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사진전_2016.06.25부터 예술의 전당
이야기 없이, 전개 없이, 의미는 없다.
사진에 담긴 어떤 순간은 보는 이가 그 순간을 넘어 확장된 시간의 지속 안에서 그것을 읽어낼 때에만 의미를 얻는다. 어떤 사진이 의미가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진에 과거와 미래를 덧붙이는 것이다.
'사진의 이해_존버거_p.78'
사진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서, 두 달 전쯤 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존 버거의 <사진의 이해>를 구매했다. 굉장히 이론적일 것 같은 제목이지만 사실 보편적인 사진의 이해라기보다는 존 버거 자신이 사진을 이해한 대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다른 바쁜 책들에 밀려 한편에 쌓아 두었다.
사진은 정말 한 시대를 대변하는 리얼리즘이 될 수 있을까?
다른 바쁜 책들 조차도 읽고 못하고 지내던 지난 토요일, 예술의 전당 <로이터 사진전 : 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하다> 전시관을 방문했다. 왠 늙은 남자 둘이 입을 맞추고 있었고(심지어 눈까지 감고), 마치 다리 하나가 주황색 연기로 변하고 있는 듯한 사진을 앞세우며 관객 한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다.
로이터 사진전은 Reuters의 영문 이니셜을 따온 총 여섯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섹션의 한글명은 뭔가 개연성을 찾기에 나의 부족함을 느꼈다.
Reuters Classic : 시선의 권리 -> Emotion : 탈 원근적 시선 -> Unique : 시선의 흐름 -> Travel on Earth : 중첩의 시선 -> Reality : 깊이의 시선 -> Spotlight : 주목된 시선
여러 역사적 순간의 사진들을 시작으로, 전쟁의 모습들, 항거의 모습들, 웃음이 눈물로 변하는 모습들, 생존을 찾아온 난민들, 절망, 절규, 환희의 모습들이 담겨있는 사진들이 짧은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들도 인상 깊었지만 전시 인테리어가 꽤 괜찮다고 생각되었다. Emotion 섹션에서 딱 하나의 표정, 딱 한 장만이 시야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것과, Reality 섹션에서 테이블 위로 길게 나열된 사진들이 마치 타임라인에 올려둔 사건의 조각 같은 느낌을 잘 살려 내어 시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Unique 섹션에서만은 촬영이 가능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들을 꼽자면, 역시 그리스의 섬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보고들이다. 로이터의 기자 Yannis Behrakis는 그리스의 두 가지 풍경을 이야기하며 사진들을 소개한다. 하나는 최고의 여행지인 그리스의 섬으로 휴양을 오는 사람들과 /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고무보트를 타고 오는 사람들에 대한 풍경 말이다.
"아름다운 빛으로 가득 찬 코스 섬의 싱그러운 아침, 나이 지긋한 팔레스타인 여인이 해변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차분하게 앉아 있는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먼 거리에서 그녀의 사진만 몇 장 찍었다. 후에 알았다. 그녀가 앞을 못 본다는 사실을. 사진작가에게 빛은 전부이기에 그 순간 감정이 북받쳤다." 2015.08.12. ⓒ Yannis Behrakis / Reuters
몇 장의 시리아 난민 사진이 지나가고 어떠한 설명도 없이 이 사진을 마주쳤을 때, 나는 너무나도 평온한 여인의 표정에서 난민이라는 단어는 읽을 수 없었다. 시리아 난민의 리얼리즘보다는 드라마가 더 가미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뭐 그런 진부함 말이다.) 그러나 작가의 설명은 이 사진에 확장된 시간을 덧붙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전쟁 속에서도 앞을 보지 못했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 바다를 건너왔다. 바다를 건너와서 이제야 아침의 빛을 향해 앉았지만, 여전히 앞을 보지 못한다. 어떻게 이 사진이 시리아 난민의 비유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사진은 한 시대의 의미 있는 사진이다. 이야기와 전개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삶에서, 의미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관계를 짓는 과정에서 발견되며, 진행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 없이, 전개 없이, 의미는 없다. / 존버거_<사진의 이해>_p.78
그리고, 로이터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일상이 담긴 사진들을 마지막에 배치하면서 결국 세상의 모든 드라마는 보통의 나날들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일상은 리얼리즘이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시장을 나와 예술의 전당 야외공연도 보고 분수대를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보았다. 사진 속의 순간에서 나와 나의 일상으로 되돌아오고 나니, 그 대조가 너무 커서 다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방금 본 것에 대한 반응이라고 하기에는 절망적일 만큼 부족해 보인다. 나의 책임이 아니지만 나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순간들도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 / 존버거_<사진의 이해>_p.46
그것이 내가 <로이터 사진전>을 보고 나와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보도사진은 관심을 촉발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 길게 보면 세상이 한때 얼마나 위대하고 잔인하고 행복하고 참담했는지… 그리고 불공정했는지를 시각적으로 상기시킨다”
-다미르사골 / 로이터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