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내려주고 마트에 들러 간단히 필요한 것들을 샀다. 계산을 해주던 점원이 추운 걸 좋아하냐고 물었다. 난 털모자에 오리털 파카를 두툼하게 입고 있었는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던 점원이 그렇게 물었다. 얼떨결에 '응, 좋아.'라고 대답했다. 또다시 점원이 자기는 더운 것보다 추운 게 훨씬 좋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고 대답해 줬다. 사실 나는 추운 날씨를 싫어한다. 그런데 겨울은 좋아한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추위가 싫어서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한 모든 조치와 장치가(예를 들면 뜨끈한 방바닥, 따뜻한 이불과 블랭킷, 털모자, 부츠, 붙어 앉아 나누는 체온과 체취 같은 것들) 나를 너무도 아늑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겨울의 그 COZY 한 느낌을 사랑한다. 점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사랑하던, 그러나 얼마간 잊고 있었던 그 아늑함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마트 안에 있는 별다방에서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까라멜 마끼아또를 생크림 없이 주문했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던 기프트 카드로 결제했다. 이리도 즐거울 수가 없다. 역시 공짜 커피는 진리이다. 집에 가서 홀로 있는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어제 하다만 혼자 놀기를 계속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겠다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 시트에 히팅을 했다. 따땃해진 엉덩이 때문에 내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집에 돌아와 블루투스 스피커의 볼륨을 올리고 우퍼를 빵빵하게 더해 좋아하는 음악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그 고요함과 따뜻함 가운데 혼자 놀기를 시작하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왔다.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지나면 집집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낸다. 난 미국인은 아니지만, 미국에 살면서 미국 학교에 다니고, 미국 애들이랑 어울려 노는 아이들은 참으로 빠르게 문화를 주워듣고 체화한다. 그래서 우리 집도 땡스기빙 다음 날 트리를 꺼냈다. 그런데 어라,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분명 작년까지 멀쩡했는데. 그래, 잘됐다. 3년 전에 미국에 처음 와 저 트리를 샀을 때는 우리의 거처가 어찌 될지 모르는 가운데 아이들을 위해,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저렴이를 구입했었다. 작년에 이사를 하고 집과 어울리지 않는 트리가 참 마음에 걸렸었는데, 망가지지 않은 멀쩡한 아이를 버릴 수는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데까지 사용하고 다음에 새로 구입하게 될 때를 기약했었더랬다. 그 날이 이리 빨리도 올 줄이야. 몰아치는 비바람을 뚫고 온 가족이 맘에 드는 트리를 찾으러 다녔다. 예쁜 것은 비싸고 저렴한 것은 초라하다. 트리에 꽤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인가 하는 고민의 시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신랑은 다른 것에는 물욕이 전혀 없는데 가끔 저럴 때도 있네 싶게 배포가 커질 때가 있다. 신랑의 과감성은 나의 결정을 쉽고 빠르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구입하여 거실에 세워둔 높고 커다란 트리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보고 있으니 너무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앗, 그런데 크리스마스 스커트가 너무도 작구나. 작년에 열심히 코바늘뜨기로 만든 것인데. 트리가 커져버려 넌 너무도 왜소하게 되었구나. 이 방법 저 방법 생각해보다, 엄두가 나질 않는 관계로. 어느 다가올 크리스마스 시즌에 마음이 동하여 다시 시작하게 될 때까지는 그냥 두기로 한다.
크리스마스 카운트다운 보드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데코레이션 소품들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작년부터 만들어보고 싶던 소품이 있다. "크리스마스 카운트다운 보드" 12월이 되면 아이들이 카운트를 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까지 며칠 남았구나 하며. 시중에 판매되는 아이디어 상품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카운트다운 초콜릿, 카운트다운 레고 세트 등. 나는 시중에 팔지 않는 데코를 겸할 수 있는 보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준비물.
나무액자(나는 세일하는 것을 저렴하게 구입하였으나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스티로폼 보드에 테두리만 입혀도 될 것 같고.)
원통 모양의 종이 상자 24개.
종이 상자를 칠할 페인트.
데코 칼라 펜슬(글씨, 숫자 등을 쓰기 위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인 모양을 구상
하고 종이상자에 색을 칠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처음 칠한 색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아 말리고 다시 덧칠하는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시간은 배가 들었다.
Countdown 글씨가 마음에 안 들게 써져서 하얀색 페인트로 덧칠하고 그 위에 다시 썼더니. 역시나 티가 난다. 내 작품의 오점이구나. 다시 쓴 글씨는 더욱 마음에 안 든다. 그러나 들인 돈과 시간을 생각해 이것도 그냥 두기로 한다. 쩝,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구나.
아이들이 매일 상자를 하나씩 여는데 규칙을 만들었다. 세 아이가 모두 한 가지씩 자기가 한 착한 일을 말하기로 한다. 친구와 사이좋게 놀았어요,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였어요. 수학 시험을 백점 맞았어요. 점심을 맛있게 다 먹었어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성취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엄마의 '잘했어요, 상자를 여세요.' 허락이 떨어지면 상자를 개봉함과 동시에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상자 안에 뭘 넣어놓은 거냐고? 사실, 별것 아니다. 평소 좋아하던 초콜릿, 풍선껌, 50원짜리 동전 등등. 오늘은 낱개 포장되어 있는 육포를 넣으려는데 크기가 커서 상자 안에 넣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아노 의자를 열어보세요'라는 쪽지를 넣어두었다. 아직 열기 전이지만 분명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잔뜩 흥분하여 즐거워할 것이다. 저 카운트보드를 몇 년이나 쓸 수 있을까? 아이들은 자꾸 커가고, 언젠가는 카운트다운 따위는 하지 않을 날이 오겠지. 안에 들은 사탕이나 동전 따위에 환호성을 지르는 일도 없겠지. 그때는 또 그때 나름의 즐거움을 찾으면 되리라.
크리스마스 리스(Wreath) 만들기
준비물.
스티로폼 원형 틀, 코바늘, 여러 색의 면실, 데코용 스팽글, 나뭇가지, 전구
어느 집이나 시즌마다 문에 리스를 걸어둔다. 집집마다 걸어둔 리스를 보면 집주인의 취향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마트에 가면 시즌에 어울리게 장식해둔 리스가 지천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왠지 인위적이고, 따뜻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 취향인 리스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은 어느 것이나 그렇겠지만 디자인을 구상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이런 데코 용품을 만들 때는 모양적인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색 구성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몇 번을 고쳐가며 구상해놓고도 생각한 대로 나올까 반신반의했었다.
집에 굴러다니는 스티로폼 원형 틀이 있어서 재활용했는데, 거기에 실을 감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스티로폼이 온 집안에 날리고, 얇은 실을 이용했더니 감아도 감아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보란 듯이 검은색과 빨간색 실로 첫 단계를 마무리했다. 방울 모양, 원통 모양, 고깔 모양, 별 모양을 코바늘 뜨기로 만든다. 한두 개 만들고 색을 맞춰가며 중간중간 크기 조절도 한다. 위치를 잡아주고 글루건으로 붙이는 작업까지 완료한다. 코바늘로 긴뜨기를 여러 개 해 둔다. 각각 길이가 다른 긴뜨기를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뒷마당에 굴러다니는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와 그 위에 긴뜨기 한 직물을 묶어준다. 위에서부터 아래 방향으로, 짧은 것부터 긴 것의 순서로 묶어주면 삼각형 모양의 트리가 만들어진다. 트리 모양의 나뭇가지를 가운데 달아주면 마침내 리스가 완성된다.
생각보다 좀 작게 만들어졌지만 내 맘에 쏙 든다. 내 땀, 정성, 시간이 들어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리스이다. 리스 위에 전구도 감아두었는데 밖에 걸어두고 직접 스위치를 온/오프 해야 하는지라 전구는 잘 이용하지 않게 되더라.
크리스마스 데코 소품 만들기
준비물.
코바늘, 면실, 데코용 돌, 작은 비즈 몇 개, 연필, 나무 레터, 반짝이, 풀 등.
코바늘로 트리를 만들고 그 안에 솜을 적당히 채웠다. 나무 기둥을 만들 재료를 찾다 집에 뒹굴어 다니는 연필을 꽂았더니 딱 알맞다. 나무를 어떻게 세울지 고심했다. 다시 코바늘 뜨기로 원형 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매끈하고 둥글둥글한 데코용 돌을 사다 채워 넣었다.
한국에서 들여온 물건을 정리하다 발견한 저 십자수 액자. 저것이 아마 15살은 된 녀석일 것이다. 연애하던 시절 내가 신랑에게 만들어 선물했던 것이니. 소중한 추억이고 정성 들인 물건이니 가지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니 너도 쓸모가 있게 되었구나.
준비물.
고깔 모양 종이 틀, 폼폼, 면실, 단추, 별, 리본, 글루건 등.
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나의 혼자 놀기 흔적을 보고 달려들어 함께 만든 소품. 이제 만 4살 된 막내는 색색의 폼폼만 붙이면 되는 간단한 소품을 만들었다. 물론, 뜨거운 글루건을 알맞은 양으로 쏘아주는 것은 엄마의 몫. 6살이 다 된 둘째 아이는 나름의 창작 의도가 있어서 면실로 듬성듬성 두른 다음 정확히 계산된 양의 폼폼만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마지막 남은 틀은 엄마가 면실 감아, 뒹구는 단추로 데코. 별을 꼭 달아야 한다는 딸내미들의 성화에 마무리는 별 장식으로.
덧붙여 핑크 리본을 꼭 한가운데 달아야 한다는 막내의 요청도 수렴. 뭐, 아이들과 함께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준비물.
적당한 크기의 캔버스, 아크릴 물감, 붓 등.
요것은 큰 아이, 둘째 아이가 방과 후 활동으로 미술수업을 하면서 완성한 작품.
아이들이 스스로 완성한 작품이기에 애착을 갖는 그림이다. 나도 무척 마음에 들어 보관해뒀다가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꺼냈다. 꺼내서 적당한 곳에 놓는 일도 혼자 놀기의 한 과정이다.
준비물.
코바늘, 면실, 솜, 플라스틱 오너먼트, 전구, 유리병
큰 유리병에 오너먼트와 전구를 넣어 현관문 앞에서 반짝이게 하고 싶었다. 알아보니 만들어진 제품은 너무도 가격이 사악했다.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맙소사. 유리병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고민 끝에 다 먹은 김치통을 활용하기로 했다. 튼튼한 유리이니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활용이었다. 상표를 떼고 깨끗이 씻어 말렸다. 코바늘로 눈사람 얼굴을 만들어 솜을 채워 넣고 눈, 코, 입을 만들어준다. 모자도 만들어 붙여주고, 병 입구와 눈사람 머리 사이의 공간을 가리기 위해 목도리도 떠서 올려준다. 병 안에 색색의 오너먼트를 채워가며 전구를 넣어준다. 작년에 밖에 내놨더니 전구가 너무 금방 망가져 버려서 올해는 집 안에 들여놓기로 한다.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
크리스마스 시즌, 혼자 놀기의 진수는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이다. 미국은 카드를 엄청 많이 파는데 카드 값이 엄청 비싸다. 사실 그래서 만들기 시작했다. 시즌마다 써야 하는 카드는 꽤 여러 장이었으므로. card paper라고 하는 A4 용지보다 두툼한 종이와 색색의 펜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받는 사람에게 어떤 그림이 어울릴지를 생각하며 만드는 카드. 만들고, 쓰면서 차분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 되는 시간.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이만하면 크리스마스 시즌의 혼자 놀기는 거의 끝이 난다. 충분히 혼자 놀기를 하였으니 이제 가족, 지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공들여 분위기를 낸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고, 샴페인이나 가벼운 와인을 곁들일 테다. 선물을 주고받고, 마음을 담은 카드도 전할 것이다. 아이들은 선물을 열어보느라 난리통이겠지. 추위는 싫지만 겨울이 좋은 이유에 하나를 더 보태야겠다.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사실 혼자 노는 시간은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한 열정의 편린일 뿐인 것이다.
모두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