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으시겠지만 사실 포도원 품꾼 비유는 구원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제가 요즘 신약 성경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사실 포도원 품꾼 비유는
예전에도 한 번 다루었던 비유 말씀인데 다시 한번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성경책이나 혹은 이 비유를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을 보면
이 비유를 포도원 품꾼 비유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비유의 주인공은
포도원 품군이 아니라 포도원 주인입니다
대부분의 비유 말슴이 다 그렇습니다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도 사실
탕자를 기다라고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잃어버린 양 비유에서도 양을 찾는 주인에게 초점이 맞춰있죠
여기서도 포도 수확철에
포도원에 고용된 품군을 다루는
포도원 주인이 주인공입니다
그니깐 예수님의 비유 대부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혹은 천국은 어떠한 것(곳이 아니라)인가? 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비유들입니다
마태복음 20장의 비유 말씀에서도 마찬가지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합니다
포도 수확철에 큰 포도원의 주인이
시장에 나가 일용직 품꾼을 고용하기로 합니다
시장에는 항상 일자리를 얻으려고 서성이는
품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이른 아침 6시에 시장에 나가
한 데나리온의 품삯으로 품군들을 고용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하루치 품삯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세 시간쯤 시간이 흘러 오전 9시에
포도원 주인은 다시 시장에 나갑니다
이 시간에도 역시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품군들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이번에도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제안하고
추가로 일군들을 모집했습니다
일군들은 기쁨 마음으로 일을 하기로 합니다
이와 동일하게 낮 12시에도, 오후 3시에도
심지어는 일을 마치기 1시간 전인
오후 5시에도 시장에 나가 일군을 맞아들입니다
마침내 하루 일과를 끝내고
하루 노동의 대가인 품삯을 나누어 주는 시간입니다
바로 이 부분부터 이 비유가 말하려는 바가 의도되는데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에게 특별한 지시를 합니다
맨 나중에 온 사람부터 먼저 삯을 주라고 지시를 한 것입니다
주인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러한 지시를 했는데
포도원 주인은 먼저,
가장 늦게 포도원에 들어와 단지 1시간 만을 일한 품군에게
하루 온전한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지불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일꾼들의 입에서는 아마도
탄성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오후 3시에 들어와 3시간 일한 일군도 온전한 하루 품삯을 받았고
낮 12시에 들어온 일군도 온전한 하루 품삯을 받았습니다
모두들 만족했습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침 일찍 6시에 나와서 일을 한 일군들에게 있었습니다
이들이 처음에 품삯을 받으러 줄을 서 있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약속된 한 데나리온을 받아서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할 생각에 즐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상황을 지켜보니 반나절 일한 사람도
3시간 일한 사람도, 심지어는 단 1시간 일한 사람도
하루치 온전한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기대 이상의 보수를 받는 것을 보며
자신들도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니 기대가 아니라 주인의 ‘공평한 대우’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하루 품삯의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온전한 하루 품삯을 받았으니
그와 비례해서
하루 온종일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참아가며 일한 자신들은
그보다 더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자신들이 실제 받게 된 보수는
그저 처음에 약속했던 한 데나리온뿐임을 알게 되자
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실 주인의 이러한 처사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공평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만일 같은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빈둥빈둥 놀다가 1시간만 일하고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면
어느 누구라도 불만을 토로할 것입니다
공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러한 불만을 가지게 된 것은
주인의 잘못이 큽니다
주인이 정말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적게 일한 사람도 그들의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도록
동일한 임금을 주고자 했다면
조금만 더 생각해서
가장 먼저 온 일군들에게 약속한 임금을 주고 돌려보내고
차례대로 그다음 온 일군에게 임금 주고 돌려보내고
이렇게 했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성경의 비유 속 포도원 주인은
이들의 불만을 무시하고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20장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어찌 보면 이 말은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네가 뭔 상관이냐?
꼬우면 네가 주인 하던가…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거야 말로 가진 자의 갑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 이야기의 말미에 예수님이
갑자기 끈금없는 결론을 맺으신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도대체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리고 이 말이 포도원 비유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그래서 사실 이 포도원 품꾼 비유 이야기는
이 ‘먼저 된 자 나중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라는 말씀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 말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먼저 된 자 나중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말씀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앞장 19장에는
어떤 재물이 많은 부자 청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부자 관원이라고 부르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묻습니다
(지금 이 청년은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계명 즉,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등등
이러한 계명들을 지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자 이 청년을 곧바로 자신 있게
‘이 모든 것을 내가 지켰사온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하고 되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를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돌아가고 난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그 유명한 구절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는 하나님이 허락해 주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인 것입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나 욥이 큰 부자로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탁가 바늘귀 통과 하는 것보다 어렵다니
이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뭔 말인가?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신 말씀이 바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라는 말씀엔데
이 포도원 품꾼 비유에도 그 마지막을 보면 16절에 동일하게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리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말씀은
방금 전 19장의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서 나온
구원에 대한 가르침을 제자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자
다시금 알기 쉽게 설명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하신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앞서 19장의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말씀의 뜻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부자 청년 이야기의 핵심은
구원이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서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그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무엇인가를 행해서 구원을 얻어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 즉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중생, 거듭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이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자신의 노력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는 일은 오로지 부모로부터 받는 은혜입니다
구원이 은혜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삶 가운데서는 부자 청년과 같이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늘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자신들은 부자 청년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구원을 그들이 행한 어떠한 일에 대한 대가,
보상으로 생각한 점에서는
부자 청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구원을 은혜가 아닌,
우리가 예수님께 해드린 어떤 것
(그것이 헌금이 되었든, 선한 행위가 되었든, 아니면
신실한 신앙생활이 되었든 간에)
그것에 대한 당연한 보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이점에 있어서는 포도원에
이른 아침에 와서 온종일 일을 한 일군들도
마찬 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도 한 데나리온이 그들이 일한 당연한 보상,
자신의 마땅한 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 보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되었을 때
불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 본다면
공평과 정의를 떠나서 애초에 일거리를 하도록 허락한
주인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저 시장에서 하루 종일 서성이다
그날 저녁 빈손으로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포도원에서 일거리를 주고 안 주고는 온전히 주인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의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대가로 마땅히 받는 것을 은혜라 부르지 않습니다
마땅히 받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고
삵이요 보수일 뿐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늘 이 점에서 흐리멍텅 해집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다 은혜다 하면서
정작 하나님에게
‘내가 이만큼이나 했으니 그에 마땅한 보수를 주십시오’
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하나님 도대체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고
분노하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늘 '은혜를 감사하는 자'가 되기보다는
자기 몫을 따지는 불평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자에게 만족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만족함이 없는 자에게는 감사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 나와 일하게 된 사람들도
처음엔 아마 감사한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아침부터 일거리를 잡게 된 것은
퍽이나 운이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속에 불만이 싹트게 된 것은
그들이 받은 보수가 적어서라기보다는
(만족스럽지 않아서 라기보다는)
자신보다 적게 일하고도 동일한 보수를 받은
다른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주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 불만 없이 한 데나리온을 받아서
기쁘고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들은 정의와 공평을 들먹였지만 사실 그 마음의 이면에는
다른 사람이 받은 보상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감사함은 절대로 남과의 비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교의 대상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함의 근거를 남과의 비교에서, 즉
늘 변화하는 상대적인 것, 조건에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감사함의 근거를 상대적인 조건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변치 않는 절대적인 것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남과의 비교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교만함 아니면 열등감
둘 뿐입니다
그러나 감사함의 근거를 상대와의 비교에서가 아닌
나 자신에게서 찾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당장에 먹을 수 있는 일용할 양식, 따사로운 햇볕
따뜻한 옷, 내 곁의 가족,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
이러한 내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찾는 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습관이 쌓여
궁극적으로는 내게 주어진 생명, 내게 주어진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사야말로
변하지 않는 진정한 감사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어진 삶을 기쁘게 누리는 것이야 말로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냥 감사가 아니라 범사에 감사입니다
범사란 모든 일입니다
여기에는 기쁘고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슬프고 괴로운 일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늘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는 간과한 채,
남의 손에 주어진 떡의 크기만을 생각하며
불만족해합니다
그리고는 그 누군가를 원망하느라
정작 자기 손에 주어진 감사함의 근거를
놓쳐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감사함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내 이러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하고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대가요 삯만을 요구하게 될 때
만족과 감사는 사라집니다
지금 성경이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내게 주어진 인생 가운데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포도원 품군처럼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공평과 정의만을 주장하는 태도인지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대가만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늘 감사하고 만족합니다
바꿔 말씀드리자면
자신이 먼저 된 자라고 생각할 때
(즉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할 때) 나중 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나중 된 자라고 생각할 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주어진 은혜에 감사할 때)
먼저 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자신의 구원이 의심스럽다면
누구에게 물어볼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바라보면 됩니다
지금 자신이 범사에 감사하고 있다면
나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의 구원을 진지하게 한번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