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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탐구생활 Aug 09. 2020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두려움의 가면을 벗는 것

딸아이를 통해 나를 배운다.

엄마가 되고나서부터는 줄 곧 아이와 부딪치는 감정 들이 힘들었다.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한 감정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돌아보면 아이를 키우며 되려 ‘나’를 키우는 내안을 탐구하는 시간들이 진정 나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둘째 딸아이

아이를 통해 난 ‘질투’라는 감정을 엄청나게 억압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엄마는 왜 나보다 오빠를 좋아해 ?”

“ 엄마는 내 엄마인데 왜 내 친구에게 더 친절해 ?”     


관계 안에서 아이의 순수하고도 직설적인 표현은 내 안의 것들을 건드리며 불편함을 주었다. 나는 왜 이렇게 아이의 솔직한 표현이 불편할까 ,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


'도대체 이 이상 뭘 더 얼만큼 달라는 말이야 ?'

때때로 아이의 말 한마디에 뜨거운 분노가 올라오기도 했다.     


.


.

육아서와 심리서를 읽어가며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까를 고민하던 초보엄마는

아이를 통해 화가나던 그 지점이 나의 내면아이가상처받은 지점과 같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시때때로 엄마의 사랑을 요구하는 아이의 표현 안에서 나는 내안에 들춰보고싶지 않았던 ‘질투’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

양보하는 걸 싫어하는 아이

자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

엄마의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은 아이     


아이의 날 것 그대로의 불편한 표현을, 날 향해 날라 오는 부담스러운 요청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어려서부터  ‘질투’라는 감정을 경멸했다.

질투는 여자들의 유치한 감정싸움이라 치부하고 질투하는 감정들을 가차 없이 비난했다.


어디서부터 온 신념일까   ?


학창시절,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알게모르게 서로를 질투하며 생채기를 주던 관계가 힘들었다. 

3살 터울 진 나의 친오빠가 맺는 친구관계를 늘 동경했다.

어린 나의 눈에 남자들의 관계는 쿨하고 질투 따위의 유치한 감정놀이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속한 그룹에 경계 없이 또 다른 친구를 들이고,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쿨함,

왜 남자들은 운동하면서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팀을 맺고 함께 운동을 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는가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더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내려가 보니 질투라는 감정은 꾀 오랜 시간 내안에서 부정당했고, 부피를 줄이기 위해 발로 밟아 버리는 패트병처럼 아주 꾸욱 짖눌려 버렸다. 입 밖으로는 물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아주 꾸욱 -

   

그렇게 ‘나’를 탐구하는 시간을 갖고 나니, 내 딸아이의 말이 불편함 없이 들린다.

되려 거침없이 표현하는 아이가 참 부러워진다.


실은 나도 주인공이고 싶었고,

양보하기 싫었고,

내 엄마가 나보다 내 친구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게 싫었다.     


그렇게 난 아이가 투명하게 보여 주는 ‘질투’의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

인정 하고나니 이미 나 스스로 수많은 타인들과 비교하고 교묘히 질투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알아차리기도 어렵게 내안에 질투라는 감정이 숨 막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쁘고,

똑똑하고,

인기도 많고,

애도 잘 키우는     

셀 수 없이 교묘히 질투해 온 많은 사람들,

어떻게 하면 내가 초라해지지 않을까, 비교에서지지 않을까, 그들의 허점을 찾아 헤메이던 내 모습을      



이제 진공 포장해 놓은 그 것의 뚜껑을 천천히 돌려 숨쉬게 해주어야 겠다는 사실을,     

그리고 난 내 딸아이처럼 용기 있게 그 감정을 표현하기로 한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한다.

예뻐 보이면 예쁘다고 칭찬하고

친해지고 싶으면 친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의 허점 찾기를 멈추고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모든 관계에서 놀라운 편안함을 느낀다.

 

초등학생이 되어서 좀 컸나보다 생각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 오빠랑 나랑 누굴 더 사랑해 ?” 

“ 왜 저친구한테만 친절해 ?” 라고 말하지 않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와 우연히 질투의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하연이는 요즘 질투 안해 ?”     문득 궁금해져 아이에게 물었다     

“ 응 엄마 요즘은 질투 안나 ”     

“왜 ?”     

“이제 나도 할 수 있고, 나도 가질 수 있으니까 ”     


아이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듣고는 눈물이 핑 돈다.

30년 넘게 살아오면서도 알지 못했던 그것을  ,


내가 못한다고 생각했고

내게는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렇게 질투 나던 것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더 갖고 싶고

몰래 갖고 싶어했고

갖고 싶지 않은 척했던 그 감정.    


아이는 정확하고 명확한 언어로 알려준다. 



그 질투심은 나도 하고 싶지만,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는

어떤것에 대한 두려움에 가면이였던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버젓이 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다

- 아티스트 웨이 중,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시시때때로 느끼는 나의 감정을 살피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가장 나다운 것, 아이의 날것 그대로의 순수한 표현을 통해 끊임없이 내 안의 불편함들을 들여다보며

두려움의 가면을 벗을 용기를 내 본다. 

아이를 통해 나를 알게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진짜 나다움을 나답게 사는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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