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거 아니에요?
사람들은 예배의 형식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과 형식은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다만 어떤 특정한 형식만을 강조한다거나
자기가 채택한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뿐
형식 또한 본질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물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사실 물처럼 흔한 게 없죠
그러나 흔하디 흔한 물이 우리에게 쓸모 있게 되려면
물병이라든지 물통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올바른 예배가 되려면 올바른 말씀과 함께
그 말씀이 전해지는 통로, 형식, 매체 또한 중요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실 이런 구분이 별로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정 모임과 같은 소규모 모임에서는
형식의 필요성의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물이 필요하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먹든지
찻잔에 먹든지 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차로 기독교 신앙이 대형화되고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라의 국교가 되고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예배 예식, 그중에서도 성례와 같은
특별한 예식이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가장 대형화되어
국가의 공식 종교, 국교가 되었던 중세 시대에
예배 의식이 가장 강조되고 발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의 형식적인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면
여러 가지 폐단이 생겼는데 그중에 하나는
예배할 때 받는 은혜라든지, 참다운 깨우침 이런 것보다는
단지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서 신앙생활을 대신하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양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주일 성수하고 헌금 생활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신앙인이 된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본질적인 면도 놓치게 되어
급기야 중세 신학의 전성기에 이르면
면죄부, 면벌부 같은 것을 돈 주고 사는 형식 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데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신앙적 폐단, 기독교의 본질적인 기울어짐을
바로 세우려 했던 것이 바로 16세기 종교 개혁이었고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은 가톨릭의 7 성례와 같은 것들을 없애고
그중에 세례(침례)와 성찬식 딱 2개만 남겨두었습니다
이 두 개는 예수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와 성찬식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내용에서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먼저, 세례에 대해서 살펴보면
천주교에서는 세례라는 예식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받는 유아세례를 강력하게 주장하지요.
즉, 유아의 경우 실제로 신앙을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유아 세례를 통해 칭의와 성화의 은혜를 일으킨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라는 개신교의 정신과 많이 다릅니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유아세례를 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나 유아 세례를 통한 구원에 대해서는
교단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종교 개혁 당시에는
이 유아 세례를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에 따라
재세례파 운동이 일어나
같은 종교 개혁가들끼리 서로를 죽이는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가도 했습니다
성찬식도 본질적으로 매우 차이가 납니다.
천주교에서는 일단 매주 미사 때마다 성체 성사(성찬식)를 합니다.
사람들이 미사와 예배를 많이 헷갈려하시는데
사실 미사는 신부가 제사장이 되는 일종의 제사적인 의식입니다
단지 그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리는 제사일뿐
천주교에서 행하는 성찬식은 일종의 희생 제사의 성격이 짙습니다
왜냐하면 매주 미사 때마다 신부님이 축사하시는 순간,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화체설(化體說)이라고 하지요
반면에 개신교의 성찬식에 대한 이해는 천주교와 다릅니다
물론 종교개혁가들 사이의 생각도 모두 달랐습니다.
일단 천주교의 화체설에 대해서는
모두들 한 목소리로 격렬히 반대했지만,
성찬식의 본질에 대한 생각은 각각 달랐지요
루터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다는 화체설에는 반대했지만
가톨릭의 화체설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성찬 시 떡과 포도주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같이 있다고 하는 공재설(共在說)을 주장했고
츠빙글리는 아예 그러한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생각에서
성찬식은 그냥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뿐이라는
기념설(記念說)을 주장했습니다.
칼빈은 루터와 츠빙글리의 중간에서
성찬식을 거행할 때 예수님의 살과 피가
영적으로 임해 있다는 영적 임재설(靈的 臨在說)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전통은 각각 루터교, 침례교, 장로교로 이어졌고요.
요약하자면
개신교의 예배는 구약의 제사와 같은
단순한 예배 의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약의 제사를 부정하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일들과
지금도 우리 안에서 행하고 계시는 일들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개신교도가 행하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마땅한 반응일 뿐이지
그것을 행함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는
구약의 제사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즉 예배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 아니고
오늘날 교회는 구약의 성전 개념이 아니며
헌금은 제사 때 바치는 제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다음 주에 성찬식을 합니다
제가 온라인 예배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성례가 말씀과 동일하게 중요하다면
우리처럼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모임은
과연 어떻게 올바른 성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제가 성찬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 난 후에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형식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이는
어떤 특정 형식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형식이 무엇을 수행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물병이라는 형식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물병이 플라스틱 물병이 되었든
유리물병이 되었든 그것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식이라는 형식은
그 성찬식을 통해 무엇을 전달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성찬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혹자는 여전히 성찬식의 성경적 형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일부 개혁교회에서는
성찬식 때 흔히 쓰는 동그란 전병이나 성찬용 포도주잔을 쓰지 않고
성경에서 처럼 진짜 빵을 잘라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진짜 포도주를 마시기도 합니다
최대한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옳다면
빵이 아니라 난을 써야 합니다 무교병
그것을 손으로 뜯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거든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찢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찬식에는
무교병이 아닌 종이장 같은 전병을 먹고
찢어 먹는 것이 아니라 집어 먹죠
포도주가 아닌 포도 주스를 먹죠
그러나 정말 성경대로 하려면
포도주가 아닌 포도 주스를 먹으면 안 됩니다
진짜 포도주를 먹어야죠
그리고 음식처럼 배를 채워야 합니다
사실 성찬식은 식사 자리입니다
그것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 떡은 우리로 치면 밥입니다
한솥밥을 나누어 먹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식도 침례교처럼 물속에 담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침례교 빼고 대부분의 정통 교단은
손가락에 물을 묻혀 살짝 뿌리는 세례를 합니다
만일 물속에 잠기는 침례만을 고집한다면
물이 귀한 사막 한가운데 살았던 사람은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례와 성찬, 즉 성례는 특정한 형식이 아니라
그 의미를 세기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안식일이라는 특정 요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다음 주 성찬식을 하는데
온라인 예배 형편 상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한 덩이 떡에서 떼어 나눠 먹지도 못하고
진짜 포도주를 마시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모두들 각자가 떡과 포도주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온라인 성찬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성찬식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하나 된, 한 몸 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의 허물과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그 어떤 성찬식보다도 예수님이 명하신 성찬식을
훌륭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이행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성찬식에 대하여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성찬식을 너무 장엄하거나 엄숙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라는 성경 구절 때문에
성찬식 하면 슬픔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찬식은 기본적으로 만찬입니다
식사자리였습니다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하는 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힘입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가 슬픔의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의도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비록 그 자리가 십자가 처형을 염두에 두신 마지막 식사자리였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에
그 만찬을 준비하시고 제자들을 격려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들의 보다 올바른 자세는
슬픔보다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가 아니라
살과 피로 표현된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 안에 얼마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가.. 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찬식을 하고 난 후에는
배부르고 만족한 사람처럼
감사함이 넘쳐나고
함께 나눈 사람들을
남이 아닌 형제와 자매, 한 몸, 한 지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체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하늘나라는
한 몸 된 지체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
서로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 한 창 온 나라가 정치적으로 쪼개어져 있는데
분열되어 있는 모습은 하나님 나라와 가장 멀리 있는 모습입니다
그 분열의 모습에 우리 기도교인들이 가장 앞장서 있는 것 같아
무척이나 마음 아픈 한 주간이었는데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하나 됨을 회복하는 귀한 역사가 이루어지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