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결혼하고 대전에 있는 낡은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들어갔다. 그는 아직 학생이었고, 졸업하고 나면 어느 지역에 터를 잡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 신혼집에서 3년 반을 살고 우리는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신혼집에 살면서 전셋값을 두 번이나 올려줬지만 그 돈으로도 수도권 내 집을 사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또 우리는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수도권 집 치고는 가격 대비 넓은 아파트였지만 벽에 곰팡이가 피던 집이었다. 아이가 셋이나 생겼지만 전셋집 신세라 이도 저도 못했었다. 나는 투덜댔다. 언제쯤 내 집이 생겨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거냐고. 내 집이 아니어서 아무것도 맘 편히 할 수가 없다고.
나에게 집은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언제 떠나게 될지 몰라 마음도 짐도 들이지 못하고 동동거리며 사는 곳이 아니라 항상 내가, 내 소유들이 있어도 될 곳, 그래서 그 안에서 내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결혼한 지 7년 반,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가까이 되는 어느 날 우리의 첫 집이 생겼다. 우리의 첫 집을 미국에서 갖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리되었다.
여기에서는 자기 돈 다 내고 집 사는 사람 없다며 은행에서 집 값의 반이 넘는 금액을 모기지를 얻어 집을 샀다. 20년 동안 값아야 하는 플랜이고, 원금과 이자로 한 달 수입의 1/4이 나가는 집이다. 그러니까 명의는 내 집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우리 집은 은행 것이 되겠다. 거액의 대출을 갖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사람인지라 한국에서라면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집을 가져야만 했고, 그렇게 갖게 된 이 집이 참말로 좋다.
이제 이사 들어온 지 한 달쯤 되어가는 우리 집 소개를 간단히 해볼까 한다. 이 작은 시골 동네에서 집을 사려고 6개월 동안을 돌아다닌 후 이 집을 만나게 되었다. 집 터를 닦고 막 뼈대가 올라간 이 집을 우리는 덜컥 계약했다. 이곳에서 살고 계신 한국 분들도 새 집은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하였다. 새 집 사기는 그렇게도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리는 저질렀다. 덕분에 집의 구조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었다. 열린 공간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우리, 사람 좋아하는 우리,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 뭐 이런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했다.
우리 집은 이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미국집이다. 크게 1층과 지하로 구성되어 있고,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는 집이다. 1층에 방 3개와 화장실 2개, 거실과 부엌, 아침 식사 공간과 다이닝 공간, 세탁실이 있고 지하에 방 2개와 화장실 1개 그리고 패밀리룸이라 불리는 또 다른 거실 공간이 있는 집이다. 1층 아침식사 공간 옆으로 문을 열고 나가면 2층 높이의 데크가 있고 데크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마당의 파티오를 만날 수 있으며 파티오를 통한 문을 열면 지하로 연결되는 출입 공간이 있다. 듣기에도 꽤 넓은 공간이라 상상될 게다. 그렇다. 한국 아파트 생활만 하다 보면 넓은 집이다. 한국 평수로 환산해보니 1층 실면적이 대략 48평 정도 나오는 공간이다. 지하에 40평 정도의 생활공간이 더 있으니 꽤 넓은 집이다.
다섯 식구 사는데 그렇게 넓은 공간이 필요하냐고 묻는 이 있을 수 있겠다. 많은 빚을 져가며 굳이 그렇게 큰 집을 사야 했냐고 묻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한국에서 미니멀 라이프가 확산되고 있는데 넌 혹시 그런 건 아냐고 묻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네, 네. 저도 압니다. 지나치게 넓을 수 있다는 것을.
네, 네. 저도 압니다. 빚이 꽤 있다는 것을.
네, 네. 저도 압니다. 미니멀 라이프.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넓은 건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빚을 져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니멀 라이프가 꼭 정답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와 내가 원하는 집에 관한 그림은 아이가 늘어감에 따라 점점 뚜렷하게 그려졌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집은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세상 가장 편한 공간이어야 하며, 우리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지금, 여기에서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이었음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었다. 아이들이 책 읽고 싶을 때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고, 밖에 나가 모래 놀이하고 싶으면 모래 놀이할 수 있어야 하고, 뛰어놀고 싶으면 뛰어놀 수 있어야 했다. 축구공 차고 싶으면 공 하나 가지고 나가 뻥 찰 수 있어야 하고, 자전거 타고 싶으면 타면 되고 산책하고 싶으면 산책하면 되는 곳이었음 했다. 뒷마당에 아이들 놀이터도 크게 만들고 우리 먹을 채소들도 좀 심고 그러고 살면 좋겠다 하는 꿈을 가졌었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든, 또 그와 내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든, 그 시기가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항상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꼭 지금이어야만 하는 집이 있다. 그런데 대출 없는 인생을 원하는 나에게는 그 중요한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들이 그냥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것들, 누리고 싶은 것들을 나중으로 미루며 살고 싶지 않아졌다.
꼭 미니멀 라이프일 필요는 없다. 사람들의 취향과 성향이 제각각이니 모두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미니멀 라이프가 추구하는 무소유와 무집착의 삶은 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꼭 무소유와 무집착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꼭 당장 떠날 수 있는 여행 가방 하나만큼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얻는 만족감이 악일 필요는 없다. 소유물을 만들고 그것을 관리하고 가꾸어가면서 얻는 기쁨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 큰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우리의 생활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의 에너지가 분산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서로 부대끼는 일도 덜하고 나도 그도 육아에 숨통 트일 공간이 많아졌다. 또 잔디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작은 밭을 만들어 각종 채소들을 심고 가꾸는 등 함께 할 수 있는 노동의 기회가 많아졌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노동의 시간은 좋은 추억거리가 될 뿐 아니라 밝은 에너지를 선사해준다.
또한 엄마, 아빠인 나도 그도 각자의 공간을 조금은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늘어놓고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그에게는 치우지 않아도 공간이 넘쳐나는 넓디넓은 테이블이 생겼다. 그는 나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일하다 쉬다를 반복할 수 있어 좋고, 나는 넘쳐나는 책들과 서류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아가며 잔소리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나 또한 그 넓은 테이블을 공유하며 글을 쓴다. 공간이 넓어지니 마음이 너그러워진다고나 할까. 가라지 공간은 그가 새로 갖게 된 취미인 소가구 만들기를 하기에 충분하다. 점심 식사 후 햇빛 내리쬐는 데크에 나가 초록이들을 마주하며 하는 커피 한 잔이 그리 행복할 수 없다. 아마도 후에 내가 잠시 접어둔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하려면 지하의 어느 방 하나쯤을 내 것으로 해도 좋을 것이다.
꼭. 지금이어야 하는 집이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에게 꼭 지금 필요한 집. 언제나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리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 부부의 관심사와 중요사가 달라지면 우리에게 꼭 지금이어야 하는 집의 모습은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또 그때의 꼭 지금이어야 하는 집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