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는 나의 첫 광장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이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힘으로 밀어붙였다. 아무리 좋은 정치인이라고 패거리가 없으면 대한민국에선 정치를 할 수 없다.
난생처음 나간 광장, 구름 같은 인파에서 느낀 긴장감과 낯섦도 잠시, 광장은 유모차를 끈 엄마들과 눈빛이 맑은 청년들로 넘쳤다. 쭈뼛쭈뼛하던 나에게 누군가가 김밥 한 줄과 물을 건넸다. 그렇게 따뜻한 광장은 처음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민주주의와 연대가 광장에서 살아 숨 쉬는 실체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대단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며 연대의 힘은 거대하다는 믿음을 경험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시내에 나가면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은은하게 깔려있었다. “또 데모하나 보네.” 사람들은 입을 막고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어른들은 노조와 학생들의 시위는 폭력이자 위법이고 민폐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아이들에게 심어주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광장에 직접 발을 들이고서야 나는 ‘법이 있는데 왜 광장에 나가 떼를 쓰는가’ 하는 중도 양반들의 시선에 광장의 진정한 의미가 흐릿해졌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법이 있어도 광장에 나가는 이유’가 세상엔 아주 많다는 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광장의 목소리는 입법부를 압박해 법을 만들고, 사법부를 판단케 하고, 행정부를 실행케 하는 힘을 지닌다는 것을 배웠다.
운 좋게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20대를 보낸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불리게 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누리지 않고 내려놓으며 국민과 가깝게 소통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고, 정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최대한 국민에게 알리려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문화 수입의 빗장을 열며 일본에 우리가 뒤질 것이 없다고, 대한민국은 미래에 문화의 힘으로 먹고살 것이니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일본을 넘어 문화 소프트 파워 강국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도 기득권 세력에 희롱당하고 괴롭힘 당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언제나 의기양양했고 할 말을 다 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겐 몸을 낮추고 다정히 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후 또다시 나간 광장에는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깔려있었다. 물대포를 앞세운 경찰의 무력 진압, MB의 ‘명박산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2009년 용산 참사는 개발의 그늘 아래 쫓겨난 사람들의 절규를 국가가 폭력으로 짓밟은 비극이었다. 쾌적한 신도시를 걸을 때면, 이 땅 아래 묻힌 과거의 삶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질문이 맴돈다. 발전의 이면에 가려진 누군가의 희생은 정말 불가피한 것일까.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은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이었다. 독재자의 딸이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타임>지 표지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안겨주었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 MB정부를 견뎌낸 노동자들은 박근혜가 당선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농민 백남기 씨 물대포 사망 사건 등 수많은 국가 폭력과 2차 가해를 자행했다. 정부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과 혐오를 부추겼다.
MB정부에서 시작된 국가 주도의 사이버 심리전으로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한 대통령으로 남은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고 능멸하며 각종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의 여론을 조작했다. 경주마의 가리개처럼 진실을 외면한 채 폭주하는 권력 앞에 우리는 무력감을 느꼈다.
윤석열 정부는 거짓말과 비리로 얼룩진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며 더욱 깊은 절망을 안겨주었다. 윤석열을 선택한 사람이 내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냉소와 허탈감을 느꼈다.
그러나 윤석열 시대의 광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응원봉을 들고 나온 맑간 얼굴의 소녀들의 첫 광장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과 6.10 민주항쟁의 DNA, 민주화 정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5.18과 6.10은 3.1 운동, 3.1 운동은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한숨도 쉬지 않고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을 보고 느꼈다.
윤석열 탄핵 촉구 시위 ⓒ 뉴스타파
‘요즘 젊은 애들은 제밖에 모른다’며 비난하던 기성세대는, 오히려 젊은 세대에 대한 자신들의 무관심과 몰이해를 뒤늦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며 자신들이 이뤄놓은 민주주의를 무관심과 염세주의로 망치고 있다고 젊은 세대를 책망하던 86세대의 오만함은 광장에서 산산이 깨졌다.
MB와 박근혜 정부, 뉴라이트 사관을 주입하며 인문학을 말살하고 토론의 장을 닫아 버린 어른들에게 광장의 소녀들은 ‘우리가 나설 테니 걱정 말라’며 일어섰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만 듣던 아이들은 십 대에 세월호 참사로 또래 친구들을 바다에 잃고, 팬데믹을 겪었다. 이십 대에 이태원 참사로 또 다른 친구들을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잃었으며, 태어나 한 번도 겪지 말아야 할 비상계엄을 마주했다. 이 나라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희생한 86세대의 트라우마와 상처보다 이들의 것이 덜 하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어둠 속 작은 빛을 따라가다 보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 ‘촛불은 금방 꺼진다’는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조롱에도, 소녀들은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지키려는 순수한 열망은 값으로 칠 수 없다. 소녀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과 해외 뮤지션이 자유롭게 한국을 오가며 공연할 수 있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킨다.
집회 발언대는 더 이상 ‘중장년 고학력 비장애 이성애자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20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농민, 노동자 등 수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주류가 망쳐놓은 이 나라를 위해 싸운다. 경제 불평등, 젠더 폭력, 성 소수자 차별, 장애인 이동권, 노동 인권, 농민 주권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다. 광장엔 무지개 깃발이 넘실대고 사람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희망을 노래하고 춤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X(구 트위터)는 단순한 ‘팬덤’ 공간을 넘어,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새로운 광장이 되었다. ‘빠순이’, ‘오타쿠’라는 사회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온라인 광장을 넘어 오프라인 광장으로 뛰쳐나와 그동안 숨겨왔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서로 손을 맞잡는다. ‘개딸’이라 불리는 이들은 이재명의 패배에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꽃길을 만들고 “울지 마”, “괜찮아”, “잘했다”를 외치며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을 이었다. 대선 이후 버려진 듯한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사회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연대는 더욱 끈끈해졌다.
국가는 국민을 버릴지라도, 국민은 나라를 버리지 않는다. 해외 교포와 시민들은 추운 날 문화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주변 식당, 커피숍에 선결제를 하며 온기를 나눴다. 광주의 주먹밥에서 시작된 나눔의 정신은 핫팩, 보조배터리, 떡으로 이어지며 광장의 온기를 더했다. 기득권에 맞선 싸움은 안 될 거라 포기했던 사람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광장으로 향한다. 민주화의 고비마다 물길을 튼 것은 언제나 젊은 세대였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피어난다. 윤석열 정부의 폭압 속에서 오히려 과거 보수 정권에 의해 억압받았던 사람들의 조용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바로 그 상징이다. 제주와 광주, 가부장적 사회와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는 인간의 삶은 때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연약하다. 사람의 마음과 민주주의는 혹한과 눈보라를 견디고 피어나는 연약한 꽃과 같다.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속에 놓였던 이들이, 이야기의 힘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한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스웨덴 한림원 ‘노벨 주간’ 기자회견에서 수상자 한강 작가에 대한 외신의 첫 질문은 ‘45년 만에 대한민국에 다시 선포된 계엄령’과 ‘정부의 블랙리스트’였다.
나는 어떻게, 어떤 마음과 삶의 태도로 내 소중한 일상을 파괴하는 국가 폭력에 맞서고 올바른 시스템을 요구할 것인가. 아름다운 헌법, 고마운 일상,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신뢰, 연대, 그리고 희망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얼마나 파괴되기 쉽고 연약한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아름다운 헌법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와 이루지 못한 꿈이 짓밟혀 왔는가. 헌법은 아름답고 슬프다. 누군가의 고결한 ‘희생’, 피로 쓰인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 사랑하는 누군가의 자유와 창작을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응원봉 소녀들, 사랑하는 것을 찾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엄마, 아빠, 좋은 세상 만들어줘서 고마워. 이제 우리가 만들어 줄게.” 낡은 세대에게 시원한 하이킥을 날리고, 윤수일의 ‘아파트’ 대신 로제의 ‘APT’를 외치는 젊은 세대의 패기가 세대교체의 희망을 보여준다. 익명성에 가려진 온라인 공간의 사람들이 광장에서 얼굴을 맞대고, 고양이를 사랑하고 내향적인 다양한 사람들이 연대한다. “내 가수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서 노래하길 바라서 다들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순수한 마음들이 모여 광장을 밝힌다. 그 누가 그들을 이기랴.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수구 세력과 대비적으로, 광장의 젊은 세대는 사랑과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광화문과 여의도 사이비 기독교 집회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젊은 세대에게 윽박지르고 욕설을 퍼붓지만, 그들은 아름다운 연대로 맞선다. 진보, 중도, 보수, 좌파, 우파, 친일, 반중으로 편을 나누고 미움과 증오를 부추기는 것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배부르고 따뜻해야 가능한 사치이다. 계엄 상황 속에서는 극우 유튜버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태극기 집회조차 열 수 없다. 윤석열은 김건희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인격 없는 엘리트 지식인들과 양심 없는 정치인들, 너무 많이 때가 탄 언론인은 침묵한다.
1년 중 가장 밤이 긴 동짓날 밤, 남태령 고개는 서슬 퍼런 한기로 가득했다. 화장실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공간, 빌딩 숲도 편의점도 없는 삭막한 곳에 광화문 집회를 마친 소녀들이 모였다. 추위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생각을 멈추고 행동으로 옮겼다. “이제 곧 막차가 끊길 겁니다”라는 사회자의 말에 소녀들은 오히려 환호하며, 밤새도록 발언과 춤, 노래를 이어갔다. 농민들이 ‘농민가’를 부르면 소녀들은 ‘낭만 고양이’로 화답했다. ‘여성 농민가’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함께 울려 퍼지는 광경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수만 명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새벽 5시, 마침내 기자들이 도착하고 국회의원들이 경찰과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오래전 광장에서 경험했던 민주주의의 힘이 다시 한번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지원과 연대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남태령의 28시간은 서로에게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서로를 가르치는 학교였다.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의 현실은 영화 <서울의 봄>과 달랐다. 영화 속 이태신과 같은 정의로운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든 국가 기관들은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내란에 가담했다. 80년 광주의 지옥이 재현될 수 있었던 암울한 밤이었다. 하느님이 보우하고 천우에 신조가 겹쳐 대한민국은 겨우 살았다. 그날 밤, 군인 이태신은 없었지만, 국회 앞으로 달려가 계엄군을 막고 국회의원을 국회로 들여보낸 수많은 시민들이 바로 이태신이었다. 이름 없이 스러져 간 광주의 영령들이 2024년의 산자들을 이끌었다. 우리는 앞서 나간 자들에게 목숨과 민주주의를 빚졌다. 이제 산 자들이 그 뒤를 따른다.
12.3 내란으로 대한민국은 현존하는 모든 세대가 쿠데타를 경험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로 끈끈해진 연대는 경험을 더해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시민은 국가 권력에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고, 시민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이승만은 도망쳤고, 박정희는 암살당했고, 전두환은 죽어서도 여전히 묻힐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처럼, 광주의 영령들이 2024년의 산자들을 이끌고 있다. 이십 대가 되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 나라의 민주화를 보지 못한 광주의 영령들, 건강히 제대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젊은 해병의 희생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는 앞으로도 시민들의 무기가 되어 빛을 발할 것이다.
제각각 떨어져 있던 섬들이 광장의 바다에서 연결될 때, 그 바다는 빛으로 하늘을 물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