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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대통령을 사살할 것인가?

스스로 마주하는 공포에 대한 무감각,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by 조하나


극단주의 독재와 망상에 빠진 일국의 대통령이 반헌법적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와 선관위로 무장한 군을 보낸 12.3 내란. 여전히 내란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세력이 사이비 종교 세력을 정치로 끌어들여 대중을 선동하고 폭동을 일으키고 있는, 이 영화 같은 상황에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운명 같은 타이밍에 개봉했습니다.


많은 영화 팬들이 영화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감독이나 배우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제작사의 안목을 믿고 영화를 선택하는 팬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바로 <언더 더 스킨> <문라이트> <플로리다 프로젝트> <미드소마>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더 웨일> <패스트 라이브즈> <톡 투 미> 등 수많은 소규모 독립영화 수작을 선보인 A24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비치>의 원작 소설가로 데뷔한 알렉스 갈랜드가 각본과 감독을 맡은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A24가 역대 최고 제작비인 5,000만 달러를 들인 첫 번째 블록버스터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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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 분열의 시대> 한국, 미국 포스터





알렉스 갈랜드는 오랜 시간, <28일 후>와 <선샤인> <네버 렛 미 고>의 각본가로, <엑스 마키나> <멘>의 감독 겸 작가로 좀비와 클론, 외계인으로 가득 차 있는 어두운 판타지에 빗대어 인간과 세계를 탐구해 왔습니다. 그런 그가 분열된 미국의 내전 상황을 배경으로 한, 현실인지 가상인지,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가상 전쟁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아역으로 주목받으며 89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연기를 해온 커스틴 던스트와 <나르코스> 시리즈로 유명한 와그너 모라, <프리실라> <에일리언: 로물루스>로 최근 주목받는 케일리 스페이니, 좋은 영화에 빠지지 않는 스티븐 헨더슨까지 배우들의 밀도 있는 조합도 좋습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예고편








극단적으로 분열된 미국의 현실적 공포

영화는 권력을 포기하기를 거부하고 3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는 파시스트 대통령(닉 오퍼먼)의 확신에 찬 연설로 시작합니다. 그는 FBI를 해산하고, 미국 도시들을 폭격했으며, 시민을 상대로 한 드론 공격을 승인하고, 언론인을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도 내렸습니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힘을 합쳐 서부 전선 동맹을 구축하고 분리독립을 목적으로 정부군에게 대항합니다. 이 두 세력 사이 어딘가에는 여러 무장 세력이 만든 플로리다 연합도 있죠.



0.pn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네, 이것은 전쟁입니다. 서로가 서로에 총을 겨눌 때 먼저 쏘는 것 외에는 이념의 가치 판단이나 도덕성의 재고 따윈 통하지 않는, 전쟁 말입니다. 양측 모두 막강한 살상 무기와 군대를 가지고 모두가 서로를 죽이고 있죠. 도시 곳곳에선 연기가 솟아오르고, 고속도로는 난파된 차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살 폭탄 테러범이 음식 배급을 위해 줄을 선 군중 속으로 뛰어들고, 군복을 입은 무장군과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시민군이 게릴라전을 펼칩니다.



1_2.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우리는 영화 속 기자들의 수다를 통해 대충 정보를 얻습니다. 영화는 내전이 언제, 어쩌다 일어났는지, 어떻게 적군과 아군이 분리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거든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베테랑 종군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와 함께 전장을 누빈 동료 조엘(와그너 모우라), 열정 넘치는 루키 제시(케일리 스패니), 리의 멘토 새미(스티븐 헨더슨)는 여차저차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해야 하는 기자들은 느려 터진 와이파이와 불안정한 전기 공급으로 호텔 객실 7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도시에선 무기력해질 뿐이니까요.


1_0.pn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이들은 뉴욕에서 출발해 미국 동부를 거쳐 살러츠빌의 최전선을 거쳐 워싱턴 D.C까지 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기자들이 눈에 띄면 총에 맞는 지역에서 대통령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하는 게 이들의 목표죠. 그렇게 영화는 성별과 세대, 철학, 신념, 직업정신에 있어 각각 다른 네 명의 언론인들의 로드 무비로 변합니다.

이들의 여정은 끊임없는 긴장과 공포, 안도감과 기괴함으로 가득합니다. 서부 동맹과 정부군 모두 비슷한 군복을 입고 있어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아보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누가 나를 죽이려 하지만 않는다면, 전장의 현실에선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보도사진 한 장, 한 장 늘어놓듯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 흥분되고 뜨거워지는 전쟁 영화들과 달리 감정적으로 굉장히 차가운 드라마입니다. 전쟁의 회색 지대에 있는 종군기자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기 때문이죠. 영화는 호들갑스러운 서사보다 현장을 포착한 흑백 보도사진 한 장의 인화를 기다리는 차분함과 인내심을 닮았습니다.


1_1.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종군기자는 사물이나 현상의 의미를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특종을 찾는 탐구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총탄이 날아드는 전장에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때 샘솟는 아드레날린에 중독되기도 합니다. 한 번 길을 나서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이 기록하는 공포에 무감각해집니다. 그들은 자신이 기록한 서사시적 폭력의 포착물이 정작 현실 정치의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pn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우리는 질문할 필요 없어. 우리가 할 일은 사람들이 질문하게 하는 거야.”

호기심과 열정, 다양한 감정에 압도되는 제시에게 냉정하다 못해 냉소적인 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는 자국이 망가졌음에도 목숨을 걸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쫓아다니며 현장으로 뛰어드는 기자들의 저널리즘, 그 순수한 열정과 정신의 본질에 대해 탐구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과연 저널리즘이 제대로 작동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죠.


실제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류 매체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파시즘이 부상한 상황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언론의 기계적 중립의 태도와 양비론 때문입니다. 현대 정치사회에서 언론인의 의무는 과연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대로 전하는 것? 아니면 편을 선택하는 것?









점점 더해지는 무감각에 관하여

전작들로 알 수 있듯 감독은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데 능숙합니다. 전쟁 영화에 필요한 공포와 함께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을 묘사하면서도 위트 있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하죠. 끔찍한 폭력의 장면이 끝날 때 감독은 드 라 소울(De La Soul)의 ‘Say No Go’ 같은 활기찬 힙합 비트를 넣어 기괴하고 아이러니한 느낌을 극대화하죠. 전쟁 한가운데 빨려 들어간 젊은 군인과 기자가 나오는 장면은 형형색색의 페인트와 그래피티의 위로와 대조됩니다. 전쟁은 살인과 폭력이 전혀 필요치 않고 또 무의미한 상황에서도 이미 그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더욱더 무감각해지도록 만듭니다.



2_2.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전장의 폭력성에 누구보다 무뎌진 건 베테랑 종군기자 리입니다. 그녀는 전 세계 끔찍한 학살과 폭력의 현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그 현실만큼이나 무거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항했죠. 그녀의 냉소적인 표정과 말투는 분노와 슬픔으로 겹겹이 싸인 그녀가 찍은 수많은 사진으로 치른 대가일 겁니다.




5_1.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한없이 무기력하고 유약한 인간성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의 현실적인 공포와 대조되며 긴장감을 이룹니다. 그들의 발길이 닿는 모든 땅은 긴장과 공허함으로 가득해 낯선 사람 누구든 잠재적인 위협으로 만듭니다. 아름다운 시골길은 불길한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미국 달러는 종이 쓰레기가 되었고, 무법천지의 회색 지대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한 폭력과 살인을 택한 인간들의 야만성이 곳곳에 도사립니다.

진부한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끝없는 잔인함과 폭력성에 지친 리의 냉소주의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건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제시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안정을 주는 힘은 바로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봐 준 스승이자 멘토인 새미죠. 그녀의 오랜 동료 조엘은 언제나 실없는 농담과 익살스러움으로 그녀 곁에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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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3.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시빌 워: 분열의 시대>를 본 많은 미국인들은 영국인 감독인 갈랜드가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 너무 많은 것을 피해 갔다며 “비겁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 현실 정치에서 극과 극을 상징하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연합 동맹을 형성했다는 설정만 봐도 그렇죠. 어쩌면 이 영화는 정치 자체와 아예 연관이 없다는 걸 감독은 어필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영화의 태도는 분명해집니다.


“What Kind of American Are You?”



3_2.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제시 플레먼스가 이렇게 묻는 장면은 초토화된 미국의 도심보다 더 참담하고 공포스럽습니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미국인인가?”라고 묻는 제시 플레먼스는 “콜로라도”라 답하는 리에게 “그게 진정한 미국인이지!”라고 화답하는 동시에 홍콩 출신인 그들의 동료 기자를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쏴버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What Kind of American Are You?’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이 공식화되자 미국인, 특히 ‘이민자’들을 향해 참전으로써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전쟁 가요의 제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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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감독은 영화 내내 일부러 그러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인물들의 대사를 통한 구체적인 묘사를 최대한 피하고 자제합니다. 그러다 이름도 소속도 없는 민병대이자 살인광 제시 플레먼스가 나타나 저 한 문장을 말할 때 텍스트의 폭발력이 극대화됩니다. 시뻘건 싸구려 선글라스를 쓰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죽이는 순간을 결정하며 전쟁이 만든 비극에 기생하는 이 인물은 허구와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를 마른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3_1.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제가 정말 무서웠던 건 이런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 속에만 있지 않다는 걸 이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윤석열의 탄핵 찬반 집회로 갈라진 한남동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세워놓고 “너는 누구를 지지하냐?”라고 물으며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에서 법원 안으로 난입해 영장 담당 판사를 색출하고 모든 것을 파괴한 사람들보다 혼란을 틈타 근처 식당에서 무전취식하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길 가는 사람들을 다짜고짜 중국인으로 몰아 집단 폭행을 가한 폭도들이 더 공포스러웠습니다. 생각과 감각이 제거된 얼굴 없는 그 사람들이요.










침대 밑에 숨은 괴물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낼까?

<시빌 워: 분열의 시대>에서 불태워지는 것은 ‘미국’이라는 상징, 그 자체입니다. 감독이 내전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건 영화를 보는 우리가 현실의 정보들로 충분히 그 공간을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 영화를 영리하게 만드는 건 미국을 전장으로 여기는 생각, 그 자체에 매혹되는 미국인 관객들입니다. 미국은 다시 한번 실제적이고 인식된 적들에 대한 폭력과 복수의 향연 앞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이것은 단지 우리의 문화적, 정치적 긴장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그저 우리가 즐기는 환상일 뿐일까요? 환상에 반복적으로 빠지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진실은 우리가 환상에 점점 무감각해진다는 것입니다.




4_0.pn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2022년 미국의 한 여론 조사에서 40%가 넘는 미국인이 향후 10년 이내에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혐오와 증오를 이용해 세를 모은 트럼프는 바이든에 백악관을 내어주고도 그의 임기 내내 부정선거와 음모론을 주장했죠.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라는 말도 안 되는 선동에 미국의 극단주의 세력은 요동쳤습니다.


2025년 1월 20일,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는 국회 난입 폭동을 일으킨 범죄자들을 사면하고, 이민자들을 추방하며 또다시 미국의 광기 어린 혐오와 폭력의 시대를 알렸습니다. 영화보다 무서운 현실적 공포가 엄습해 옵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해 점점 파시즘으로 치닫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은 저마다의 침대 밑에 숨은 괴물이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낼까, 공포에 떨고 있죠.



트럼프대통령영국공식방문_시민단체시위_트럼프베이비_2018.jpg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서 시민단체들이 선포인 '트럼프 베이비' 퍼포먼스










공포와 아름다움의 완벽한 균형

전쟁으로 파괴된 미국의 드넓고 아름다운 자연과 교외 지역은 아름다움과 공포가 뒤섞인 기묘하고 매혹적인 풍경을 연출합니다. 고속도로 고가도로에 매달린 시체들, 한여름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을 배경으로 아스팔트 위에 나뒹구는 시체가 미국 하면 떠오르던 ‘아메리칸드림’이나 부유함과 안정감을 왜곡시키죠. 밤하늘에 흩날리는 추적탄은 불꽃놀이처럼 보이고, 폭격으로 번진 산불 속을 내달리는 장면은 평화롭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목숨을 걸고 전 세계 전장으로 들어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조국에 전쟁을 보도한 것이 아니라 경고하고 있었어. 이게 곧 우리에게 일어날 일이라고. 그냥 하지 말라고.”




5_3.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조국에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말라는 리처럼 감독 역시 이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경고합니다. 베트남, 레바논, 이라크, 가자지구 등 수많은 전쟁의 살육과 폭력에 개입한 미국에서 내전이 일어난다면,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끔찍할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게 될 테니 그냥, 하지 말라고. 더 이상 무감각해지지 말라고.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묻습니다.



5_2.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저널리즘이 우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는 과연 이 세상에서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수많은 질문을 떠올려 보지만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저 우리가 아는 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할 때 모두 파멸을 맞이할 거라는 것뿐입니다.





4_1.jpg <시빌 워: 분열의 시대> ⓒ A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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