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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 세상과 이어진 그들만의 섬

by 조하나


자신들만의 언어와 분위기로 표현된 넬(Nell, 김종완/보컬, 이재경/기타, 이정훈/베이스, 정재원/드럼)의 음악이 세상과 연결되게 해준 것은 1998년 밴드 결성 이후 발표한 2장의 인디 앨범과 4장의 메이저 정규 앨범이었다. 사랑과 이별이 반복되는 삶에서 넬의 음악은 어두우면서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지난날을 기억하게끔 해준다.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쳤던 감정들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표현된 넬의 음악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4년의 공백. 2012년 4월 14일, 정규 5집 앨범 <Slip Away>를 들고 돌아온 넬이 공연장에 다시 섰다. 4년 전 마지막 단독 공연 ‘Stay’가 열렸던 바로 그 공연장에 말이다. 공연에서 김종완은 이렇게 말했다. “다시 돌아온 우리들만의 섬, 보고 싶었어요.”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김희언




넬(NELL) 'Slip Away'



멤버들의 입대로 4년간의 공백을 맞게 된 넬이 작년 10월 ‘피아 10주년 기념 콘서트’에 게스트로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바뀐 1월엔 넬의 컴백 티저 영상이 발표됐다. 부푼 기대로 요청했던 인터뷰 제의가 앨범 발매 일정 연기와 함께 수포로 돌아가길 여러 차례. 드디어 4월 10일, 5집 <Slip Away>가 발매됐다. 며칠 후 이어진 컴백 콘서트 ‘The Line’ 이후에도 스케줄상의 이유로 몇 번의 인터뷰 제의가 거절됐다. 그런데 미련을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은 후에야 기적처럼 넬과 마주 앉을 수 있게 되었다. 7개월 전, 피아 콘서트 게스트 무대 뒤에서 파운드 매거진을 전달하며 “앨범 나오면 꼭 인터뷰해요” 했던 약속을 그들이 지킨 것이다.







# 많은 말이 필요 없는 관계


넬의 음악을 완성하는 마지막 한 조각은 13년 동안 변함없이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밴드로서의 끈끈한 응집력이다. 흔들림 없이 오랫동안 하나의 밴드 이름 아래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란 건 한국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의 경력을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친구이기 전에 같은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는 동반자로서 이들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동의를 표하는 멤버들의 표정 하나에서도 오랜 시간 음악을 함께 해온 서로에 대한 배려가 보였다.


동갑내기 친구 네 명이 시작한 밴드라고 들었어요.
이재경 ― 다들 학교 동창이고, 동네 친구고 그래요. 종완이는 아는 형들이랑 막 밴드를 시작할 때였고, 그때 저도 기타를 치고 있어서 만나면 이런저런 음악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러다 종완이 밴드 멤버들이 모두 친한 친구들로 교체가 된 거죠. 그때가 1998년 9월인가 10월인가.
김종완 ― 밴드 멤버들이 다 저보다 형들이었는데 공연 한번 하고 나니까 너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주일 있다가 재경이 얘기 들어보고, 또 일주일 있다가 다른 애들 얘기도 들어보고. 그러면서 멤버들을 바꿔나갔죠. 베이스 치는 형이 제일 무서워서 정훈이로 바뀌는 데는 2주 걸렸어요. (웃음) 마지막으로 정훈이가 들어온 게 1999년 1월이었을 거예요.


첫 공연은 어디서 했어요?
이재경 ― 고등학교 졸업 한 달 앞두고, 홍대 앞 ‘프리버드’라는 공연장에서요.


물론 오디션을 봤겠죠? 첫 무대가 주말은 아니었을 거고.
김종완 ― 화요일이었습니다. (웃음)
이재경 ― 원래 화요일은 공연이 없었어요. 수요일 밴드가 그 주의 첫 공연 팀이었죠. 사장님이 우리를 맘에 들어했는지 우리가 화요일 밴드로 무대에 섰어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고. 우리끼리 맥주 마시면서 기분 좋게 공연했죠. (웃음)


‘화요일 밴드’에서 ‘주말 밴드’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김종완 ―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공연은 커버곡을 주로 했나요?
김종완 ― 아니요. 거의 자작곡으로.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안 좋아했어요. 처음 보는 애들이 처음 듣는 노래를 하니까. 제 기억엔 당시 라이브 클럽 무대에 서는 대부분의 밴드들이 커버곡 위주로 공연을 했거든요. 계속 우리 노래만 하니까 중간에 커버곡도 좀 하라는 얘기도 했었는데, 우리가 재미가 없어서….


곡은 주로 누가 썼어요?
이재경 ― 종완이가 만든 노래들이었어요.


멤버들은 그 노래들을 다 맘에 들어했나요?
이재경 ― 그렇죠.


밴드에서 곡 쓰는 사람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취향이 다른 멤버들과 잘 안 맞는 경우도 있잖아요.
정재원 ― 우린 처음부터 취향이 정말 잘 맞았어요.
김종완 ― 처음 밴드 같이 했던 형들은 저와 취향이 너무 달랐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곡을 풀이하는 거예요. 친구들이랑은 전부터 서로 잘 알고 있었고, 술 마시면서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취향이 거의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문제없이 작업들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요.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할 때, 이렇게 같은 멤버들로 함께 삼십 대를 맞이할 거란 생각은 못했겠죠?
이재경 ― 그냥 음악적으로 취향이 잘 맞는 친구들끼리 합주하는 것 자체가 그 나이 땐 즐거운 일이었어요. 홍대까지 와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자체도 재미있었고. 하나하나 자극이 됐죠. 언제까지 해야겠다 하는 생각 없이 그때그때 재미있게 왔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김종완 ― 앨범을 만들 때나 공연을 준비할 때 우린 레퍼런스가 없어요. 우리가 어느 하나에만 영향을 받은 게 아니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들어온 음악이 한두 개도 아닐 테고. 그런 것들이 다 우리한테 영향을 끼치고 그것들이 내면에서 각자 가지고 있는 감성이나 사상과 결합이 되면서 넬의 음악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항상 ‘뭘 하자’, ‘이런 식으로 하자’ 하는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곡을 써서 같이 합주하고 편곡을 하는 데에 있어서 서로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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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의 가치


넬이 2001년도 인디 씬에서 발표한 첫 앨범 <Reflection of>는 현재 경매 사이트에서 20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판권 문제로 인해 재발매가 어려운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넬의 음악적 가치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태지의 지원을 받으며 메이저로 데뷔한 이들의 지금까지의 행보가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은 여전히 노래 한곡 한곡마다 집착에 가까운 애정과 욕심을 쏟는다. 세상에 남는 앨범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에서 앨범을 2장 내고, 메이저에서 정규 1집으로 다시 시작한 이유는 뭐예요?
김종완 ― 우리에겐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우리가 잘 아는 해외 밴드들만 봐도 메이저 데뷔 앨범 이전에 낸 인디 앨범들이 많거든요.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자연스럽게 우리가 보고 배운 대로 한 거죠. 어떤 사람들은 그걸 생소하게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선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이저로 데뷔하는 밴드 자체가 그 당시엔 거의 없기도 했고.


메이저에 데뷔하면서 어떤 점들이 많이 달라지던 가요?
이재경 ― 기본적인 마인드는 같았어요. 근데 스탭들이 많아지니까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예전에는 무대에 올라가서 우리끼리 갑자기 셋 리스트 바꾸고 잼(Jam) 하다가 내려올 때도 있었는데, 스탭들이 많아지니 지켜야 되는 게 생기더라고요. 우리 맘대로 하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죠.


서태지 컴퍼니에서 발표한 1집과 2집 이후, 소속사가 바뀌면서 3집부터 음악적으로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어요.
이재경 ― 사실 소속사가 바뀐 것과 음악적으로 변한 건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요. 그런 선례가 많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음악하기 편한 곳을 선택한 것뿐이었죠.


사운드적인 변화에 주목하면 기타 사운드가 많이 약해졌고, 전자음이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직설적이고 뭔가를 파내는 느낌의 가사가 좀 더 우회적인 느낌으로 바뀌기도 했고.
김종완 ―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1집과 2집이 다른 앨범들보다 더 대중적이었던 것 같아요. ‘Stay’나 ‘Thank You’라는 곡도 그랬고. 전체적인 느낌으로 봤을 때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재경 ― 아마 우리가 같은 회사에 있었어도 음악은 그렇게 바뀌었을 거예요.
김종완 ― 우리가 스물다섯, 여섯, 일곱을 지날 때 3집과 4집이 나왔어요. 그때가 사실 이십 대에서 제일 격정적인 시기인 것 같아요.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고. 완벽하게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애처럼 굴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아마 그때가 제일 생각이 많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멤버들 모두 그땐 개개인의 어떤 사정 때문에 힘들어했던 시기였어요. 지금 서른셋에 돌아보면 그렇게 힘들 일도 아니었는데, 그때 당시엔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크게 다가오고, 그걸 견디기도 힘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음악이 그렇게 바뀐 것 같아요.


이제 서로 얼굴만 봐도 생각을 알 수 있겠네요?
김종완 ― 서로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가감 없는 편이에요. 우리 성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음악만 듣고는 우리가 되게 조심스럽게 얘기할 거라고 생각하실 텐데, 되게 직설적이에요. 그리고 사실 아니다, 싶은 노래는 서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넬의 노래들은 섬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어요.
김종완 ― 음악이라는 게 스토리나 이미지라는 게 있고, 또 멤버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질감이라든가 개인만의 무언가가 모아져서 하나의 곡이 나오는 거잖아요.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전제만 있을 뿐이지, 반드시 어느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곡을 처음 쓸 때도, 편곡을 할 때도, 원래 이 곡이 가져야 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그림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작업을 하다 가야 할 길을 잃은 노래는 어떻게 되나요?
김종완 ― 그런 노래는 더 이상 작업을 안 해요. 과감하게 포기하죠.
이재경 ― 우리 느낌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운드도 느낌을 좋게 하기 위해 하는 작업인 건데. 실제로 사운드가 안 좋아도 느낌이 훨씬 좋다면 느낌 쪽을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게 사운드가 안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개념 이상인 거죠.


한곡 한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편이죠?
김종완 ― 우리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이걸 안 하고 지나가면 남들은 모를지언정 우리는 알아요. 앨범은 한번 나오면 다시 수거해서 수정할 수가 없잖아요. 아마 그게 싫어서 그런 것 같아요. 각자 생각하는 부분들에 있어서 이걸 그냥 넘어가면 내가 후회할 게 뻔하니까. 그러기가 싫은 거죠. 아무리 최선을 다 해도 항상 후회는 남거든요.







# 가장 행복한 순간


최근 발표된 5집 앨범 <Slip Away>에는 넬의 지난 4년여의 시간이 담겨있다. 우리들도 저마다의 4년을 되돌아보면 까마득하듯, 그 시간 동안 멤버들의 생각과 생활, 감성들이 차츰 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두근두근한 순간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다. 멤버들이 다 함께 불 꺼진 스튜디오에서 담배를 피우며 작업을 마친 곡을 듣고는 “좋다, (앨범에) 담자!” 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을 위해 넬은 지금도 음악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음악을 할 것이다.


4년 만에 발표한 <Slip Away>는 100여 곡 중에서 추린 앨범이라고 들었어요.
김종완 ― 앨범 만들 때 몰아서 곡을 쓰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이번엔 공백 시간이 길었던 만큼 많은 곡이 쌓였죠.


워낙 발표곡이 많다 보니 곡을 쓰다 매너리즘에 빠지진 않나요?
김종완 ― 여러 사람들한테 곡을 받는 게 아니라 우리 넷이 하다 보니 당연히 비슷한 곡들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좋은 곡이어도 예전에 발표한 곡이나 앨범에서 비슷한 느낌이 있으면 빼게 되죠.


확신이 흔들리거나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어요?
김종완 ― 음악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예술 계통에 있는 이들이 모두 다 그렇겠지만, 사실 매 순간이 슬럼프예요. 어제보다 오늘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의 벽에 부딪힐 때도 많고. 근데 그런 걸 매일 겪어가야 하는 거죠. 그래서 특별히 슬럼프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요. 슬럼프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면 너무 비참해지니까. 어렸을 땐 우리끼리 작업해서 똑같은 게 나오면 엄청 괴로워하고 그랬는데, 이젠 그것도 ‘음악하는 과정의 부분이다’라고 생각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괴로워만 하는 건 결국 좋은 영향을 안 끼치더라고요. 더 열심히 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곡을 쓰고 합주하고 공연하고 팬들과 소통하는 음악의 여러 과정 중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어떤 걸까요?
김종완 ― 우리끼리도 그런 얘길 가끔 해요. 며칠 전에도 재경이가 스튜디오냐, 무대냐, 딱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뭘 고르겠냐고 묻더라고요. 전 딱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스튜디오예요.
이재경 ― 저도 스튜디오. 라이브는 지나가는 거지만 스튜디오는 앨범을 낸다는 전제 하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죽어도 남는 거죠. 음악 좋은 거 만들었을 때 우린 가장 희열을 느껴요. 세상에 없던 생각들을 담아 앨범을 만들어 현실에 내놓는 거니까.
김종완 ― 아직까지도 <Reflection of> 앨범 녹음하러 스튜디오에 들어갔던 기억이 뚜렷해요. 12년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이때예요. 곡 작업 다 끝나고 믹싱 마친 다음, 애들이랑 다 같이 모여 불 꺼놓고 담배 피우면서 완성된 곡 다 같이 들을 때. “잘 나왔네”, “담자”, “좋다”, “수고했어”, 이 말을 서로 주고받을 때가 음악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 같아요.


넬의 오랜 음악 생활을 지켜보는 팬들의 입장에선 항상 진보되고 발전된 앨범을 기대할 거예요.
이재경 ― 우선 우리부터 그런 생각을 해요. 이전 앨범보다 항상 만족스러워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앨범을 내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1집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아진다고 스스로 느끼나요?
이재경 ― 그런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앨범이 나오는 거고. 우리 스스로 자신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만족스럽지 않은 걸 툭 던져놓고, 운이 좋으면 반응이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김종완 ― 음악은 개인의 취향이에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앨범은 없어요 사실. 그런 음악이 있다면 세상에 그 음악 하나만 존재하면 되는 거니까. 팬들이나 평론가의 이야기에 부담을 가진 적은 정말 없어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좀 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거죠. 우리끼리 우리 자신과 싸우는 거죠.
이재경 ― 나중에 그걸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생기면 흥미롭고 기분 좋은 거고.


앨범 작업할 때 스트레스로 예민해지진 않아요?
이재경 ― 물론 있죠. 근데 그걸 잘 이겨냈을 때 오는 쾌락을 아니까.
김종완 ― 이제 오래돼서 서로를 좀 알아요. ‘지금 이런 분위기가 아니구나’ 하면서 서로 분위기 파악하고 컨트롤하죠.


5집의 트랙 배열은 서사적인 흐름을 염두에 둔 건가요?
김종완 ―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쓴 곡들이지만 우연하게도 어떤 기간 안에 쓰인 곡들이 많더라고요. 개인의 이야기를 담는 거다 보니, 어떤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도 변하고 상태도 변하고, 모든 게 변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흐름이 있지 않았나 해요. 변화의 과정이 담긴 거죠. 저도 이 앨범 들으면 그 시간들이 떠올라요. 내가 그땐 그랬지, 저땐 저랬지.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가사를 어쩜 그렇게 표현하는지 모르겠어요.
김종완 ― 성격의 차이인 것 같아요. 연애를 할 때 물론 좋으니까 만나는 거겠지만, 어찌 됐든 끝은 항상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끝을 보고 시작하는 건 아닌데, 하다 보면 끝이 보이는 거지. 성격이에요, 성격. 그런 생각을 갖고 사람을 만나다 보니 가사가 그렇게 나오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 생각도 그런가요?
이정훈 ― 어떤 식으로든 끝은 항상 있는 것 같아요.


결혼하신 분은 어떠신가요?
정재원 ― 저는 끝났습니다.
김종완 ― 재원이는 그게 끝이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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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고통


넬은 팬들 사이에서 ‘불친절한 밴드’로 통한다. 자신들 마음에 들 때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 성격 때문에 앨범 발매일도 늦춰지기 일쑤고, 앨범 발매 이후엔 공연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방송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밴드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넬을 말하며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꺼내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에디터가 만난 넬은 낙천주의자였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 또한 강했고, 밴드 자체가 기쁘고 행복해야 그 음악을 듣는 이들도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그들은 음악을 사랑하며 느끼는 고통이 되레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4년 간의 공백기 동안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겠어요.
김종완 ― 무대가 그리웠다는 건 확실히 느꼈어요. 2008년엔 사실 우리 자체로도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수능 끝나고부터 이십 대 후반까지 우리는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거든요. 앨범 만드는 데 보통 6개월은 걸리고, 앨범 나오면 공연 준비하느라 쉴 틈이 없었죠. 처음으로 ‘이제 음악 말고 뭔가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까지 됐어요. 그땐 정말 많이 지쳐있었는데, 자의든 타의든 4년을 쉬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거고, 그때가 정말 좋은 거였구나.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아도 그게 정말 기분 좋은 고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다시 깨닫게 됐어요.


5집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였어요?
김종완 ― 작년 7~8월부터요.


앨범 작업을 완벽하게 마친 건 언제예요?
김종완 ― 앨범 나오기 직전까지요.


이번 앨범은 ‘힘을 많이 뺐다’고 했던데, 어떤 면에서 그런 걸까요?
김종완 ― 요즘 너무 자극적인 음악이 많은 것 같다고 느꼈어요. 길거리를 지나도, 라디오를 들어도. 우리 자체의 기분이 시끄러운 기분이 아니니 조금 더 차분하게 가보자는 생각을 했죠. 쉽게 얘기하면 사운드적인 면에서 더 차분해진 거고, 내면적으로 보면 지를 수 있는 부분도 좀 누르자는 쪽에 가까웠죠. 사운드가 직설적이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가사도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고. 우리들 성격 자체가 그렇게 변한 것 같아요.


스트링 녹음과 마스터링을 미국 뉴욕의 아바타 스튜디오와 런던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에서 마쳤어요. 특별히 해외에서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재경 ― 굳이 해외에 나가서 돈을 많이 써야 좋은 사운드가 나온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닌데 우리가 원하는 소리도, 연주자들도 모두 거기에 있었어요.
김종완 ― 현(絃) 편곡 자체가 쉽지 않은 작업이긴 한데, 우리가 첼로나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할 수 없으니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잖아요. 이전 앨범 준비하면서 한국에서 스트링 녹음을 한 게 만족스럽지 않았거든요. 그동안 우리가 어떤 음반을 들었을 때 ‘여기 현 느낌 좋다’ 했던 연주자들을 찾아서 뉴욕에 있는 컨설트를 통해 모았어요. 워낙 바쁜 연주자들이라 그분들 스케줄 다 정리되고 나서 우리가 미국으로 간 거죠.


멤버들이 직접 컨택했어요?
김종완 ― 네. 초반에는 우리가 직접 했어요.


멤버들이 원하는 걸 회사에 제의한 건가요?
김종완 ― 네. 회사에서도 흔쾌히 ‘O.K.’ 해서 너무 좋았어요.


해외 엔지니어링이 좋다는 걸 알아도 현실적으로 여건이 안 돼서 못하는 팀들도 많을 텐데요.
김종완 ― 설득을 해야죠. 그렇게 인간관계를 잘 풀어가는 것도 제 생각에는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의 몫인 것 같아요. 외국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밴드들이 뭘 하기엔 시스템이 덜 갖춰져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이게 왜 필요하고, 이런 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얘기해서 설득하는 것도 온전히 뮤지션의 몫인 거죠. 그래서 평상시에도 회사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부분에 대해서는요?
김종완 ― 음반이 나왔는데 그걸 알리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인 거죠. 그걸 서포트해 주고 진행해 주는 마음 맞는 회사가 있으니 더 좋은 거고. 도움을 주는 스탭들과 잘 협조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오랜만에 활동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가 있나요?
김종완 ― 우선 다른 팀들과 우리의 나이 차가 커졌어요. (웃음)


대중은 많이 변했나요?
김종완 ― 대중은 항상 변하는 거니까요.


넬의 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4년 만의 컴백 공연 이틀 티켓이 금세 매진됐잖아요.
김종완 ― 팬들에겐 정말 고맙죠. 낯간지러워서 그런 말을 잘 못하는 거지. 우리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팬들에게 마음속으로는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공백 기간 동안 음반 시장은 디지털 음원에 치중하는 성향이 더욱 강해졌어요.
김종완 ― 우리도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앨범을 직접 사지만, 내가 그 뮤지션을 존중하는 의미, 리스펙트의 차원이 더 커요. 사실 우리 앨범이 그 정도만 돼도 상관없겠어요. 음악은 팔려고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이 안 돼요. 음악을 알리는 것도 우리 몫이니까 시장 탓을 하고 있지만은 않아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한탄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단 밴드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에요. 음반 시장이 죽고, CD 시장이 없어졌다는 건 발라드나 댄스 가수 모두에게 해당되는 거예요. 우린 밴드니까, CD 팔아야 되는데, 이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싫어요. 밴드는 밴드이기 때문에 더 프라이드를 가져야 해요. 밴드라서 할 수 있는 것들, 밴드만이 느낄 수 있는 호흡이 있어요.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한 순간 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건 밴드라 가능한 거잖아요. 그런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프라이드를 느껴야 되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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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ip Away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리라는 다짐도, 절대 꺾지 않으리라는 고집도 변했다. 이제 넬은 ‘어렸을 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만큼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더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인생에서 음악에서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과정이 어떤 길로 이어지는지 한걸음 떨어져 바라볼 줄 아는 현명함도 얻었다.


5집의 객관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통해 삶을 대하는 멤버들의 시선도 성숙해졌다는 걸 느꼈어요.
김종완 ―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지, 어떤 계기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그런 걸 느끼게 된 것 같아요. 혼자 아무리 잡으려 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어렸을 땐 왠지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게 꼭 여자가 아니더라도. 꿈이 될 수도 있고, 열정 같은 게 될 수도 있죠. 그러다 보니 가사도 그렇게 나온 것 같아요.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때가 더 아름다웠나요?
김종완 ― 그런 것도 있어요. 그때가 좋았다기보다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열정이었던 거죠. 관계에 대한 열정. 내가 놓치기 싫은 거. 어떻게 보면 철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지금은 음악을 할 때 에너제틱한 건 더 강해진 것 같은데 관계에 대한 열정 같은 건 많이 사그라진 게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걸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좀 서글프지 않아요?
김종완 ―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고 해야 하나?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는 것 같고, 내 공간도 더 많아지는 것 같고. 오히려 지금 느끼는 걸 힘들어하는 것보다 이걸 받아들이고 여기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충분히 힘들어봤으니까… 힘든 건 충분히 해본 것 같아요.


넬은 사랑 노래만 한다는 건 편견일까요?
김종완 ― 이번 앨범엔 사실 사랑에 관한 노래가 많아요. 제가 모든 걸 의인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사람들이 사랑 노래라고 느끼는 것 같은데, 이전 앨범에는 그렇지 않은 곡들도 많이 있어요.


사랑의 대상으로 의인화된 주체들은 대부분 어떤 건가요?
김종완 ― 꿈이나 믿음, 그리고 열정 같은 것들이죠. 예를 들어 ‘네가 떠나는 게 싫어’라고 했을 때 여기서 ‘너’가 반드시 여자를 뜻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내가 갖고 있던 꿈이나 열정이 사라지는 걸 느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힘든 시기를 보낼 때가 많거든요. 사람을 뜻할 때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 자체를 뜻할 때도 있죠. 때론 음악이 ‘너’가 될 때도 있고. ‘Stay’ 가사도 사람들은 모두 사랑 얘기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너’라는 대상이 사실 저에겐 여자가 아니거든요. 근데 그걸 굳이 얘기하진 않죠. 듣는 사람들이 자기의 감정을 이입해서 듣는 걸 방해하고 싶진 않으니까. 하지만 제가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땐, 사랑을 떠올리진 않죠.


5집에 수록된 곡들 중에서도 사랑 얘기가 아니지만, 사랑 얘기로 보이는 노래가 있나요?
김종완 ― ‘Hopeless Valentine’이 그래요. ‘발렌타인’이라는 표현을 쓰니 반드시 여자일 것이다, 생각하는데 여자가 아닌 그냥 사람의 이야기예요. 친구든 누구든 나를 도와주려 하긴 하는데, 고맙지만 나에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거죠.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넬에게 있어 음악은 여전히 처음 시작할 때와 같나요?
김종완 ― 의미는 더 커진 것 같아요. 재미있고 좋아서 했을 뿐인데 언젠가부터 음악이 나를 더 나답게 해주는 거예요. 솔직하게 내 표현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더 놓치지 싫고, 더 열심히 하고 싶고 그래요. 제가 의인화를 잘하는 편인데, 저한텐 음악도 사람 같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얘(음악)한테 잘해주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잘 못 해주면 떠나가나요?
김종완 ― 그런 것 같아요. 운이 너무 좋거나 연기를 너무 잘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는 이상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머물러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음악을 하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요즘.


친구들과 함께 음악으로 인생을 살고 있어요. 문득 옆에 있는 멤버들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때요?
김종완 ― 지금도 새로운 것 같아요. 베이스 편곡 하다 전혀 새로운 뜻밖의 느낌이 나오면 ‘정훈이한테 이런 면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요.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했는데도 요즘에도 합주하거나 작업할 때 그런 걸 많이 느껴요. 가끔 옛날 사진 보면 감동스럽기도 하고. ‘앗! 쟤가 저렇게 젊었었어?’ (웃음)


음악 씬에서 선배로서의 책임감도 생기나요?
이재경 ― 그렇게 얘기해 주면 좋죠. 그냥 이기적으로 우리 팀을 위해 잘해나가는 게 책임감이 아닌가 해요. 사실 우리 같은 경우는 선례가 없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거든요. 미리 길을 닦아 오랫동안 쉬지 않고 밴드를 하는 선배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종완 ― 밴드 하는 사람들이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해져서 ‘우리나라 밴드 해서 잘 된 애들이 누가 있냐?’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넬 있잖아” 이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 정도만 돼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우릴 보면서 ‘저렇게 오래 했는데 저거밖에 안 됐어?’ 하면서 좌절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 그리고, 남겨진 것들


수많은 감정들에 치여 자신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을 때 넬의 음악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놓치고 지나쳤던 수많은 자신을 마주하게 한다.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 넬의 음악은 ‘치유’가 된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 만들어진 음악이 또 다른 이의 삶을 위로할 수 있다는 일이 새삼스럽게도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어떤 이는 넬의 음악이 ‘우울하고 절망스럽고 슬프다’고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삶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곱씹고 되새기고 나서야 흘려보낸다. 그렇게 비워내고 나서 또다시 무언가를 채운다. 그것이 넬이 생각하는 ‘절망 끝에서 발견한 희망’이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삶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앞으로도 그들의 노래를 통해 또다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F.OUND magazine, June 2012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파운드 매거진과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1999년, 홍대 작은 라이트 클럽 ‘화요일 밴드’로 시작해 대형 스타디움을 채우는 몇 안 되는 밴드가 되기까지 그들은 중력도 없이, 무게도 없이, 음악 속의 시공간을 부유해 왔다. 그들의 처음부터 지켜봐 온 나에겐 밴드음악과 음반, 라이브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 한가운데에서 나눴던 그들과의 대화가 의미 깊다. 그들의 스튜디오 앨범과 라이브 공연, 팬들과의 관계는 꾸준하고 진중하다. 2024년, 넬은 25주년을 기념했다. 그들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라 호들갑 떨 것도 없고, 30주년, 40주년을 예상하며 다짐할 필요도 없다. 넬은 수식어가 필요 없는 자체의 대명사가 되었다.



넬(NELL) '기억을 걷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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