해병대 간 게 왜 그렇게 자랑스러워?”
아빠는 말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한 ‘선택’이었기 때문이야.”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에 모병으로 지원 입대한 것이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에서 죽어라 공부만 했던 아빠에겐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 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호프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 시절, 나는 휴가 나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해병의 테이블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옆 테이블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니 “저기 저 해병 테이블 계산을 자신이 하겠다”라며 계산서를 부탁했다. 나는 다시 해병 테이블로 가 “혹시 저분들 아는 사이세요?” 물으니 아니란다. 양쪽 테이블을 오가며 내가, “우리 아빠도 해병이세요. 333기”라고 말하자 해병들은 벌떡 일어나 나에게 “필! 승!”하고 경례를 했다. 공직자로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의무에 실패해 불려 나온 자리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법률 상 증언 거부권을 주장했다.
우당탕탕 유치한 청문회,
그리고 무능하고 비열한 2성, 3성 장군들
대한민국 22대 국회의 채 해병 특검법 청문회를 지켜봤다.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차관, 임성근 전 해병대 1 사단장은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기에 청문회에서의 증언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라는 이유로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공직자로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라는 의무에 실패해 불려 나온 자리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법률 상 증언 거부권을 주장했다.
한편,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집단항명수괴죄’라는 어마무시한 죄목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이를 핑계로 증언 거부를 하기는커녕 당당히 일어나 어깨를 펴고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진실만을 말하겠노라 대한민국에 선서했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알던 해병의 이미지였다.
법사위를 새로 채운 22대 국회의원들 중 국민의 힘 의원은 자리를 비웠다. “제발 일하게 해 달라”며 자신들을 뽑아달라 읍소한 국회의원이 제 할 일을 안 한다. 하지만 차라리 그들은 있으나 없으나 다를 게 없었다.
기대가 높았던 검사 출신 박은정 의원은 청문회 데뷔 무대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지목했으나 실패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턱을 빳빳하게 치켜들고 박은정 의원을 내려다보며 검사실에서 후배 군기 잡듯 그녀를 대했다. 오만방자한 그의 태도에 임은정은 기선 제압당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 박성재는 청문회가 끝난 후 채상병 특검법 심사를 위해 "자리에 남아달라"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요청을 무시하고 도망가 '런성재'가 되었다.
검사 출신 이성윤 의원은 말을 더듬으며 자신이 윤석열의 폭도에 얼마나 핍박받았는지 감정적인 하소연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리 둘 다 초선이라지만, 이렇게 허약한 논리력 전개와 카리스마로 그동안 어떻게 검사 생활을 해왔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역시 검사 출신이자 전 대통령실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에서 근무했던 이시원은 법을 들먹이며 답변을 피해 갔지만, 박은정과 이성윤은 아무 대응도 못 했다.
검사 출신의 대통령에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 검찰에서의 연으로 채워진 참모진인 만큼 이들은 법률을 만드는 국회의원보다 법률을 적용하고 심지어 해석까지 남용하는 검사의 건재한 힘을 만천하에 다시 한번 과시했다.
북한과의 긴장된 정세 속 부끄럽게도 여전히 해병대 사령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김계환 사령관은 박정훈 대령이 수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경찰로 이첩할 때까지 모든 것을 함께 해놓고는 대통령이 격노하자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꿔 대통령 격노설을 들었다는 박정훈 대령에게 망상이라 조롱을 퍼부으며 집단항명수괴죄로 몰고 제 부하의 등에 칼을 꽂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1년 만에 박정훈 대령을 청문회에서 대면했다(서북 5도를 지키고 있다는 그는 화상으로 청문회에 참여했다).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사령관으로부터 분명하게 “대통령 격노설을 들었다”라고 말했고, 김계환 사령관은 “공수처 수사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라고 했다. 차라리 “나는 절대 그런 말 한 적 없다”라고 했으면 나았겠지만, 거짓 진술을 하면 처벌을 받겠다는 선서를 했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김계환 사령관이 더듬더듬 부끄러운 진술을 이어갈 때마다 박정훈 대령은 체념 어린 서글픈 미소를 띠었다.
자신의 국민적 별명이 ‘도주대사’ ‘런종섭’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은 어떨 땐 기억이 잘 났다가 또 어떨 땐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어떨 땐 모두 자기 책임 이랬다가 또 어떨 땐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했다. 채 상병 사망 외압 사건의 관련자 모두 영전해 좋은 자리로 갔는데, 이종섭 자신만 장관에서 차관급 호주대사로 강등되어 “토사구팽 당한 걸 왜 모르냐”라는 김용민 의원의 말에 그는 ‘에이, 그게 아닌데~’ 하는 뿌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거짓말조차 못 하는 무능한 인간이었다. 대체 무엇을 약속받았기에 이 소심한 자가 스스로 이토록 우스워지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걸까.
국회의원들에게 강제로 스피치 훈련과 감정 조절 명상을 시키고,
책도 좀 읽히고 요점 정리, 독서 노트 작성해 검사 맡도록 하는 법을
만들 순 없나.
22대 법사위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민의힘 불참으로 깔아준 멍석에서 어설픈 칼춤을 선보였다. 민주당은 밥을 입에 떠 먹여줘도 항상 이런다. 박지원 의원은 계속해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며 ‘라때’를 시전 했고, 서영교 의원은 소리만 지르고, 전현희 의원은 지루한 동어반복만 했다.
법 좀 안다는 증인들의 노골적인 증언 거부와 ‘너희 따위가 우리 같은 고결한 사람들이 국가의 안위를 위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필요 없다’라는 오만한 태도에도 야당 의원들은 무딘 질문으로 청문회를 말아먹고 있었다.
그 법 좀 안다는 증인들이 공직에 앉아 쓰는 사무실, 운전기사 딸린 관용차량, 개인비서, 스마트폰부터 시작해 그들이 자랑스럽게 입고 앉아있는 별 잔뜩 달린 유니폼, 퇴직 후 연금까지 모두 국가의 것, 국민의 것,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시켜야 했다. 그리고 국회의원 자신들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로 앉아 있음을 명확히 그들에게 상기시켜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국회 청문회를 순식간에 초등학교 교실로 만들어버린 정청래는 답변 태도가 불량한 증인들을 10분씩 밖에 나가 서 있게 했다(임성근, 이종섭, 이시원이 10분 간 쫓겨났다). 법사위 국회의원들이 어쩌지 못하고 우당탕탕하고 있으니 인간적인 모멸감이라도 주려는 듯 유치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수준은 22대도 별 다를 게 없다. 국회의원들에게 강제로 스피치 훈련과 감정 조절 명상을 시키고, 책도 좀 읽히고 요점 정리, 독서 노트 작성해 검사 맡도록 하는 법을 만들 순 없나.
그나마 질문이 가장 나았던 건 김용민 의원이었다. “증인 선서를 하지 않았기에 본 의원 또한 증인을 ‘전 법무부장관’이라 부르지 않겠다”라며 “이종섭 씨” “이종섭 씨” 하는 심리전과 함께 질의 내용이나 태도 또한 다른 의원들에 비해 감정에 치우침 없이 이성적인 논리로 대응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당장 전쟁 나면 끝이다.
나이 오십, 육십 먹고 별을 두 개, 세 개씩 단 양반들이 모여 앉아 서로 자기 살아 보겠다고 온갖 촌극을 벌이는 장면을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기본적인 국어도 안 되고, 문해력, 독해력, 논리력의 수준도 바닥을 달리는 사람들이었다. 군인정신은 물론이고 공직자 마인드나 공적 권력에 대한 철학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선 이런 모자라고 우스운 사람들이 줄만 잘 타고 손바닥만 잘 비비면 한 나라의 장관, 사령관, 사단장이 될 수 있는 대한민국 군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누가 더 무능하고 비열한가’를 주제로 한 유치원 재롱잔치 같은 청문회를 지켜보며 대한민국은 지금 당장 전쟁 나면 끝이구나, 생각했다. 군사력과 최신 무기의 문제가 아닌, 어깨에 별을 달고 작전을 계획하고 명령하는 인간들의 비겁함과 무능함이 전 세계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청문회를 지켜본 북한과 러시아, 일본은 ‘저 나라는 언제든 쳐들어가면 뚫리겠구나’하고 손뼉을 쳤을 것이다. 적군보다 무서운 게 무능한 지휘관이다.
“이 사진을 보면 가장 먼저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까?”
“이 사진을 보면 가장 먼저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까?”
서영교 의원이 채 해병 사망 사고 당시 해병들의 수색 작업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다. 그리고 임성근 전 사단장에게 물었다.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제 말을 안 듣고 들어간 게 잘못입니다!”
임성근 전 사단장은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자신의 대답과 순발력이 스스로 꽤 마음에 든 눈치였다.
그러자 서영교 의원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
“보통 사람이 저 사진만 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구명조끼를 안 입었네'예요!”
그랬다. 자신의 책임 회피에만 골몰하는 임성근 전 사단장의 문제 접근 방식은 전혀 달랐다.
청문회의 마지막, 서영교 의원으로부터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라는 삼싸대기를 얻어맞은 임성근 사단장은 진정으로 자신은 수중 수색 지시를 내린 적 없다고 믿는 듯했다.(그는 끝까지 자신은 '지시'가 아닌 '지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굉장히 똑똑하고 강직한 엘리트 군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과 제스처가 많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육사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무식한데 신념까지 있는 위험한 사람이 군을 지휘하다니, 대통령 자리에 앉은 윤석열과 다를 게 없었다. 19일, 채 상병이 수중 수색 중 사망했는데 22일, 채 상병의 영결식이 끝나고 언론을 통해서야 사진을 보고 수중 수색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임성근은 청문회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도 웃으며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았다.
해병대의 끈끈한 전우애란 없다는 걸 알았다.
“영결식에 홍보 사진 찍으러 온 건지 친목 모임에 온 건지 조문을 온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정치인들, 그런 정치인들 따라다니기 바쁜 장군들, 특종이라도 나온 것 마냥 슬퍼하는 해병들을 밀치고 다니며 짜증을 낸 기자들만 기억에 남는다. 사고 이후 단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은 건 사단장뿐이었다.”
“보여주기식 홍보를 위한 무리한 작전을 하다 부하를 잃었는데 잘못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윗사람들을 보며 끈끈한 전우애란 없다는 걸 알았다. 사단장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채 상병과 우리가 겪은 일을 책임져야 할 윗사람들은 책임지지 않고, 현장에서 해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처벌받았다. 그리고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봤다.”
“이런 ‘꼬리 자르기’를 보며 분노를 느끼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되었지만, 군 병원이나 부대에서 하는 상담은 받고 싶지 않다. 상담이나 진료 내용이 사단장에게 보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존 해병들은 이렇게 말했다.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쓸려갔다 전우를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 하나 없는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는 생존 해병은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대한민국의 리더와 어른,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었다. 임성근 전 사단장의 책임 사실을 밝혔다는 이유로 현재 군에서 왕따를 당하며 정신적 학대를 받고 있어 이로 인해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한 이용민 전 포병여단 포병 7 대대장은 청문회에 나와 증인 선서를 하고, “전우를 지키는 것이 해병”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11개월째 격리되어 아무것도 안 하고 출근해 벽만 보다 퇴근을 하고 있다”는 박정훈 대령은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 건지 수도 없이 되뇌었지만, 언제나 내 대답은 같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박정훈 대령의 수모와 고통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그의 용기보다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식의 공포를 학습하고 있다.
2024년 채 상병 특검법 청문회는 한국의 현주소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커뮤니티, 학교, 군대, 직장, 국가조직에 깊이 뿌리 박힌 계층 의식, 엘리트 의식, 카르텔 문화와 집단 괴롭힘이 압축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조직은 그 자체의 이익과 권력을 다해 사력을 다 하는 집단이며 이에 반하면 조직 구성원인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언제든 희생시킨다. 대한민국 조직 어디에든 마치 ‘네 돈도 내 돈도 아닌’ 법인카드처럼 공적인 수단과 권력을 이용해 불법과 편법,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온갖 학연, 지연, 커넥션과 카르텔로 물든 세력의 검은 그늘에 동조하지 않으면, 누구든 조직에서 쫓겨나거나 조직 안에 평생 조롱당하며 고통받는다. 본보기만 제대로 보이면 누구도 용기를 내지 않는다. 지금도 박정훈 대령의 수모와 고통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그의 용기보다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식의 공포를 학습하고 있다.
청문회를 살린 마지막 10분! 그리고 김경호 변호사.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송곳처럼 날카롭지 못하고, 증인들의 증언 거부에 쩔쩔매자 정청래 법사위 위원장이 이용민 전 포병여단 포병 7 대대장의 변호인 김경호를 불러냈다.
김경호 변호사가 명쾌하게 정리한 10분, 그리고 각 1분씩 김경호 변호사와 임성근 전 사단장이 서로 반박하게 만든 배틀 장면이 청문회를 살렸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정부가 스스로 그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어버릴 때 시작된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정부가 스스로 그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어버릴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이 모든 진흙탕 싸움을 마치 ‘오징어게임’ 쇼처럼 즐기는 윤석열과 김건희, 장막 뒤에서 폭탄주 말아먹고 골프 치러 다니는 비선들이 있다. 청문회에 등장한, 채 상병 사망 사건 외압에 연루된 이름들은 대부분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육사 카르텔로 끈끈하게 뭉쳐 한 번 거하게 해 먹었고, 또다시 땅속에서 기어 나와 윤석열에 기생하며 또 한 번 거하게 해 먹고 있는 인간들이다. 군대도 안 가고, 군대를 보낼 자식도 없는 윤석열과 김건희가 자신들을 지켜주겠다는 MB 패거리에 놀아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패한 조직, 검찰 카르텔과 군 카르텔의 합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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