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는 것은 무엇이지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지요?
그냥, 그냥 살면 안되는건가요?
그냥 살아보죠.
어느 TV프로그램에서 남편 따라 한국에 들어와 산 지 10년도 더 넘었다는 한 독일인 여성을 보았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했었다던 그녀는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100년은 된 옛 집을 고쳐 살고 있었다. 인터뷰 중 그녀가 이야기했다. 얼굴은 그야말로 나는 외국인입니다 하는 여성이 또박또박 한국말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장면은 참 뭐랄까, 당돌하다 못해 기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국 사람들 열심히 살자는 말 많이, 자주 하는데
열심히 사는거 뭐에요?
열심히 일한다는 말은 알겠어요. 그런데 열심히 사는거 뭐죠?
사는건 그냥 사는거 아니에요?
퇴근 후의 자유로운 내 시간마저 보장이 안되는 한국에서 사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참 뭣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살던 젊은 나는 퇴근 후의 시간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직장 생활을 했었지만, 나 역시 그 시기 저런 말을 들었다면 등 따시고 배부르니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나도 치열한 경쟁 속의 한국 사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사회 생활을 했으며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고, 그러나 또 내일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만 하느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괴로워했었다. 그러다 잠시 여유가 생기는 시간이 오면 몸이 고되고 맘이 부대껴 그런 철학적 생각은 저기 개나 줘버려라 하는 심정이곤 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멍해지고 싶었었다.
지금의 나는 퇴근 후의 자유로운 시간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여유있는 점심 시간도 보장되는 곳에서 살고 있다. 물론, 나는 이 곳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냥 가정주부로 살고 있지만, 내 주위에 일하는 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 여유로움이 충만하여 내게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곳에서의 점심, 저녁 식사 시간은 먹는 것이 부수적인 일인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 나누고 눈 마주치며 온기를 전하고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것이 중심인 것만 같다. 식사는 그런 것들을 하는 중의 하나로 끼워넣기 한 것만 같다. 하루를 또 열심히 살아내기 위해 소음 속에서 우걱우걱 음식물을 밀어넣던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의 주인은 나다.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면 그냥 살아진다.
그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과거의 내가 짠해질 때도 있고 여전히 그곳에서 찬라한 시절을 이 악물고 버티는 많은 젊은이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너의 시간을 너의 것으로 하는 삶을 살아, 아웃사이더가 될지언정 그렇게 그냥 살아보는건 어떻겠니?' 라고 전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하긴 같이 사는 남자는 아직도 이곳의 그냥 사는 삶에 적응중이다. 워커홀릭 중증도쯤 되는 그는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와서는 밥먹을 때도 일 생각에 심각한 얼굴을 하기 일쑤이며 예전 그곳에서처럼 식사는 허겁지겁한다. 그래도 그런 그에게 점심은 나와 함께 여유있게 먹자며 꼬신다. 너도 나처럼 금방 그냥 살아질거야 라고 자꾸 꼬시는데 그는 좀처럼 그냥 살아지지가 않는가보다. 그곳에 돌아가면 그는 결국 그냥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여전히 그냥 살아지지 않는 그곳이,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그곳이 그립다. 나는 본의아니게 그곳에서 도망치듯 나와 그냥 살아지고 있으나 다시 그곳에 돌아간다면 예전보다는 덜 열심히 살겠노라고, 그냥 살겠노라고 되뇌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