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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Mar 05. 2019

열셋. 회덮밥

스무 살에서 스물셋.

대전에서 공주로 통학버스를 타고 대학을 다녔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큰 종합대학이 아니었으므로 대학가 앞의 상권 따위는 없었다. 점심 식사 때나 공강 시간,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2천 원짜리 감자 수제비, 짜장면, 칼국수, 초등학교 급식실보다 작던 학생 식당에서 만들어내는 밥, 자판기 커피, 뭐 그런 게 다였다.


나는 대전에서 통학을 했고, 스무 살에 만난 남자 친구의 학교는 대전에 있었다. 남자 친구가 다니던 대학 가까이 또 다른 대학이 하나 더 있었다. 2개의 대학 사이에 자연스레 청춘들을 위한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곳에 가면 아기자기한 커피숍도 있고, 서른 한가지나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었다. 나름 핫하다는 프랜차이즈들도 있었다. 가장 좋은 점은 메뉴 선택의 다양성이었다.  


용돈 받아 생활하던 대학시절, 4500원짜리 회덮밥은 약간의 호사를 부려보는 고급진 음식이었다. 테이블 5-6개가 전부이던 그 회덮밥 집 앞은 식사 때마다 인산인해였다. 어떤 학생들은 밥그릇에 수저를 꽂아 밖에 서서 먹기도 했었다. 넣은 생선에 따라 메뉴가 여러 가지였던 것 같은데 제일 비싼 생선이라며 열심히 먹던 참치 회덮밥만 생각난다. 그리고 어떤 회덮밥을 먹던지 그 맛이 그 맛인 것 같은, 그런 기억이 혀에 남아있다. 회덮밥은 초장 맛으로 먹는 것인가? 그 시절,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 회의 맛을 더 깊이 있게 알고, 더 많은 회덮밥을 먹고 보고 나서 생각했다. 대학 때 먹던 참치 회덮밥에는 진짜 참치가 들어가지 않았을 거라고. 회덮밥은 초장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정말 회를 좋아하는 1인인데 말이다.

이 곳, 미국 중부에서는 날생선 구경하기가 정말 어렵다. 작년에 LA에 놀러 갔다가 한풀이를 한다고, 날마다 광어와 우럭 회를 사다 먹었었다. 좋아하는 회 먹으러 비행기 타고 4시간을 날아가야 할 판국이다.

그래도 2시간 차 타고 가면 사시미 등급 연어도 팔고, 참치도 판다. 연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선택의 폭이 제한적인 관계로, 자주 먹다 보니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곰들이 연어 철을 기다리는 그 맘을 알 것 같다고 하면 좀 오버스러울까? 더 아쉬울 때는 30분 가면 있는 한국마트에 가서 냉동 참치나 냉동 방어를 산다. 얼마나 오래 냉동되어 있었는지 확신이 없는 생선들. 왠지 날 것이 먹고 싶어 지는 날, 그것들을 사다 회덮밥을 만들어 먹는다.


야채는 집에 있는 재료로 대충 준비해본다. 마침 먹어 치워야 하는 양배추와 상추가 눈에 띈다. 아, 노란색 파프리카 반쪽도 남아있다. 잘 닦아서 물기도 털고, 먹기 알맞은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

냉동되어 있던 생선들도 충분히 해동하여 사각사각 썰어낸다. 대학시절 먹던 회덮밥에는 항상 회가 깍둑썰기 되어 들어가 있었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회덮밥의 회는 좀 큼지막해야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뭐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다.

 

야채는 끌리는 대로, 회는 깍둑썰기로 큼지막하게,


가장 중요한 것은 초장이다.

회의 질이 좋으면 그 맛으로 먹겠지만, 여기에서는 믿을 구석은 초장뿐이다.

아마도 대학 시절 먹던 회덮밥에도 고급 등급의 회가 들어가진 않았을거란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단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회의 등급도 약간 떨어뜨리지 않았을까? 괜찮은 가격에 혹하여 그래, 회덮밥은 본래 초장 맛으로 먹는 것이지 하고 주인과 손님, 모두에게 우겨보는 것일 뿐.


예전에 초장은 당연히 마트에서 사 먹는 장 종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만들어 먹는다. 초장을 먹을 일이 많지 않다 보니, 마트에서 사다 놓아도 버리는 양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구입을 주저하게 된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 먹게 되는 것이다. 두려워 마시라, 초장은 만들어 먹으면 된다.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 고추장, 식초, 설탕, 간 마늘, 사이다나 탄산수 등을 넣고 적당히 섞으면 된다. 뭐 느낌 아니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초장을 먹어보았는가? 누구나 다 아는 맛이므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난 계량보다는 감으로 요리를 하는 스타일인지라, 대충 감으로 때려 넣고, 맛보고, 내 입에 맛있다 싶음 합격이다.


한 끼 때운다는 말을 참 안 좋아하는데 말이다. (열심히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차려내는 시간과 공이 무시 당하는 거 같아서) 오늘은 있는 재료로 후다닥, 추억을 반찬 삼아 한 끼 잘 때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10분이면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

불 앞에서 요리하지 않는 착한 음식.

그러면서도 영양가 있는 음식. 

초장만 있으면 반은 성공.


추천합니다. 회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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