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대한 감상적 고찰

by 하나


"악!! 비와. 난 비 맞는 거 진짜 싫어. 정말 싫어."


너는 참으로 난처한 표정을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넌 입대를 하여 첫 외박을 나온 참이었고, 청계천이라고는 와 본 적 없는 서울 지리에 까막눈인 청년이었고, 주위에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처마 밑에서 너의 당황한 눈빛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좀 기다리고 있어 봐. 얼른 가서 우산 사 올게."

"여기 어디 슈퍼마켓도 없는 거 같은데 어디를 가려고~~"


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넌 처마 너머로 넘어갔고 그리고는 내달렸다.


"금방 올게. 기다리고 있어."


내가 너무도 싫은 비 맞기를 피하기 위해 네가 빗 속을 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빗 속을 헤매었을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비 때문에 한바탕 소란을 벌이는 내가 까탈스럽다며 실망하여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조바심이 날 즈음 비가 그쳤다. 그런데도 너는 한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저 멀리서 얼룩덜룩한 군복이 보인다. 한 손에 비닐우산을 든 채로 또 열심히 뛰고 있는 네가 보인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처마 밑의 너와 내가 보인다.


"비가 그쳐버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호들갑 떠는 게 아닌데...."


금세 그쳐버린 비와 흠뻑 젖어버린 네 사이에서 민망하여 쭈뼛거렸다. 그런 내 앞에 서서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내 볼을 꼬집는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너에 대한 미안함마저 무장해제시켜버리는 그 원망 하나 없는 선한 웃음이 아직도 손을 내밀면 잡힐 것 같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난 참 비 맞는 게 싫었다. 언제쯤부터 그리도 비 맞는 게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은 꽤 상쾌한 일인데 비를 맞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하긴 비 맞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마는 난 좀 병적으로 거부했다. 우산을 쓰고 있으면서도 튀는 빗방울도 못 견뎌하며 신경질적인 나였다. 비는 찝찝하고 거추장스러우며 나를 기분 나쁘고 신경질 나게 하는 차가운 물방울일 뿐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저 날은 비에 대한 나의 감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날이었다. 나를 위해 해맑은 웃음으로 비를 맞던 너로 인해.


그 날 이후 비 오는 날이면 비에 흠뻑 젖은 네가 떠오른다. 환한 웃음으로 내 볼을 잡아당기던 그때가 뭉클뭉클 다가온다. 내게로 튀어 오르는 빗방울들로 인해 올라오던 짜증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 날의 잔상들로 인해 스멀스멀 누그러진다.



"엄마 비 와요. 우산이 필요해요."

"이 정도는 괜찮아. 차에서 내려 바로 들어갈 거니까."


어느 비 오는 날 아이들 학교 앞에서 나누던 대화를 듣던 네가 십 년 전 그 날처럼 선한 웃음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나가 많이 변했어. 비 맞는걸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비 맞고 서서 애들한테 하는 말 좀 봐. 크허허허"

"엄마, 엄마는 비 맞는 거 싫어해요?"

"응? 아, 예전엔 그랬는데 이제 이 정도 비는 맞을 수 있어."


'하나야. 괜찮아. 그냥 지나가는 비잖아.'


날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미소를 하고는 그 날의 네가 또 말을 걸어온다.

두근대던 그 시간의 너와 나를 싣고 비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