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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Mar 24. 2016

#15  밀라면 밀겠어요, 그까이 털!

나는 청소광이다.

쓸고 닦고 광내고 정리하고 줄맞추고 , 설겆이 끝내고 물기 싹 닦아놓고, 빨래돌려 탁탁 널어놓고 빨래끝! 하면서 소파에 턱~하고 앉으면 그것만큼 스트레스 풀리는 일이 없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로부터 몇년이 흐른 지금의 나에게 청소란 그저 의무감이다.

고양이와 함께 동거하기 시작한 바로 그날로부터 그렇게 즐겁던 청소가 짜증으로 바뀌어가고 전혀 즐겁지 않았다.  해도해도 줄어들지 않는 집안일에 지쳐가기 일쑤였는데, 그것은 바로 6묘가 뿜어내는 엄청난 양의 털 때문이었다.

특히나 봄가을 털갈이 시즌이 오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야 만다. 아무리 청소를 좋아한다고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청소는 분명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중국에서 황사와 미세먼지가 몰려와 하늘을 죄다 똥색으로 뒤덮는 것에도 무덤덤한 내가, 몰려오는 털뭉치 백만대군에는 백기를 휘두를 수밖에..

 8년동안 집과 일터에서 들이마신 어마무시한 털때문에  인간 최초로 헤어볼을 토하는건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히 그런일은 단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튼튼한 폐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라도 전해야하는건지 원.....


"털 때문에 도저히 못살겟어요, 지들이 키우자고 해놓고 똥 한번을 안치워요..."
"병원에 갔더니 털 알러지가 있어서 의사가 키우지말라네요.."
"식탁에 올라오는것만큼은 못참겠어요, 국에 털이 떠다니잖아요"


반려동물이 가장 많이 유기 또는 파양되는 이유 중 1,2위를 다투는 원인이 바로 이 감당못할 털 스트레스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가 안되는것도 아니다. 특히 신생아나 노인이 있는 집이라면 더더욱 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이러한 이유로 동물을 유기하는 자들을 이해한다는 뜻은 결.단.코. 아니다.


           -나나의 여름맞이 올빡 미용 후 -



과연 이 세상에 완벽한 존재라는게 과연 존재할까?

우주를 통틀어도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모자란 생명체들이다.


'우리 아빠는 대머리에 고집이 세고, 엄마는 낭비벽이 있으며, 오빠는 못생긴게 지지리 공부도 못한다. 껌 좀 씹는 언니는 툭하면 가출이고, 남동생은 마마보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 없을 막장 콩가루 집안이지만 이런 가족구성원이라 해도 서로를 저버리거나 호적을 파버리는 행위는 매우 드물다. 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가끔씩은 서로를 위로하고 단점을 감싸안으려 노력한다. 부족한것이 있다면 서로 메꿔주고 고쳐나가거나 아니면 서로 한발씩 양보하면서 가족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 그게 바로  가.족. 아닌가.....


나에게 가족은 이 6묘다.

피를 나누진 못해도 마음으로 품은 내 자식들의 사소한 단점인  털 뿜뿜이를 엄마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가 감싸줄까...털뿜기를 무마하고도 남을 이 천사같은 아이들이 주는 기쁨은 이 모든 단점을 다  덮어버리고야만다. 하얀 눈이 내려 온 세상의 더러움을 다 덮어버리듯이 말이다.


심성이 비단결같은 치이는 아픈 나비형을 매일 핥아줘요~
하루는 반찬투정을 단 한번도 하지 않는 의젓한 형이에요~
나나는 출렁이는 뱃살애교로 언제나 나를 웃게해줘요~


털이 떠다니는 국을 후르륵 마시고 , 콘텍트렌즈에 털이 덕지덕지 붙고, 엄청나게 싸대는 응가로 변기가 막혀도, 옷에 묻은 털은 그냥 무늬라 생각해버리는 이 6묘의 집사에게 ' 털때문에 어떻게 살아요?' 란 질문은 그래서 참 무의미하다. 그래도 대답을 해야만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왜 사냐면 그냥 웃.지.요......"


가족으로 받아들인건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였다. 나 또한 그들에게 완벽한 엄마가 될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할수 있는 작은 노력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찾은것뿐이다. 어쩌면 6묘들도 부족한 나를 참아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털때문에 반려동물을 버리려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차라리 뱀을 키우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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