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 Walk, Walk

호주에서의 첫째 주

by 하난

호주에 온 지 어느새 나흘째다. 무언가 한 것도 없는데 시간만 훌쩍 흘렀다.

첫날은 긴 비행으로 지쳐 숙소에서 머물렀고, 이튿날에는 체크카드를 받으러 갔다. 한국에서 미리 커먼웰스 계좌를 개설해 놓아서 그때 지정해 둔 지점으로 가 카드를 찾기만 하면 되었다. 미리 신청해 놓은 덕에 비교적 쉽긴 했으나 꽤나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을 선택하긴 하였으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첫날 깜박하고 공항에서 교통카드를 구하지 않았기에 교통카드부터 준비해야 했다. 브리즈번에서 주로 이용하는 교통카드는 'Go Card'로 인터넷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리 알아봐 둔 17분 거리에 있는 구매처로 향했는데 놀랍게도, 문이 닫혀있었다. 5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간 휴무라고 한다. OMG. 살짝 당혹스럽긴 했으나 다시 걸어서 십여분을 가면 되는 곳이 있어 곧장 그리로 향했다. 동네 슈퍼마켓 같은 곳이었는데, 다행히 여기는 문이 열려있었다. 직원은 영어권 사람이 아닌 듯하였는데 억양이나 발음이 생소해서 당황했다. "How are you?" 라길래 답하고 "How about you?"라 물었는데 답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 당혹스럽기도 했다. 정말 예의상 물은 것인가. 이후에도 두어 번 그런 적이 있어 정말 궁금한 점이다.

무튼, 고 카드 $1에 $5를 충전해 총 $6을 지불했다. 한국의 교통카드 사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현장에서 구입하고 바로 충전이 되는 형태였다. 아직까지는 많이 다니지 않아서 이튿날 충전한 것과 이후에 버스 플랫폼에 마련된 고 카드 충전 기기에서 한 것으로 충분했다. 온라인으로도 충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후에는 곧장 커먼웰스로 향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말로만 듣던 일이 일어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Good morning"이라며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얼결에 같이 했는데 아파트 단지 내도 아니고 일반적인 길에서 이렇듯 인사하는 것이 무척 신선하고 좋았다.-그런데 아직까지는 이때 인사한 것이 다였다. 영어권 나라를 공부할 때, 워낙 서로 인사하고 스몰토크하는 게 많다고 해서 어딜 가든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때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호주의 버스는 한국의 것과는 다소 달랐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여 단이 낮았고, 운전석 한 칸 뒤- 한국 버스의 휠체어석 부분-은 지하철처럼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좌석 윗부분에는 휠체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 휠체어, 유모차가 들어올 경우 의자를 접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 뒤편으로는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2인석이 이어지는데, 한국의 2인석이 한 명, 한 명이 앉을자리를 이어 붙여놓은 형태라면, 호주의 것은, 2인용 소파 같은 형태였다. 한국보다 폭이 좁고, 팔걸이가 없는 탓에 과격하게 운전할 경우, 이대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물씬 들었지만, 버틸만했다. 다만, 아직도 의문인 점은, 호주 사람들은 어떻게 저들이 내릴 정류장을 알아보는가, 이다. 호주 버스에는 다음 정류장에 대한 알림이 없다. 글이 뜨지도 않고, 방송이 나오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어떻게 다들 제때제때 내리는 거지?


버스 기다리며 올려다 본 하늘


지하철도 탔는데, 우선 지하철역이 쇼핑몰 지하에 위치해 있어 신기했다. 정확히는 1층에서 카드를 찍고 지하로 내려가는 형태여서 생소했던 듯하다. 지하철도 한국과는 다소 달랐는데, 꼭 기차처럼 앞쪽 좌석 두 개는 앞, 뒤로 서로 마주 보게 되어있고, 그 뒤로는 각각의 좌석이 기차, 혹은 급행버스처럼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지하철을 탔을 때는 한국 지하철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 사실 그때 탄 게 기차였나, 하는 의문도 든다.

지하철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는데, 뿐만 아니라 전광판이 지하철이 다니는 쪽 벽 -지하철이 들어와 있다고 가정할 때, 전광판, 지하철, 사람들 순으로 위치해 사람들은 전광판을 볼 수 없다.-에 설치되어 있었다. 호주는 자살률이 높지 않은 건가.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덜하겠지.


무튼,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점은, 지하철이 도착한 후, 들어가거나 나오길 원하면, 문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점이었다. 횡단보도애서 길을 건널 때마다 신호등에 부착된 버튼을 눌러야 불이 바뀐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하철에서 내릴 때도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어 신기했다.


지하철인지 기차인지 모를 곳

이 날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은행에 들어섰을 때도, 은행 라운지에 있는 직원은 두 명이 전부고, 그 외의 직원들은 따로 준비된 방에서 고객을 응대했다. 카운터에 문의하자 입구 바로 앞쪽에 위치한 직원이 도와줄 것이라고 해서 이미 일을 보고 있던 앞사람이 끝난 후, 친구가 먼저 해당 직원에게 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체크카드를 받을 수 없다고? 집을 구하고 주소를 말하러 다시 오라고?


멀리서 멍하니 기다리다 해당 사실을 전하는 친구에 놀라 직원에게 가보니, 직원은 그 말만을 반복 중이었다. 분명 인터넷으로 확인을 하고, 또 서류에도 해당 지점으로 받으러 오라 기입되어 있기에 당황하여 어버버거리고 있자니 직원이 이해하지 못한 줄 알고 파파고에 해당 말을 적어 한국어로 번역해 주었다. 친절하신 분.


무튼, 당혹스러움을 안고 은행을 나온 우리는 은행 앞에서 검색에 돌입했다. 우리가 이전에 찾아본 계좌개설 브이로그, 블로그, 커먼웰스 측에서 온 메일 등을 확인하는데 아무리 봐도 여기서 바로 받을 수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다시 들어가서 기웃거리고 있으니 아까와는 다른 직원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방금 일어난 일과 내 생각을 말하니, 직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Account letter를 읽어보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한쪽 의자에 찌그러져 있으니, 해당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또 그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무언가를 묻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우려스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자니, 또 다른 새로운 직원이 우리를 방으로 불렀다. 그녀는 내게 몇 가지를 묻고는 체크카드를 발급해 주었는데, 친구 카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아 지금 줄 수 없고 정보만 미리 기입해 두겠다고 했다. 친구가 나보다 늦게 계좌개설을 해 아직 카드가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친구의 Account letter를 보여준 첫 번째 상황에서는 없다고 하고, 내 것을 보여준 두 번째에서는 있다고 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 처음 문의한 직원이 해당 안건에 능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무튼, 은행은 한국에서도 두려운 장소라 무척 긴장했었는데 직원이 무척 친절하고 유능해 그리 어렵지 않게 정보를 기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워홀로 왔냐며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는 부분에서는 하이폰 위치가 헷갈렸는지 우리에게 직원 컴퓨터로 입력할 것을 부탁하며 재치 있는 몸짓을 선보이기도 했다. 정말 똑똑한 분이기도 했다. 여권정보를 세 번 정도 기입하는 파트가 있었는데 두 번째부터 내 여권정보를 모두 기억하고 안 보고 적어내는 것이 아니겠나. 무서울 정도였다.


커먼웰스

은행업무를 마무리한 후에는 이전부터 호주 오면 꼭 가보자고 했던 사우스뱅크로 향했다. 길게 이어진 바다와 중간에 위치한 다리, 바다를 끼고 양 옆으로 위치한 산책로는 한국의 바다와 비슷한 듯 달랐다. 커다란 나무가 우거져 이루어낸 그늘과 내리쬐는 태양으로 빛나는 부분. 산책로는 반으로 나누어져 한쪽은 밝게, 또 한쪽은 어둡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 바로 옆에는 꼭 열대지방의 휴양지 느낌이 나는 작은 바다가 있었는데, 아마 말로만 듣던 인공해변이 여기가 아닐까 싶다. 날이 덥지 않았음에도 모래밭, 잔디밭에는 옷을 훌렁 벗은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호주에서 처음 하는 외식메뉴로 '타코'를 택했는데 꽤 맛있었다. 타코집은 QR로 주문하게 되어있었는데 호주 번호가 필요하게 되어 있어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친절하게 도와줬다. 타코를 처음 먹어보는 데다 가격이 생각보다 더 비싸 이 가격이면 어느 정도 크기인가 싶은 마음에 크기도 메뉴에 있는 것들 크기도 물었는데 무언가 실수를 한 것인지 직원이 계속 웃었다. 음, 여기서는 개그우먼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왜 이렇게 다들 웃지?


무튼, 타코로 배를 채운 다음에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는데 베스킨 같은 곳의 싱글 1개가 8000원이었다. 타코집 콜라 한 잔도 거의 6천 원이더니. 물가가 정말 굉장하구나. 새삼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마침 근방에 있던 한인마트에 들렀다. 이 날 들른 마트는 그닥 물건이 없어 딱히 무언가를 사진 않았지만, 다음 날 방문한 다른 마트는 상당히 크고 대부분의 용품이 다 있었다. 한국반찬부터 라면, 아침햇살까지 있었다. 숙소에서 조리를 할 수가 없어 포트로만 먹을 수 있는 컵라면만 6개입 두 통을 샀다. 스낵면, 육개장을 샀는데 둘 다 한국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




사흘째에는 예약해 둔 집을 인스펙션 하러 갔다. 숙소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집은 상당히 괜찮았다. 가까운 곳에 마트, 병원, 약국, 음식점이 위치해 있었으며 무엇보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2분 거리였다. 집이 크고 깨끗했으며, 우연히 그곳에 사는 사람을 봤는데 우리 또래에 친절해서 홈쉐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도 깔끔하고 크기가 적당해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한 명만 가능하단다.. 여기는 독특한 게 이메일로 두 명 사용 가능한지, 현재 남은 방이 하나인지 같은 걸 물으면, 일단 보러 오라고만 한다는 것이다. 로밍 중이라 한국 번호라 그런지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 인스펙션 네 곳 더 예약해 놨는데 이곳들도 이와 같을까 걱정이다. 뭐, 안 되면 따로 살아야지.


인스펙션한 집 둘러보는 중


여러모로 좋았던 곳이라 아쉬움을 잔뜩 안고 집을 나섰다. 오는 길에 큰 마켓이 워낙 많았던지라 그중에서 가장 큰 곳에 들어가 한인마트, 시네마, 식당가를 구경하고 다녔는데 정말 한국인이 많았다. 시네마 옆에 게임방이 있어서 둘러보다 초콜릿 뽑기를 해보고픈 마음에 카드를 대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안 돼서 뒤에서 기다리던 꼬마 아가씨에게 먼저 하라고 하니, 깔끔하게 한 번에 성공하곤 우리를 보고 씩 웃었다. 약간의 쑥스러움과 뿌듯함을 담은 표정이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우리가 못한 건, 해당 기기를 이용할 때 쓰는 카드가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카드까지 다시 사는 것은 부담스러웠기에 포기하고 돌아섰다.




*




오늘은 친구가 피곤했는지 숙소에서 쉬고 싶다고 해서 혼자 Brisbane Square Library에 갔다. 도서관은 곳곳에 폭신한 의자가 있어 한국에 비해 자연스러운 느낌이 났다. TV와 컴퓨터가 많았고, 어린이들이 활동하는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곳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났다. 3층에서는 악기 연주가 이루어졌는데 연주를 들으며 책을 읽다가도 연주자가 끝을 고하면 함께 박수쳐 주는 것이 신기했다. 자유로운 성향이 강한 도서관이었다. 너무 조용한 곳은 되레 집중이 안 된다고 느끼던 터라 나는 무척 좋았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웠다면, 혹은 이후에 살게 될 집에서 가깝다면 종종 이용할 듯하다.


도서관에서는 다국적 사람들과의 대화시간도 있었는데 누구든지 해당 이벤트가 열리는 시간에 원한다면 참석할 수 있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호주인 등 정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국인이 많은 듯하여 오늘은 넘겼다. 이상하게 한국인이 있으면 더 소극적이게 된달까.


덕분에 도서관에서 나갈 때, 내 바로 앞에 있던 한국인 남학생 무리를 마주칠 수 있었다. 그들도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본 탓인지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다. 대화를 들어보니, 온 지 얼마 안 된 학생들 같았는데 정보라도 공유할 걸, 말 걸지 못한 것이 아쉽다.


도서관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왔다. 도보로 2시간 거리였는데 채용공고는 있는지, 어떤 건물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예쁜 곳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거의 3시간은 걸린 듯하다. 강을 끼고 건너야 하는, 고속도로와 비슷한 곳이었음에도 인도와 횡단보도,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것이 놀라웠다. 19세기 영국에서 볼 법한 구조의 호텔과 현대면세점, 중국음식이 즐비한 곳 - 이곳의 차이나타운이 아닐까-, 범죄자 수송중인 경찰차와 중간중간 커다랗게 자리한 공원들. 한적한 곳은 사방이 탁 트여 양 건물을 경호원으로 둔 하늘에 다가서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숙소에 오는 중 본 공원

오는 길에 산책 중인 강아지에게 수줍게 손 흔들어주니 강아지 주인 분도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달려가셨다. 다음에 달리지 않는 강아지를 보면 꼭 제대로 인사해야지-여기는 많이들 달리는 듯하다.


호주에 온 후로 하루의 절반은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기만 하는데도 시간이 훌쩍 간다. 휴대폰이 재미없을 만큼 아리따운 광경이라니. 언젠가 이것이 당연해질 날이 그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