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남자를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니?
7년을 연애하고 결혼한 너와 나의 집들이에 온 한 친구가 물었다. 열아홉, 스물에 만나 7년을 연애하는 동안 우리는 세 번의 이별과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이별의 순간은 매번 네가 나에게 고했고, 난 눈물과 굳어짐으로 너의 고함을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니 나의 친구들에게 너는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였다. 어떤 친구는 두 번의 헤어짐 뒤 다시 너를 만나려는 나를 말리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는 날 이해할 수 없다 고개 저었다. 이별을 맞이할 때마다 난 무기력했고, 의기소침했고 혼자이고 싶었다.
친한 친구를 세 번이나 차 버린 '나쁜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한다. 더 필요한 것이 없냐며 살뜰히 살핀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나에게 저리 질문했었다. 그때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그저 웃고 말았다. 친구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몇 주가 지난 뒤에도 그 질문은 내 가슴 언저리에 남았다. 마음 한 켠에 빙빙 돌던 그것은 나, 너,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얼마 지난 후에 다시 만난 그 친구에게 나는 말했다.
내가 그를 변화시킨 게 아니라, 그가 변화하려는 마음을 내게 주었어.
나는 그저 받기만 했지. 그 사람이 나에게 맞춰주려 노력하는 마음을.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너는 내 친구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쁜 남자가 아니었다. 그 시간의 너에게는 오롯이 네가 감당해야 하는 마음의 짐들이 있었고 그런 짐들을 짊어지기에는 너는 아직 어렸고 약했다. 그저, 그래서 그랬던 것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날 때부터 우리 둘 사이에 청실, 홍실이 들려 있었는지 어쨌는지 우리는 엉켜진 그 실타래들을 잘 풀어내고는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그 엉킨 실타래들은 네가 풀고 풀어 길을 찾아내었다. 나는 그저 그 실의 끝을 놓지 않고 잡고 있었을 뿐.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인가 학교 기숙사에서 츄리닝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오던 너에게 내가 볼멘소리를 했다. 옷장 앞에 한 참을 서서 골라 입은 핑크색 스커트 자락에 걸쳐있는 나의 설렘이 무안할 지경이었다. 약간은 화가 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여 너에게 말했다.
저기 말이야, 나는 너를 만나러 오면서 어떤 모습이 예뻐 보일까, 너한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시간을 들이고 애를 쓰는데... 넌 나를 만나러 올 때 나에게 마음을 쓰지 않는 것 같아. 뭔가 좀 기분이...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그 뒤로 우리의 오랜 연애 기간 내내 너는 나의 저 말을 배려해줬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너의 노력하는 마음을 내게 전해주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내가 너에게 이런저런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너는 말없이 앉아있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내가.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했어. 앞으로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볼게.
나는 너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을까?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 이라던 오래된 카피 문구는 정말일까? 아는 언니가 말하길 남편은 살살 달래 가며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너와 결혼을 하여 7년을 함께 산 지금에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저 질문들에 대한 긍정의 답에는 항상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다. 네가, 남자가, 남편이 변화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상대를 위해 자신을 비워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모든 것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
하나,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아이를 키우는데 일관성을 가져야지.
아. 내가. 그 점은 생각을 못했네. 앞으로는 안 그러려고 노력해볼게.
네가 변화하려고 너를 비워 내어 준 마음은 전염성이 있는가 보다. 꽤나 나르시시즘형 인간인 나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내가 너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네가 나에게 변화를 가져왔나 보다. 그러고 보면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에서부터 발현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