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꼴이 참.
생각과 한숨, 슬픔과 분노, 헛웃음으로 가득했던 한 주였습니다. 개인적인 일상을 살아내고 그 안에서 갖는 감상이나 감성들을 글쓰기로 풀어내는 일 자체가 죄스럽기까지 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줄곧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나는.
줄곧 모범생 줄을 따라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초,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 내내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이 곧 법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여, 그 흔한 반항 한번 해보지 않고 자랐습니다. 나는 요즘 아이들이 참 지랄 맞게 보낸다는 사춘기도 뜨뜻미지근하게 지나쳐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는. 참 복잡한 생각이 싫은 사람입니다. 투표권 행사하는 국민으로서 내내 나는 정치나 국가의 사안에는 무덤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한 번씩 답답해 보이면 제일 먼저 혼자 구시렁구시렁 울분을 토하곤 하는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아무리 국민들이 구시렁 거려 봤자 나라는 또 저 위에서 주무르는 사람들 마음대로 굴러가겠지라는 체념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시절.
모범생 줄 따라 살던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부모님께 하는 모범생 역할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용돈 받아쓰는 주제에 어떻게 그런 호기로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난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나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과 몸의 자유로움이 넘쳐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시절 누구나 다 한 번쯤 해보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참, 한심한 일일까요? 대리출석 말입니다. 그전까지는 그런 걸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제가 참 패기 있게도 대리출석이라는 걸 해보았습니다. 한 두어 번 해보았을 까요. 대학교 1학년, 우리 과에서 성행하던 그 대리출석은 우리가 1학년을 마치기 전에 막을 내렸습니다. 대리 출석한 것을 교수님께 들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들은 알고 계셨음에도 눈감아 줬을 겁니다. 과 안에서 이건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들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을 빠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수업을 빠지는 것에 대한 책임 또한 개인의 몫이다. 여러 명이 수업을 빠져 수업 전반에 미치는 좋지 않은 영향까지는 참을 수 있으나, 수업에 빠지면서 참여하는 척 거짓을 말하는 것은 참 그릇된 일이지 않느냐. 학교 특성상 한 과에 30명 남짓이 전부였던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던 그 날 처음으로 심한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 나는. 대리출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마 누군가 이건 잘못된 것이라고 용기 있게 소리 내던 그 날이 없었더라면 서로 눈치를 봐가며 4년 내내 대리출석이 성행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심난하고 가슴 먹먹한 시국에 10년도 더 지난 그 옛날 일이 떠오릅니다. 나는 그 날 우리 그러면 안된다고 소리 내어주던 그 친구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내게는 중요했습니다. 또 한 번 그 날처럼 창피함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나는 왜 국민으로서 무관심했던가, 당장 먹고 살기 급급한 형편도 아닌 나는, 나 정도는 소리를 내야 하지 않는가. 이제 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온 마음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나 난 또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몰라 여전히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배움에 힘쓰던 학창 시절, 모범생인 내게 누구도 자신의 소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가르쳐줬더라면 모범생인 난 또 열심히 배웠을게 분명한데 말입니다. 그래서 가르쳐주지 않았나 봅니다. 내 소리도 어찌 내는지 모르면서 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쳐 줘야 하나. 이런 생각도 밀려옵니다.
누군가 쓴 것을 읽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고 산답니다. 그리고 그 잘못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못하고 타인의 잘못을 질책하러 거리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더군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같은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던지는 돌을 맞을 여인은 그냥 개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죄에도 경중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을 가르치는 신의 나라에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신이 굽어살피는 불쌍하고 가엾은 이들이 있을 뿐이지요. 저는 촛불 밝히러 거리로 나선 국민들을 향해 내는 누군가의 그 말에 참담함과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내가 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내게 참담함과 배신감을 안겨준 누군가에게 "당신의 그 말은 틀렸습니다."라는 단호한 말로 저의 작은 소리를 내기 시작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