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온 지 어느새 열흘이 다 되어 간다. 열흘간 많은 일을 하지 않은 듯, 한 듯 애매모호하다. 밤낮없이 집과 일자리를 알아본 덕에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고, 그동안 하루에 몇 탕씩 인스펙션을 뛰었다. 여기저기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국제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름 바쁘게 지낸 듯한데 막상 되뇌니 그닥 한 것이 없어 머쓱하기도 하다.
얼마 전에 MEET UP에서 국제 문화 교류 모임을 하기에 참여했다. 친구는 숙소에서 쉬고 싶어 해서 혼자 참석하게 되었는데 늘 7시 이내에 숙소에 들어오다 5시에 숙소에서 나가니 기분이 묘했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하늘을 바라보며 이메일로 온 장소로 향했다. 모임장소는 어학원 같은 곳이었는데 덕분에 바로 앞에서 엄청 헤맸던 것 같다. 아니, 모임을 Cafe 모임이라고 해놓고, 어학원에서 하면 어떡합니까.
무튼, 그래도 어학원이라 안심이 되기도 했다. 참여비가 없는데 음료도 무료제공이고 장소도 무료제공이라 음료에 마약을 타거나 인신매매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학원 직원 중에는 한국인도 있고, 음료도 커다란 탄산음료를 종이컵에 두 잔씩 먹게 하는 데다 사람들이 앉는 테이블 곳곳에 어학원 광고지가 있어 "음, 내나 워홀이나 유학 온 학생들이 많이 오는 모임이니 광고하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었다.
모임은 한국에서 가졌던 영어 모임과 비슷했다. 모임장에는 곳곳에 여러 테이블이 있었는데 큰 테이블에는 6명까지, 작은 원형 테이블에는 4명까지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들어오는 대로 원하는 곳에 앉아 해당 테이블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테이블을 로테이션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와 함께 온 탓에 혼자 온 나는 엉거주춤 서 있다 빈 테이블에 앉았다. 해당 테이블에는 이탈리아인 한 명과 한국인 한 명이 있었는데 둘이 굉장히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어 한참을 그저 웃으며 있었던 듯하다. 앞에서 멀거니 보고 있자니 이야기를 멈춘 둘이 내게도 이름은 무엇인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었는데 이름을 말하자마자 옆에 있던 한국 분이 "어!"라며 반가운 탄성을 질렀다. 그분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영어실력 향상을 원하게 되어 워홀 가능한 마지막 연도(만 30세)에 호주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덕분에 괌, 이탈리아, 일본 등 여러 여행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으니 곧 일본인 한 명도 우리 테이블에 합류했다. 해당 모임에 처음 나온 우리와 달리 여러 번 나온 적이 있는 분이었는데 활발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비교적 영어실력이 떨어졌던 우리 두 한국인이 말할 때면 틀린 부분을 부드럽게 고쳐주며 "정말?", "재밌었겠다" 등 긍정적으로 반응했는데 마주 보고 있으면 함께 웃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들 아직 이런 스몰토킹에 익숙지 않은 탓일까.-이탈리아는 스몰토킹을 잘 안 하나 모르겠다. 독일인 남자친구가 있는 이탈리아 사람, 베트남인 남자친구가 있는 일본 사람의 장거리 연애의 고충을 들은 후에는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네 명이 있으면 모두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끝내 일본인 분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열망을 참지 못하고 그분에게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었다. 마침 다음 주에 이사 가기로 한 곳에 살고 있다고 하여 더욱 흥미가 동했던 것도 있었다. 덕분에 마지막에는 인스타 아이디를 교환하기까지 했는데 이제 테이블 바꿀 시간이라는 진행자의 말에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을 뒤로하고 멀어졌던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중에 보니까 다들 무시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랑 계속 대화하더라고.
테이블 바꾸기 또한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 탓에 바꾸기가 더욱 어려웠다. 다들 이미 저들끼리 대화를 한 데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것이 컸다. 중앙에서 엉거주춤 서 있으니 까만 후드티를 입은 남자분이 내 옆의 자리를 가리키며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사실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았는데 눈치껏 그런 것 같았다. 앉으라고 고개를 끄덕이니 남자가 "Are you Japanese?"라고 물었다. 그에 "No, Korean."이라고 답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아, 한국 분이세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 이거 이렇게 오해받으면 기분 안 좋은데. 저는 아까 태국인이냐고 들었거든요."라고 한국어로 답해 와 놀랐다. 한국인처럼 생기긴 했지만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다른 나라 사람으로 오인받았다고 불쾌했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나라마다의 특색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동양인들은 아무래도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불쾌함의 밑바닥에는 오해받은 타국에 대한 괄시가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기에 불편하기도 했다.
무튼, 한국인을 만난 게 반갑기는 했던 터라 "한국분이세요? 언제 여기 오셨어요?"라고 물으니, 상대가 바로 "부산에서 왔죠?"라고 해서 당황했다. 사실, 끝무렵에 만난 한국인과도 잠깐 대화하니 바로 "어디 분이세요? 저 울산에서 왔는데, 말투가 비슷한 것 같아서요."라는 말을 들었다. 사투리가 그리 심하지 않다고 믿어왔는데 흔한 지방 사람의 착각이었나 보다.
후드 티를 입은 남자분은 호주에 유학하러 온 사람으로 여기서 아예 살 생각인 듯했다. 영어에 능하고, 여러모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한국인이 어버버거리고 있으니 어떠한 사명감이라도 들었는지 아직 합류할 테이블 못 찾은 거면 같이 가자고, 영어를 늘리고 싶다면 다음에 외국인 친구들이랑 놀 때 부르겠다고 했다. 감사하기는 했지만 다소 경계심이 들어 테이블 대화 종료 후에는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후드 티 사람과 함께한 조에는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스피커 바로 옆에 자리한 탓에 대각선에 앉은 사람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마주 보고 앉은 여자분과는 몇몇 담소를 나누었는데 말도 어눌하고 누가 봐도 해당 조에서 가장 어린 게 신경 쓰였는지 일을 구하고 있다고 하니 바로 필기할 거 있으면 꺼내보라고, 자기가 이전에 알바했던 곳 중에 지금 직원 구하는 게 있다고, 적어주겠다고 했다. 대화에 흥미는 별로 없어 보였지만 친절한 분이었다.
그 테이블에서 멀어진 후에는 같은 백팩커스에서 만나 친해진 8명 정도의 한국인 무리가 있기에 슬쩍 끼어들었다. 처음 만난 한국인 언니가 있기도 했고, 극 내향인이라 다소 기가 빨린 탓도 있었다. 그들은 복도 중앙에 서 있었는데 꼭 강강술래를 하는 것 마냥 둥글게 둘러싸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까지 끼어 허허거리고 있으니 콜롬비아 사람 한 명이 왔는데 인원이 너무 많아 5명, 3명 찢어져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나는 한국인 한 명과 콜롬비아 사람이 있는 곳에 앉았는데 콜롬비아 분이 학교는 어디 다니는지, 무슨 과인지, 워홀 끝나면 뭐 할 것인지 등을 물어 살짝 불편했다. 특히 워홀 끝나고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아는 한국사 선생님이 학원을 차릴 것인데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하니, "너 지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는 것이냐"라고 계속 비웃기에 굉장히 불쾌했다. 순간 내가 무언가 잘 못 말했나 싶어 나중에 찾아봤는데 내가 전하고자 한 대로 말한 것이 맞았다.
이후로는 모여있는 한국인들과 서로의 고충, 고민 등을 나누었는데 정말 여기에 온 이유가 다 달랐다. 누군가는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누군가는 해외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친구가 간다기에 그저 흥미로. 저마다의 동기를 이야기하는 그들 속에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여기에 왜 왔을까. 영어? 물론 더 능통해지면 좋겠지. 그러나 사실 열심히만 한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늘릴 수 있는 부분이다. 돈? 어느 누가 저들의 언어에 능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를 비싼 값에 부르겠나. 자격증 같은 것을 따서 한국에서 버는 게 나을 듯하다. 내가 여기에 온 가장 큰 목적. 그건, 내 세상을 넓히는 것이었다. 작은 마을에서 한평생을 지내왔기에 알지 못하는 세상이 너무도 많았고, 그저 책으로만, 누군가의 입으로만 전해 듣던 것을 직접 해보고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가는 것. 그리하여 더 많은 다양성을 수용하고 다채로운 세상 속을 거니는 것. 그것이 최초의 결심이자 목적이었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들의 언어가 가장 먼저 와닿는 그들의 문화이니까. 언어에는 누군가의 역사가, 사고가, 감정이, 삶이 담겨있기에 그것을 가장 먼저 알고자 했을 뿐이다.
나는 목적과 수단을 쉽게 혼동해서 이번에도 고작 일주일 만에 그러고야 말았다. 몇몇 호주 사람들의 한숨과 짜증을 겪으며 대화를 망설였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곧장 돌아가게 될까 식사값을 아꼈다.
이 나라의 식사를 하고,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게 무례한 행동이고, 어떻게 감사를 표하는지. 결국 어딘가에서는 돈을 쓰고, 거절당하며 마주했을 때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여기까지 와서 '다음'을 핑계로 멀리했다.
문득 호주의 역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 위에서, 고개를 들지 않아도 펼쳐진 커다란 하늘 아래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그리하여 이 나라는, 이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리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 땅을 떠나는 날까지 이룰 단 하나의 목적은, 하루하루 있는 힘껏 여기의 이 아름다운 나라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별을 고할 때, 내가 여기서 무언가 하나는 배웠노라 말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