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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24. 2023

삼위일체론을 제대로 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설명 듣고도 이해 안되면 포기하세요


삼위일체론에 대한 질문을 잘 살펴보면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번 째 단계는 삼위일체가 도대체 뭐냐? 하는 삼위일체론 자체에 대한 질문이고

그 다음엔 이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도대체 왜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도움이 되는 유익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삼위일체 교리란 

말 그대로 세 분의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 세 분 모두 동일한 본질을 지니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교리입니다


즉 세 분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뒤따르는 질문이 

도대체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개념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현실 세계, 물리세계에는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신학자들이 

이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려 애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완벽한 설명은 할 수 없더라도 

어느 정도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느정도 납득이 되었을  때

'아 삼위일체란  그런거구나' 하고 

우리가 이 개념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인간의 언어로 이해한 삼위일체의 개념은  

물체의 그림자 정도를 파악한 것에 불과합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그 사람의 피부색이나 얼굴 생김새까지 알기를 기대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방법으로는 


삼위가 무엇인지, 일체가 무엇인지 각기 따로 살펴보고

그리고 나서 삼위가 어떻게 일체로 존재하는 지를 생각해 보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대로 설명해 보자면 

말 그대로 삼위는 세 개의 위격을 말하고 

일체는 하나의 본체, 본질을 뜻합니다


여기서 위격이란 말이 좀 생소한데 

이 말은 라틴어 persona (영어로는 person ) 에서 온 말로  

즉 인격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좀 쉽습니다

즉 세 분의 서로 다른 인격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삼위니, 일체니 하는 말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말입니다

기독교 교회가 생기고도  한 참이 지난 4세기에 비로소 

교부이자 법률가인 터툴리안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입니다


터툴리안이 이 말을 사용했을 당시 라틴어 persona 는 

오늘 날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인격' 이란 말과 정확히 동일한 의미를 갖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극장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썼던 

가면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전문 배우들의 수가 많지 않아 

한 배우가 가면을 바꿔 써가며 여러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나 여자 배우들이 드믈어 

남자 배우가 여자 가면을 쓰고 여자 역할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때 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페르소나 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또 하나  persona라는 말이 사용된 예는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정에서 

개인적인 사유 재산과 관련되어

사적 재산과 개인적인 소유물, 

즉 자신에게 속한 것을 뜻하는 말로 

페르소나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부이자 동시에 법률가이기도 했던 터툴리안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가면과 재산과 관련된 

두 가지 의미를 가진 persona 를 

삼위 하나님의 세 위격의 의미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 헬라 신학자들은 위격을 지칭하는 라틴어 persona 를 

헬라어로 번역할 때

persona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소폰' 으로 번역하지 않고

'휘포스타시스' 라는 다른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휘포스타시스 라는 말에 의해 표현된 신학적 개념은

'실재' 또는 '본질' 이라는 개념입니다

즉 헬라 신학자들은 세 위격들을  

세 persona(세 인격)들로 이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이 것이 각기 분리된 세 분의 존재를 지시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다신론의 일종인 삼신론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헬라 신학자들이 선택한  '휘포스타시스' 라는 말은 

우리가 흔해 생각하는 존재나 실존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에 더 가까운 뜻입니다


'존재' 가 '존재하지 않는 것' 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당시 철학적 사고에 능했던 헬라 신학자들의 사고를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존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로는 existence 인데 

이 말을 가만 살펴보면 밖으로' 라는 의미의 ex 라는 말과 

'서다' 라는 뜻의 stence 라는 말의 합성어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존재' 라는  existence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밖으로 서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무엇의 '밖으로 서' 있는가? 했을 때, 

고대 철학자들은 이것을 '본질적인 무엇인가' 의 밖에 서 있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하기에 

진정한 존재, 진정한 본질 그 자체는  

우리가 볼 수도, 알 수 도 없는 그 무엇인데

그 무엇인가가  밖으로 exit 하여  조금 삐져 나왔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존재' existance 로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대 철학자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존재' 라는 말 대신에

진정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을 따로 사용했는데 

그 말이 바로 '휘포스타시스' 입니다 


휘포 라는말은 '~아래' 라는 뜻을 가진 말로써, 영어로 치면 전치사 below 같은 말이고

스타시스 는 '서다' 라는 뜻이니 (영어로 stand)

휘포스타시스 라는 말의 문자적 뜻은 '아래에 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휘포스타시스는 

밖으로 삐져 나온 것 existance 와는 달리

존재가 삐져 나와 우리에게 보이기 전,

그 아래에 서있는 그 무엇, 즉 진정한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의 물질을 뜻하는 substance 말 또한 

같은 맥락으로 아래를 뜻하는 sub 접두어와 

'서다' 를 뜻하는 stance 가 합쳐진 말입니다 


결국 헬라 신학자들이 

위격의 세 하나님에게 

persona 대신에 휘포스타시스 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신격의 위격적 구별은 

구별된 세 실존적 존재들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대신에 

세 실재, 즉 세가지 구별된 

근원적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신격 안의 세 위격들은 모두 

한 본질(동일 본질)이기 때문에


본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본질 안에 

구별된 세 실재(휘포스타시스)가 존재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세 교회가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 서방교회와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 동방교회로 분열하면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혼동을 일으킵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헬라어를 사용한 그리스 쪽의 동방 교회의 경우 삼위일체를,

위격은 휘포스타시스로, 

일체는 또 다른  본질을 뜻하는 헬라어인  '우시아' (영어로 말하면 에센스) 라는 말을 써서

한 우시아(본질)에 세 휘포스타시스(위격)이 있다고 삼위일체를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의 동일한 신성을 강조한 반면


라틴어를 사용했던 로마의 서방교회에서는

위격은 페르소나로, 

일체는 (동방교회가 본질을 뜻으로 사용했던) '우시아' 라는 말 대신에 

'숩스탄시아' (영어로는 substance) 를 사용하여

한 숩스탄시아 안에 세 페르소나가 있다고 정의내린 것입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위격의 구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니깐 정리하자면

동방 교회에서 위격을 말했던 휘포스타시스가 

서방 교회에서는 일체를 말하는 숩스탄시아 로 받아들여 졌기 때문에

안그래도 혼란스러운 삼위일체 교리가 더욱 더 혼란스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혼동은 되지만

삼위가 뭔지, 일체가 뭔지 설명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정작 어려운 문제는 

삼위가 어떻게 일체를 이루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셋이 하나이고 하나가 셋이냐 하는 이 부분이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은 

하나님은 오로지 한 분 뿐이라는 유일신론/단일신론 아니면

세 하나님이 계신다는 삼신론, 이 두가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을 주장했던 교부들이 생각했던 삼위일체론은

그런 일신론이나 삼신론과는 거리가 멉니다


교부들은 삼위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페리코레시스' 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명합니다


< 페리코레시스 (Perichoresis) >


우리가 흔히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해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예수님이시다 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은 그게 아니라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시다 라고 표현합니다. 

즉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일이 곧 하나님이 하신 일과  동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페리코레시스' 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페리코레시스란  단어의 원래의 뜻은 

무대에서 춤추는 윤무(輪舞), 빙글 빙글 돌면서 추는 춤을 뜻하는 말로써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상호침투' 와 '상호내재'가 동시에 일어남을 뜻하는 말입니다.


상호침투와 상호내주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면

상호 침투라는 말은 

서로 혼합되어있지 않다라는 뜻이 전제되어있는 말이고

상호 내재한다는 말은 연합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말은 아주 묘한 의미를 가집니다

상호내주하지만 (연합해 있지만)

상호침투하기에 혼합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용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계신 것이 아니고, 


마치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듯 상호 침투하셔서 

성부는 성자 안에, 성자는 성부 안에, 

성부와 성자는 성령 안에 거하시는... 

(이를  공재(共在)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공재적 삶을 형성하고 있는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표현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 교부들은 

이 '페리코레시스' 교리를 통해

세 인격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구분되는 세 분이라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삼위가 어떻게 일체를 이루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설명입니다

바로 '페리코레시스' 를 통해서 입니다


<삼위일체론이 아닌 것>


이러한 방법말고

또  다른 방법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어떤 것이 삼위일체론이 아닌가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실 삼위일체론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삼위일체론을 잘못 설명하는 수 많은 설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는 

크게보면 

하나님은 한 분 외에 다른 세 위격을 부정하는 단일신론 아니면

한분이 아닌 세 분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삼신론 단 두가지 밖에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유명했던  가현설 같은 경우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일종의 유령같은

가현된, 환상같은 존재이고 실제로는 하나님 한 분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일신론, 즉 일신론인 것이고


양자론 또한 예수님의 본질적인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신론입니다

즉 삼위일체론이 아닌 것입니다


양태론 또한 하나님이 상황에 따라 

성자와 성령으로 역할을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단일신론의 다름아님 입니다 


삼신론의 경우는 이보다 더 단순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을 각각의 하나님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위 하나님을  three persons 가 아닌 

three gods 를 말하는 것이 삼신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된 삼위일체론에 대한 설명중에서 

특히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양태론입니다


양태론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도 

심지어 대형 교회 목사님들도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는 데 잘못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으로 삼위일체론을 오해하고 있는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양태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부와 성자를 

동일한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각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양태(형태)로 나타나셨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한 남자가 자녀들에게는 아버지로 나타나고, 

할머니에게는 아들로 나타나며, 

아내에게는 남편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에는 삼위의 하나님이 구분이 없습니다


물이 얼음과 수증기 그리고 액체 3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는 

물 하나다 라는 설명도 양태론적 설명입니다


사람이 육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분된다는 

설명도 양태론적 설명입니다


또한  태양은 하나지만, 그 안에서 열과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성부께서 태양이라면, 성자는 비취는 광선이고, 

성령은 태양에서 나오는 열과 같다고 설명도

당시에 유명했던 양태론적 설명입니다


이처럼 양태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는 성부로 나타나시고, 

어떤 때에는 아들로 나타나셨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성령으로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신데 

구약시대에는 아버지의 형태로 나타나시고

신약시대에는 33년 동안 아들의 형태로 나타나셨고

그리고 이제 지금 교회 시대에는 

성령 하나님의 형태로 바뀌어 나타나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결국 이름만 다를 뿐이지 

아버지 아들 성령님이 동일한 하나의 인격체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또한 실제로는 성부 아버지가 

성자 예수 안에서 피 흘리고 고난 당한 거니까

'성부수난설' 같은 설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양태론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사람들은 

결국 삼위(位) 하나님의 구분을 무시하는 

올바른 설명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올바른 삼위일체인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바르게 설명하는 방법이 도무지 없을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삼위일체 비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한 삼위일체에 대한 비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 근접하게 삼위일체를 설명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비유들입니다


첫째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존재하려면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오가는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의미있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살펴 보면

사랑을 주는 사람은 결국 사랑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 둘은 끊임없이 그 위치를 바꾸지만 

여전히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 또한 직접적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밝히기도 하니 

더욱 신뢰가 가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예로는 '시간'을 들 수 있습니다

시간에는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는데

과거도 시간이고 

현재도 시간이고 미래도 시간입니다 

동일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과거는 현재와 다르고

현재는 미래와 다르고

미래는 과거와 다릅니다

그리고 이 셋 중 하나라고 없으면 시간이 안된다는 점에서

삼위일체를 비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세시대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통해서도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에 새겨진 삼위 하나님의 

그림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하나이지만 세 가지 빛으로 나뉘어 비취거든요


화음으로도 삼위일체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도미솔 화음을 볼 때

각각의 음은 명확히 구분되지만

화음을 이루어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언어로서는 삼위일체를 완벽히 설명해 낼 수 없습니다

다만 사물의 그림자가 어렴풋하게나마 사물의 형상을 반영하듯

그저 그림자같이 희미한 삼위일체의 비유를 통해

삼위일체가 어떤 느낌인지그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전혀 엉뚱한 그림자를 보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다루고 싶은 질문은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왜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왜 이렇게 설명도 안되고 

이해도 안되는 골치아픈 교리를 만들어 

신앙인들을 힘들게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삼위일체 교리는 누군가가, 신학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고안해낸 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신앙 생활 가운데 분명하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땅위에 오신 예수님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 

이렇게 세 분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신명기 6장 4절의 유명한 쉐마 말씀은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즉 구약성경은 명백히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자신들이 경험한 세 분의 하나님과

당시의 유일한 성경이었던 구약 성경이 말하는 유일하신 하나님


이 두 사실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가 하는 것이

그들에게 당면한 커다란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부들은 삼위일체 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서

구약에 한 분 하나님과 

신약에 나타난 세분 하나님을 

삼위일체란 용어로 이해한 것입니다


즉 삼위일체 교리란 신학자들이 골치 아프게 억지로 만들어낸 교리가 아니라

초대 교회 교인들이  

실제적인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겪었던 신앙적 경험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리한 교리였던 것입니다


당시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 사회에서

세분의 하나님, 즉 삼위를 주장하게 되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만일 이 삼위일체 교리가 단지 

이해하기 어려운 쓸데없는 말장난에 불과했다면

아무도 목숨을 걸고 그런 교리를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초대 교회 신자들은  뭔가 이해는 안되지만

자신들의 삶 속에서 마주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신성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주신 축복과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온 몸으로 경험하면서

삼위일체 신앙을 지키며 믿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삼위일체 교리가 가지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란  

우리처럼 사람같은 형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페리코레시스로 하나를 이루고 있는)

삼위일체 형상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말씀은

우리 인간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따라서

페리코레시스적으로

상호내주하고 상호침투하는 사랑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상호내주와 상호침투는 

서로간의 완벽한 평등함을 전제로 함니다


여기에는 위계적인 지배와 배타적인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는 특권에 의한 종속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에서 나온 평등한 사귐 

그리고 자유로운 교제 만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누고 

삶 뿐만이 아니라 죽음도 함께 느끼고 함께 나누는


구성원 모두가 하나와 같은 일체를 누리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페리코레시스 적 존재가 되는 의미가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즉  완전히 평등한 사귐과 교제를 

이 땅 가운데 실현하도록 부름받은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삼위일체 교리란 무엇이며

이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대체 왜 이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모임은 다른 말로 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친밀한 교제와 이를 통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가장 완벽한 공동체의 원형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자신의 그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교회가 교회답게 서는 일이고

신앙을 신앙답게 지키는 핵심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우리가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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