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o to Australia!

워킹홀리데이

by 하난

초겨울의 추위와 한여름의 더위가 오가던 날들이 가고 완연한 여름에 접어들 무렵, 평생을 몸담아 온 한국을 떠났다. 스스로의 힘으로 외국에 가는 것은 처음인 데다, 아시아가 아닌 대륙에 진입하는 것은 정말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떨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공항에 들어서 지금, 브리즈번에서 이 글을 적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리 큰 떨림은 없다. 약 1여 년이라는 긴 준비기간 동안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 과정에서 몇몇의 외국인 친구들도 만났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아직 제대로 된 생활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


비행기하면 늘 오전 비행기를 탔던지라 4시 30분 이륙 비행은 다소 색다른 경험이었다. 떨리지는 않았으나 나름 신경 쓰이기는 했는지 이른 새벽에야 겨우 잠든 탓에 충분한 수면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다른 여행들과는 달리 여유로웠다. 출국날에 맞추어 미리 휴무를 빼둔 부모님과 얼결에 휴무일이 맞아떨어진 삼촌,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단체의 도움 없이 가는 것은 처음인지라 혹여나 실수할까 싶어 1시가 조금 넘어 출발한 우리는 2시가 넘어서야 김해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레이서가 되고 싶은지 속도위반과 고속의 사이를 오가는 운전실력을 뽐내었던 아빠답지 않게 늦은 도착이었다.


낑낑거리다 끝내는 울부짖는 강아지를 강아지용 가방에 넣어 둘러맨 엄마와 양손으로 날 대신해 짐을 든 아빠, 삼촌과 함께 공항에 들어섰다. 몇 번의 해외여행 경험으로 숙달된 탓에 괜찮을 것 같다고, 천천히 오겠다고 한 친구는 이미 공항 내에 있었다. 전화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헤맨 끝에 수화물 센터에서 친구를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함께 온 친구의 어머니와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서로의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고작 1년, 어쩌면 그보다 짧을 지도 모를 잠깐의 작별에 꼭 이민 가듯 하는 그 모습이 군대 보내는 부모님들 같아 재밌기도 하고 뭉클했다.


가족들과의 작별 후에는 바로 비행기 탑승구로 향했다. 기내에 반입하는 액체 용기에 리터가 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려당한 친구가 다급히 어머니를 다시 불러 화장품을 전해준 것 외에는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전자기기가 무거웠던 탓에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이 시작되었다. 인천을 경유해 가는 것이라 바로 가는 것은 국내임에도 국제선이라 그런지 신기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늘 웃을 수 있는지 경이로운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아 일반석에 자리했다. 이전에 탔던 비행기도 이러했나. 직각으로 세워진 의자는 뒷좌석과의 가까운 거리 탓에 넘길 수도 없었다. 한 시간 비행이니 버티겠지만 이후에 이어질 10시간 비행도 이 상태로 갈 수 있을지 근심스러웠다.


인천까지는 금방이었다. 체감상으로는 30분, 실제로는 1시간에 걸쳐 인천에 도착해서는 곧장 식사를 하러 갔다. 수화물은 자동으로 브리즈번행 비행기로 옮겨가는 덕에 넉넉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미 저녁시간이 되어 허기가 졌다. 인천인 데다 국제공항이니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는 기대와 달리 공항은 다소 한적했다. 여러 지역의 이름이 새겨진 페레로로쉐 모양의 멋들어진 조형물과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알록달록한 캐릭터들로 꾸며진 중앙 라운지는 꼭 동화와 소설이 어우러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비교적 사람이 적고-평일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식당가가 많지 않았기에 꼭 버림받은 마법의 섬 같기도 했다. 무튼, 예쁘고 면세점이 많으나 먹을거리는 적었던 탓에 우리는 무난히 햄버거를 먹었다. 불고기와 새우를 못 먹는데 불고기버거 약 5종류와 새우버거 하나를 제외하고는 핫스파이시버거 밖에 없어 반강제로 그것을 택했다. 매운 것도 잘 먹지 못하기에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야채와 빵이 많을 적에는 그럭저럭 버텨왔던 것이, 끝에 이르니 불이 난 것만 같았다. 얼굴이 붉어지고 혀가 화끈거려 결국 중도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천추의 한이다.


배를 든든히 한 후에는 면세점 구경에 나섰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적절한 균형으로 섞인 통로를 걸으려니 줄지어 휠체어를 끄는 승무원들이 보였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의 경우, 신청에 의해 항공사 측에서 도와준다는 것을 듣기는 했으나 잘 보지는 못했기에 순간 그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 기이함마저 기이해서, 부끄럽기도 했다.


한 시간여쯤 그렇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있으니 시간이 되었다. 239번 탑승구, 라운지와 마찬가지로 외국인과 한국인이 조화롭게 섞여든 그곳에서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다행히도 이번 비행기는 앞전보다 넓었다. 일반석이다 보니 좋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앉아있을 만은 한 듯했다. 그래,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천진한 생각이었는지. 2시간이 지난 후 나는 내가 비행을 굉장히 얕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출발한 비행기. 때문에 얼마 있지 않아 창밖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했다. 비행기 기기인지 또 다른 무언가인지 모를 어떤 것에서 번쩍이는 무언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창밖을 향하던 시선을 돌려 태블릿을 꺼냈다. 미리 저장해 놓은 드라마를 한 편 보고 있으려니 승무원들이 식사라며 트레이를 끌고 왔다. 비빔밥, 치킨샐러드, 그리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까지 세 종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었는데 친구는 비빔밥을, 나는 치킨샐러드를 택했다. 치킨샐러드라고 해서 말 그대로 커다란 그릇 하나에 양껏 담은 야채와 치킨 몇 조각을 생각했는데 기내식으로 나온 것은 완전히 달랐다. 내가 생각했던 딱 그 모양 그것의 작은 그릇이 하나, 연어샐러드가 또 한 접시, 빵과 치즈, 버터, 케이크가 나왔다. 샐러드는 나쁘지 않았다. 야채도 신선했고 치킨도 부드러웠다. 빵과 치킨이 다소 짜긴 했으나 일반 기내식치고는 꽤 괜찮았다. 햄버거를 먹은 지 3시간도 되지 않아 즐긴 서양식 만찬이었다.


식사 후에는 불을 꺼주기에 뒤척이다 잠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이게 아님을 느낀 게. 뒤로 누일 수 있다 하여도 여전히 뒷좌석과 내 자리는 너무 가까웠고 다 눕힌다고 해도 그리 많이 기울어지지는 않는 데다 자리 자체가 좁아 어떻게 해도 자세가 불편했다. 머리를 이리했다,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허리를 비틀었다 골반을 들었다, 정말 온갖 자세를 취해도 불편한 탓에 중간에 잠깐잠깐 기절하듯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몸이 펴지지 않는 작은 방에 갇혀 고문당하면서도 끝내 투항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께 감사를 전하는 밤이었다.


약 5시간의 씨름 끝에 겨우 안정된 자세를 찾아 잠에 들 무렵이었다. 어두웠던 사위가 밝아지며 또렷한 승무원들의 말이 들렸다. 어렴풋한 빛과 음성에 비몽사몽 한 간에 누군가 어깨를 치자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겨우 든 단잠을 깨운 연유가 무엇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놀랍게도 밥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아니, 새벽 3시에 밥을요?


입맛도 없고 밥이고 나발이고 일단 잠부터 자고픈 것이 속마음이었지만 기껏 낸 비싼 항공값이 어른 거려 흰쌀죽을 받아 입에 퍼 넣었다. 맹물에 불린 밥이 씹히는 맛은 이전에 입원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아련하기도 하고, 따분하기도 했다. 비행기 멀미까지 하는지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에 두어 스푼 먹은 죽을 내버려 두고 후식으로 제공된 과일만을 먹었다. 그 와중에도 과일이 맛있다고 생각했으니, 그리 힘들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식사 시간 뒤에는 다시 소등. 자라는 것이었다.

승객을 대우하는 것인지, 돼지를 사육하는 것인지 모를 다정한 고문이었다.


어찌어찌 다시 잠이 들 무렵, 귀 옆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나 눈을 떠보니 친구가 창밖 너머를 찍어대고 있었다. 뻑뻑한 눈을 끔벅이며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세상에. 그 잠깐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까만 하늘과 그보다 더 어두운 바다를 경계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 해. 붉게 타오르는 햇빛이 내지른 소리가 맞닿아 노랗게, 하얗게 물든 하늘과 구름의 결은, 압도적이었다. 점점 밝아져 오는 사위와 그에 따라 증가하는 산과 물, 구름들. 처음 눈에 담은 호주의 땅은 꼭 황무지 같았다. 머리를 헝클어뜨린 사내가 긴 망토를 휘날리며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곳 같았다. 동시에 겨울왕국 2에 나오는 마법에 걸린 섬 같기도 했다. 길게 이어진 바다와 그 끝에 맞닿은 하얗게 시린 구름들. 하늘까지 이어진 그것이 울렁일 때 노랫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다. 멀리서 본 바다는 마치 꼬깃해진 옷자락 같다는 것을 아는가? 물결이 모두 멈춰 파도였던 것이 옷의 구김이 되고, 모래 위로 올라간 바다의 끝은 어설프게 뜯어진 옷의 끝자락 같다는 걸, 나는 어제 처음 알았다.


호주의 광활함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쉽다


경이로운 광경에 넋을 잃고 있노라니 어느새 비행기는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 생소한 데다 길치였던 나는 어리버리 사람들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다행히 대한민국 국민은 셀프대에서 간편히 입국할 수 있어 해당 줄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사람들을 뚫고 까맣게 빛나는 존재가 왔다. 우리 집의 깜둥이를 닮은 탐색견. 윤기 나는 까만 털을 자랑하듯 곧추선 허리와 저 대양을 달리다 오기라도 한 건지 행복함이 가득 담긴 긴 혓바닥, 킁킁거릴 때면 움찔거리는 작은 콧망울이 사랑스런 강아지였다. 실제로는 처음 보는 탐색견의 늠름.. 하지는 않고 귀여운 자태를 보며 변태마냥 헤실거리고 있으니 내 차례가 돌아왔다. 한국어로 진행됐기에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시키는 대로 하는데, 음? 왜 계속 얼굴인식이 안 될까요? 약 4번의 얼굴인증 시도 끝에 실패로 돌아간 나는 직원의 손에 이끌려 Assistance service로 향하게 되었다. 해당 줄은 사람이 별로 없었음에도 한 사람, 한 사람 무언가를 계속 물어보고 오래 걸리기에 긴장한 상태로 갔는데 "지난 9개월간 인도네시아에 간 적이 있나요?"라는 물음에 없다고 하니 바로 패스해 줬다. 어라.


후에는 수화물을 찾고 마지막 수화물 검사를 실시했다. 호주가 음식에 예민하다고 해서 초콜릿과 비상약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몇몇 반입제한 상품의 소지 여부에 있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없다고 답했는데 기내 방송에서 없다고 했다고 걸리는 것보다 있다고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낫다고 끝없이 되뇌길래 마지막에 바꾸어버렸다. 초콜릿도 작은 것에, 약이라고는 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한 통씩 총 세 통에 불과했기에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검사는 더 별 것 아니게 끝났다. 수화물 검사에서는 총 3명의 검사관을 지나게 되었는데 첫 번째 분이 "약품은 의약품?"이라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해당 칸에 엑스 해주셨다. 대충 검사할 필요 없다는 뜻 같았다. 첫 번째 분은 꼭 경찰관 같은 옷에 살짝 올라간 눈매로 꼿꼿하게 서 계셨는데 인사도 시니컬하게 해 주셔서 꼭 경찰조사받는 것 같아 무서웠다. 두 번째 분은 웃으시면서 "How are you?"라고 인사해 주셨는데 긴장하기도 하고 뒷사람이 기다리다 보니 "Nice. Thank you"로 끝내버린 것이 아쉽다. 그분도 나의 긴장상태를 알아차렸는지 폭소하시면서 "Okay~ Good!"이라고 해주셨지만 어쩐지 죄송한 마음이다.


무튼, 두 번째 검사관님은 내가 체크한 물품 중 어떤 걸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초콜릿 하나 있다고 했더니 그냥 "그것뿐?"이라며 그냥 가라고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형식상 수화물 검사기를 거쳤는데 앞 선 사람들이 모두 캐리어를 열고 있기에 그런 줄 알고 엉거주춤 서있었더니 직원분이 오셔서 가라고 하셨다. 어리바리한 게 범죄도 못 지를 것 같았나. 유독 내게 유한 것이 느껴졌다.


어쨌든, 무사히 입국에 성공한 우리는 브리즈번 공항을 둘러봤다.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다. 편의시설도 적었고 사람도 한국에 비해 훨씬 적었다. 덕분에 어딜 가든 자리가 여유롭였고 우리는 푹신한 소파를 차지할 수 있었다. 호텔 체크인 시간은 2시. 공항도착 시각 7시. 공항에서 호텔까지 10여 분. 짐이 상당했기에 어디로도 갈 수 없었던 우리는 공항 소파에서 죽치고 앉아있기로 결심했다. 비슷한 사정인 사람이 많은지 많은 이들이 소파에서 잠을 취하고 있었다.


공항에 있는 동안 유심칩을 샀는데 가뜩이나 전자기기 문외한인데 영어로 얘기하기까지 하니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었다. 나름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자신했는데 확실히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많이 달랐다.


마찬가지로 어찌어찌 유심칩을 구한 후에는 - 그렇지만 로밍을 해놓아서 이후에 로밍 끝나고 유심 바꾸기로 했다 - 다시 소파에서 머물다 카페로 향했다. 공항에는 카페가 한 곳뿐이라 선택 없이 가게 되었는데 이름을 물어봐서 당황했다. 꼭 예전 스타벅스처럼 음식이 나오면 이름을 불러주는 형태였다. 스타벅스도 잘 이용하지 않는 터라 카페에서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던 나는 당황한 나머지 이름을 까먹어서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브리즈번 공항은 카페마저 여권을 제시해야 음료를 주는 줄 알았다.


브리즈번에서 처음 사 먹은 핫초코는 상당히 맛없었다. 초코 냄새가 살짝 나는 뜨거운 물이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한참 남아 공항 구석에 있는 소파에서 잤다. 그러라고 만들어둔 것인지 아늑한 공간은 폭신하니 딱 자기 좋았다. 실제로 두 소파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지난 이틀간 채 7시간을 못 잔 게 피곤하긴 했던 듯 소파에 눕자마자 잠들었던 것 같다.


겨우 시간을 때운 후에는 공항 바로 앞에 있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브리즈번에 도착한 지 7시간 만에 보는 브리즈번의 모습이었다. 온통 낮은 집들과 광활한 하늘, 바닥과 맞닿을 듯한 구름은 꼭 하늘이 대지를 삼키는 것만 같았다.


친절한 택시기사님 덕에 무사히 도착한 호텔에는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하야 '셀프 체크인'.

한국에서도 셀프 체크인은 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우리는 우왕좌왕 매니저에게 전화해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메일 주소, 여권사진 등을 요구했는데 메일 간 이동시간이 너무 길고, 우리의 발음이 안 좋았던 것인지 알파벳 'B'를 못 알아들어 애먹었다. 거의 1시간을 전화만 붙들고 있었던 듯하다.


느릿느릿한 메일 전송의 늪에서 벗어나 들어선 숙소는 꽤 괜찮았다. 1층 끝방으로 커다란 침대와 책상, 옷장이 있는 방인데 2주간 지내기에 큰 무리는 없을 듯싶다. 다만 신기하고 난해한 점은 벽면에 있는 커다란 창을 가릴 것이 얇고 허접한 커튼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조금만 부주의하게 있어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에 캐리어까지 동원해 겨우 틈을 막아냈다. 휴.


체크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던 탓일까, 짐정리를 가볍게 하고 나니 4시가 지나 있었다. 장시간 비행이 피곤했던지 잠시 자겠다는 친구를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벌써 지려하는 해는 낮만큼의 강렬함은 없지만 여전히 저의 존재를 과시했다. 커다란 나무와 달랑달랑 매달린 붉은 꽃송이, 어미 잃은 아이처럼 우는 이름 모를 새와 꼬리를 살랑이며 주인과 호흡을 맞추어 걷는 강아지들까지. 정말 예쁜 곳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곱게 빛나고 있어 어떻게든 눈에 담고자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어도 좋다는 말은 꼭 그런 성품을 타고 난 사람들만의 고유한 전유물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동안 정말 예쁜 하늘을, 나무를, 자연을 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눈에만 담기에는 아쉬워 천천히 걸으며 영상을 찍고 있는데 우리 숙소 2층 테라스에 있던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 그 유쾌한 몸짓에 웃으며 인사했더니, "페이스북에 올릴 것이냐."라고 물었다. 그에 인스타그램에 올릴 것이라고 했더니, 농담이라고 해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우리 아빠 연배이신 것 같은데 외국도 결국 아재개그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구나. 아직도 어디가 재밌는 부분인지 모르겠다. 아직 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까? 말주변이 없는 탓에 허허 웃으며 멀어졌지만 무튼,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고 뽈뽈거리고나니 허기가 극에 달했다. 새벽에 항공기에서 먹은 죽이 오늘의 유일한 식사였으니 당연했다. 친구를 깨워 밥을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아뿔싸. 방 비밀번호는 친구 폰에 저장되어 있다. 침착하게 전화를 걸고 방문을 두드려보았으나 깊게 잠든 것인지 미동하는 기척조차 없었다. 해마저 지고 있어 약간은 다급한 마음에 큰 소리로 불러도 보았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흘리며 돌았던 곳을 또 돌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사히 상봉한 우리는 가벼이 중요물품만 챙겨 가까운 곳에 있는 마트를 돌았다. 아침식사거리를 가볍게 사고 바로 옆의 도미노 피자에서 피자를 산 후에 숙소로 돌아와 피자박스를 열어보니, 오, 정말, 피자뿐이었다. 고정하는 것도, 피클도, 소스도 하나 없는 완전한 피자. 한국보다 작은 사이즈의 피자는 짭짤하게 맛있었다.


7시 반이 되니 완전히 해가 진 호주의 첫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직 외국인들을 접할 일이 많지 않아서인가 외국이라는 실감이 크게 나지 않는 것 같다. 내일은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