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밥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밥상 차리기 싫은 날, 외식할 장소도 마땅치 않은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늘 라면이다.
임신하고 라면은 입에도 안 댔었다. 몸에 안 좋아서 멀리 했다기보다는, 아이를 가진 나의 몸이 그것을 거부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정말 딱 첫 애를 임신하고부터였다. 라면 스프의 화학조미료의 맛이 나의 비위를 상하게 하여 막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라면을 멀리하였다.
출산하고는 괜찮을까 싶었는데, 그 후에도 별로였다. 먹으려고 맘먹으면 먹을 수 있지만, 여전히 거슬리는 화학조미료 맛이 올라왔다. 더군다나 수유하는 시절의 엄마 식단은 곧 아이의 영양상태와 관계되니, 오히려 출산 후에는 의도적으로 라면을 멀리하였다. 그렇게 아이 하나, 둘, 셋을 연달아 얻었다. 큰 아이를 임신한 2010년부터 막내 수유를 한 2015년까지, 거의 6년 간은 라면을 맛보지 않았다.
막내가 8개월 때, 모유를 떼고, 미국 땅을 밟았다. 지내다 보니 얼큰하고 칼칼하고 뭐 그런 게 먹고 싶은데, 당장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정말 라면밖에 없었다. 어랏, 월마트에 가니 신라면을 판다. 컵라면도 판다. 또 얼마 살다 보니 월마트에서 너구리 라면도 살 수 있다. 그래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이들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어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놓는 비상식량 중 하나가 되었다. 모유 할 때 라면을 피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나에게 라면은 밥 차리기 귀찮을 때 빨리, 대충 차려먹는 메뉴이다. 그런데 같이 사는 남자에게 라면은 이왕이면 맛있고, 건강하게 끓여먹는 음식이다. 내가 라면 끓이는 방법은 라면 레시피대로 물, 스프, 면을 넣어 끓이는 것이다. 그러나 신랑이 끓이는 라면에는 먼저 레시피보다 약간 많은 양의 물과 다시마가 들어간다. 다시마를 우려낸 물에 스프를 2/3 또는 1/2만 넣고, 면을 넣어 끓인 다음 파를 왕창 넣어 완성한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패스트푸드에서 슬로우푸드 맛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라면은 신랑이 끓여야 맛있는 음식, 신랑이 전담 셰프인 음식이 되었다.
오늘 점심도 딱히 반찬은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 이런 날은 라면이지.
"어제 애들 먹다 남은 쭈꾸미 있어."
내 말을 들은 신랑이 냉장고에 남아있는 쭈꾸미까지 넣어 라면을 끓였다. 오! 맛이 정말 끝내준다.
역시, 시간과 노력을 더하면 더욱 좋아지는구나. 라면 한 그릇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내가 잘하고 싶은 많은 일들에는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라면 한 그릇에 찰나의 깨달음이 왔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