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는 나라

by 하나

2년 남짓 다른 사회에서 생활하다 돌아왔을 뿐인데,

다시 돌아온 내 나라에서 나는 혼돈이 온다.

반가워야 할 내 나라에서 나는 온갖 위험 가득한 세상들을 직면하게 되고,

포근함을 느껴야 할 내 나라에서 타인을 향해 내뿜어내는 이유 없는 온갖 화들을 뒤짚어쓰고 있다.



Ep.1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에게 정차지점을 미리 말씀드렸다. 택시가 급 브레이크로 정차를 하였다. 뒤차가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댄다. 이어 택시기사가 뒤에 손님인 우리를 태운 채로 한 보따리 욕을 쏟아놓는다.

뒤차 운전자를 향한 욕이었지만 그 상황이 참 낯설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상황이 불편하여 앞쪽으로 더 가셔서 기사님 정차하기 편하신 곳에서 세워달라 말씀드렸다. 여전히 뒤에 차들이 따라오고 있었고,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같이 타고 있던 동생이 택시비를 건네다 동전을 떨어뜨렸다. 동생 보고 먼저 내리라 하고는 떨어진 동전을 주워 다시 건네는데 동전이 또다시 미끄러져 데구루루 떨어졌다.

택시기사가 버럭 짜증을 내었다. 아마도 받아야 하는 동전을 자꾸 떨어뜨리는 것이 여러 가지로 그의 심정을 건드렸을 것이다.



"왜 그렇게 급하게 하고 그래요?"


말의 끝은 -요를 붙인 공손체였지만 그의 음성은 온갖 짜증과 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말 끝에 들리지 않는 "ㅆㅂ" 따위의 욕설이 달라붙은 듯했다. 내 귀에 들리지는 않는 데 그런 온갖 욕설이 내 가슴에 와서 박히었다. 나는 참다 참다 더 이상은 친절함으로 그 기사를 대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차가 빵방 거리니 급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나도 그 기사가 느낄 수 있을 만큼의 화와 짜증을 담아 버럭 큰 소리를 내었다. 나의 버럭 거림에 흠칫했던지 그는 목소리에 힘을 빼고는 "내가 급하지 손님이 급한가?"라는 핑계로 마무리지었다. 미안하다는 사과 따위는 없었다. 그저 강하게 나오는 손님에게 좀 약해진 모습일 뿐이었다. 전형적인 강자 앞의 약자 법칙이었다.


너무도 기분이 나빠 대꾸도 안 하고 힘주어 '쾅' 택시 문을 닫아 버렸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자꾸 이유 없이 나에게 화를 낸다.

나는 그의 분노의 총알받이가 된 기분이다.




Ep.2

아이의 철분제 구입을 위하여 병원 아래에 위치한 약국에 갔다.

싱그러운 젊음을 가진 여성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 앞으로 걸어왔다.

나는 그녀에게 친절한 웃음으로 인사했고 친절한 음성으로 질문했다.

그녀는 웃음기 없이 로봇 같은 목소리로, 그냥 사갈 것이지 왜 그런 건 묻는 건데 하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나를 응대했다. 손님으로서 제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 묻는 것이 그리도 화나는 상황이었을까.

나는 기분이 나빠졌고 상처받았다.


나는 또다시 그녀의 짜증의 총알받이가 된 기분이었다.




Ep.3

어른 걸음으로 5분가량 있는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이 셋과 함께.

가는 그 골목골목마다 어찌나 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있던지 주차되어 있는 차에 가려 도로 위의 달리는 차들을 보기가 힘겨웠다. 달리는 차들도 어찌나 쌩쌩거리는지,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데리고 걷기가 너무도 위태위태하였다. 막내를 안아 들고 첫째와 둘째 손을 잡게 하여 뒤에서 양 떼를 몰듯 4차선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반쯤 건넜을 때 반대쪽에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주택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걷는 속도를 좀 재촉해보았지만 그 차는 결국에 우리 앞에서 위험천만하게 속도를 줄여야만 했다. 그리고는 차 밖으로 아이들과 나를 향해 흔히 말하는 쌍욕을 내뱉으며 다시 속도를 내어 쌩하니 사라져 버렸다.


아,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들도 욕 총알받이가 되었다.




Ep.4

아무 생각 없이 아이 셋을 데리고 캐리어 두 개를 끌고는 퇴근 시간 서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 시간이 퇴근 시간이라는 생각도 못했고(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불찰이었다.) 퇴근 시간의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어떠할 거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출퇴근 지옥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이가 있건 말건, 아이가 쓰러지건 말건 지하철 한 구석에 몸을 실기 위해 강한 힘으로 밀어대는 인파에 나는 그만 실성할 지경의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한국에 살 적에 서울에 살아본 적도 없거니와, 한 번씩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신랑과 나누었던 대화가 스쳤다.


"우리는 서울에 못살겠어, 그렇지? ㅎㅎㅎ 여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못살아. 숨이 막혀서."


지하철 안의 인파도 숨이 막혔지만, 상대에 대한, 적어도 어린아이에 대한 손톱만큼의 배려가 없는 상황에 심히 당황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어린아이마저도 배려할 여유가 없는 그네들의 일상에 울컥했다.

결국에는 그들을 이런 일상으로 내던진 이 사회가 원망스러웠다.


내 아이들은 어린이로서 누려야 할 보살핌과 배려의 권리를 상실해가고 있다.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갖는 편의와 권리 따위는 둘째 치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오히려 눈칫밥을 먹고 있다.




이른 아침 시간에는 택시 잡기도 힘들다며 치과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아빠와 함께 차로 이동 중이었다. 평소 점잖게 운전하는 편인 아빠 차 뒤로 SUV 한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니 옆 차선으로 급히 차선을 바꾸어 다시 아빠 차 앞으로 그의 머리를 들이대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얼마 전의 택시기사가 생각났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아빠의 입에서 나올 말이 듣기 무서웠다.


"아예 들이받아라, 들이받아 이놈아."


내가 있어서였을까, 다행히도 아빠의 입에서 욕설은 나오지 않았다. 꽤 당황하고 놀라셨을 텐데 목소리도 예상한 것만큼 격앙되지 않으셨다. 그 순간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 안도감 뒤에는 이런 나의 감정이 숨어 있었다.


'우리 아빠는 그래도 사는 게 그리 빡빡하지 않구나. 다행이구나.'

그런 감정 뒤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나있어.

아무리 친절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을 걸어도 자꾸만 화를 내.

난 그 사람을 잘 모르는데, 그 사람도 나를 잘 모르는데 자꾸만 나한테 화를 내.

그래서 자꾸만 나도 화가 나려고 해.


다들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 거야.

살기가 힘들고 고되니까.

자꾸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2년 전에 나도 그랬었을까. 상대에게 나 힘들다고 저렇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었을까.

모두가 그런 일상에 너무도 익숙해져 그것이 당연하다 느꼈을까. 그런 일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 남짓.

난 내 나라를 '이 나라'라고 칭하기 시작했고,

이 나라에 화가 가득 차 있는 것이 불편하기 시작했고,

자꾸만 나에게 화를 내는 불특정 다수에게 상처받기 시작했고,

나에게 상처를 준 그들에게 나 역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날마다 한다.

아니, 더 솔직한 심정으로 이 나라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날마다 한다.




그러니, 앞으로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수많은 물음만 머릿속에 한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