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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보우 디자이너 전경빈|패션을 노래하는 실험가

by 조하나


패션계의 정형화된 관습과 대중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운 디자이너. 기존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전경빈의 브랜드 핏보우(Fitbow) 역시 그의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이 젊은 디자이너는 의상에 메시지를 담아내는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핏보우 의상을 통해 전경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반응한다. 그는 실험을 통해 메시지를 입증하는 실험가이자, 의상으로 노래하는 디자이너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김희언







Is It Possible?



정규화된 패션 과정의 문턱을 밟은 적도, 시간을 담보로 한 입봉 과정도 없었다. 그저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게 된 <서양복식사> 책 한 권이 그를 디자이너로 다시 출발하게 했다. 2003년 ‘전경빈’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사인해 라벨을 단 맞춤 제작 칵테일 드레스가 그의 시작이었다. 이름 앞에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전경빈은 2004년 남성복 브랜드 핏보우의 론칭과 함께 독특한 이력과 실험적인 시도로 패션계의 이목을 끈다. 학창 시절 힙합 음악에 빠져 마스터플랜(Master Plan)에서 ‘K-Riders’라는 이름으로 가사를 쓰고 랩을 했던 MC가 이제 랩이 아닌, 의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Fit(n. 노래, 노래의 한 구절)과 Bow(n. 활, 궁술가, 사수)의 합성어인 Fitbow는 ‘이야기를 시위 삼아 화살을 당긴다’는 뜻을 가진, 전경빈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브랜드가 되었다.



‘억대 매출의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수식어는 핏보우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전경빈은 도서관에서 미술과 사진, 연극 연출, 영화, 미술사, 고전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지식들을 탐닉하고, 자신의 것으로 걸러진 메시지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핏보우가 발표한 ‘May Day’라는 의상은 스티븐 프리어스 (Stephen Frears) 감독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와 <밴>, 켄 로치(Kenneth Loach) 감독의 <하층민>과 같은 영화를 통해 발견한 노동자 문제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경빈은 이 의상의 판매 금액 전액을 성남시의 ‘노동자의 집’에 기부했다.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의미였다. 또한 고유한 한국의 미에 관심이 많은 전경빈은 ‘승무’라는 의상으로 기와의 아름다운 곡선을 재조명했고, ‘받침과 빗금’ 의상으로 한글의 우수성과 조형미를 표현했다. 뮤지션이 음반을 발표하듯 정해진 기간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의상 발표 방식 또한 기존 패션계의 트렌드와는 반대로 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전경빈의 디자인이 형이상학적인 예술품에 가까울 거라 예상하겠지만, 핏보우의 의상 한 벌 한 벌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배제하고도, 충분히 웨어러블하고 멋스럽다. 컨셉추얼한 디자인으로 대중과 거리를 두는 건 디자이너 전경빈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는 패션계의 산업적인 부분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브랜드가 알려져야 의상이 가진 메시지의 전파력이 더욱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핏보우가 이러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컬렉션이 아니었다. 브랜드의 라벨을 공개하지 않고 의상에 관한 어떤 소개 없이 디자인과 품질로써 소비자와 패션 MD의 평가를 받는 블랭크 라벨(Blank Label) 테스트로 승부수를 띄운 핏보우는 5년간의 꾸준한 초대전을 거쳐 당당하게 갤러리아 명품관에 입성했다. 현재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정욱준, 서상영 등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 나란히 전시, 판매되고 있는 핏보우의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핏보우는 온라인을 통한 독자적인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고, 므스크 샵(MSK Shop)을 통한 에이전시 개념을 도입해 컬렉션에 참가하지 않고도 대중들과 직접 만났다. 게다가 전경빈을 비롯한 핏보우의 모든 구성원들은 패션 비전공자다. ‘어느 나라의 어떤 패션 스쿨 출신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인 한국 패션계에서 전경빈은 그래서 더욱 튀는 디자이너다. 사진이나 글, 그림 등 패션이 아닌 분야 전공자의 디자인이 훨씬 독창적일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변함이 없다. 카피하는 법부터 가르치는 기존 패션 교육 시스템에는 관심도 없다. 이런 이유들로 전경빈은 ‘패션계의 이단아’ 혹은 ‘고집스러운 괴짜’로 평가받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랩으로 토해내던 MC 시절처럼, 디자이너 전경빈은 묵묵히 그의 생각을 의상으로 풀어낼 뿐이다.










I Can Prove It



“저는 멋을 표현하는 목적 말고도 의상이 해낼 수 있는 또 다른 역할들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어요. 음악이나 미술 분야에서는 늘 기존 체제와 틀을 깨고, 이를 변형하고 발전하는 변화의 시도가 늘 있어왔지만, 의상은 늘 ‘입는 역할’에만 머물렀잖아요. 미적인 탐닉만 이뤄져 왔지, 의상 한 벌을 가지고 고증 작업을 거쳐 다큐멘터리화하고, 메시지를 담아내는 일은 흔하지 않았죠. 누구나 옷을 입잖아요. 그만큼 의상이 가진 메시지의 전파력과 전달력은 상당해요. 그게 바로 제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을 음악에서 의상으로 옮긴 이유이기도 하죠.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생명력이 없었던 지식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재조명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게 제가 의상을 하는 목적이에요. 처음엔 조형적인 미의 관점으로 핏보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저에게 반응이 돌아오죠. 이렇게 의상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기술적인 문제에 집착해 명품을 만들어내기에만 급급하지만, 그 부분은 뛰어난 기술자들의 역할이지, 디자이너의 역할이 아니에요. 지금 패션계에 불고 있는 클래식 웨어나 워크웨어 열풍은 모두 서양에서 들어온 트렌드잖아요. 북유럽이나 캐나다의 워크 웨어는 진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근거로 자연스럽게 생긴 디자인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그것을 그저 멋의 관점에서 스타일과 유행으로만 받아들이죠. 해외의 흐름을 한국에 소개하는 역할이 디자이너들의 몫인데,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문제예요. 저는 여기에 한국적인 재해석을 더해 우리만의 독창적인 의미나 메시지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우리만의, 한국만의 이야기 말이에요. 어떤 문화적, 정서적 근거도 없이 단지 세계적으로 유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디자인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현실은 굉장히 안타깝죠.”



전경빈은 트렌드에 관심이 없다. 다른 패션 디자이너들과의 교류도 없고, 패션지를 펼쳐본 적도 없다. 패션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패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음악, 미술, 연극, 철학, 사상 등 패션이 아닌 분야가 대부분. 디자이너들의 사교 파티보다는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같은 오브제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뮤지션 친구들과의 대화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과거의 시간, 잊힌 기억을 현실로 불러와 재건하고, 그것을 의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전경빈의 핏보우다. 이것이 지금껏 그가 고집해 온 길인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









Show Me the Way



“비지니즈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핏보우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솔직함과 진심인 것 같아요. 언제나 ‘지금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저는 의상을 통해 DJ나 다큐멘터리 감독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에 다른 문화 예술 장르를 끌어들여,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의상으로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컬렉션 계획이요? 음반을 발표하듯 옷을 만들고 있는 핏보우의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해요. 창작물이 완성되었을 때 보여주는 시스템이죠. 핏보우가 만약 컬렉션을 한다면, 아마도 의상 세벌을 가지고 쇼를 해야 할 걸요? (웃음) 쇼는 재미가 없어요. 관심도 없구요.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어요. 정형화된 컬렉션이 아닌, 우리가 직접 연출한 핏보우다운 방식의 쇼라면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요. 앞으로도 여러 장르의 문화 예술을 합쳐 의상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을 표현하는 방식은 변함이 없을 거예요. 전경빈,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 잊힌 우리 이야기, 내 친구, 부모님, 동네 형들의 끝이 없는 이야기가 물론 모든 것의 바탕이 되겠죠.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주목을 넘어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핏보우가 알려져서 소통이 더 활발해졌으면 해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핏보우의 모든 과정들은 자연스러워요. 무엇하나 억지스러운 것이 없어요. 지금의 핏보우는 기존 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 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자신이 의상에 넣은 메시지의 의미를 실천하고 행동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핏보우는 더 발전된 표현력을 보여줄 수 있겠죠.”



디자이너의 의도가 의상을 통해 표현되고, 그 결과가 시작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핏보우 디자이너 전경빈의 생각이다. 전경빈은 지금도 모자란 내면을 채우기 위해 국회 도서관에서 책들에 파묻혀 지낸다. 지식과 경험치가 마침내 자신의 것이 되어 진정한 감동으로 다가올 때, 그는 세상으로 나아가 행동으로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실천과 동조를 구한다. 진실한 이야기는 외면당하지 않는다는 가설의 검증이다. 지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검증에 동참하고 있다. 포장이 잘된 거짓은 시간이 지나면서 들통이 나기 마련이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진정한 옥석은 가려진다. 전경빈은 지금 옥석으로 가려지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F.OUND magazine, December 2010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파운드 매거진과 조하나 에디터에게 있습니다.






Behind Story


전경빈과의 인터뷰를 준비할 때부터 유독 긴장을 많이 했다. 갓 창간한 독립 매거진 ‘멘땅에 헤딩하기’ 전문 신참 에디터에겐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인물'과의 만남은 더욱 쉽지 않았다. 브랜드 이름 ‘핏보우’와 그의 이름 석자 전경빈 말고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패션 비전공자로 패션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알려진 게 없으니 괜히 혼자 ‘외골수 괴짜에 깐깐한 성격이라 인터뷰 도중 쫓겨나면 어쩌지?’ 같은 걱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텅 빈 인터뷰 질문지를 들고 잔뜩 겁먹을 채로 그의 작업실에 들어갔다. 전경빈은 그때 나와 비슷한 걸 고민하고 자신이 납득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조금씩 분리해 가며 자신만의 단단한 성을 짓고 있었다. 인터뷰가 편해진 건 워밍업 때문이었는데 힙합 뮤지션이었던 그의 전적이 나의 홍대 힙합 클럽 알바 시대와 맞닿아 있었다. 천천히, 그렇지만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진중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는 여전히 핏보우를 통해 꽤 멋있는 걸 한다. 10여 년 전 인터뷰에서 말했듯 핏보우는 다른 패션 디자이너들이 하는 것에서 모두 벗어나 있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멋지다.

www.fitb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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