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온 지 어느새 2주가 지났다. 그동안 한 것이라고는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닌 것이 다인데 어쩜 이리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지.
운이 좋게도 나는 제법 집을 빠르게 구한 편이다. 친구와 브리즈번의 어느 지역에 살지 정해놓지 않았던 터라 한국에서는 가볍게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이는 집들을 즐겨찾기 해두고 호주에서 도착하고서야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봤다. 도착한 이튿날부터 real estate, gumtree, sunbrisbane 등 집을 구할 수 있는 사이트면 다 돌아다니며 밤새 물색했었다. 지불할 수 있는 가격대를 설정해 가구가 있는 곳으로 찾으니 나오는 곳이 별로 없어 정말 여기는 아닌 것 같다 싶은 곳이 아니고서는 전부 Inspection(집, 차 등을 사기 전 미리 실물을 보는 것)을 신청했다. 호주 사람들은 한국 보다 답이 느린 편이어서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집을 구한 후에- 답이 오기도 했다. 인스펙션도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 혹은 에이전시가 괜찮은 시간대에 자리가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신청해 두는 것이 좋다.
나는 50개 정도에 인스펙션 연락을 넣고 4개인가 5개를 봤다. 첫 번째 집은 이웃도 좋고 위치, 구조도 모두 훌륭했으나 가격이 다소 비싸고 한 명만을 받아 포기했었다. 두 번째는 위치는 나쁘지 않았는데 집이 상당히 허름하고 지저분했으며 그에 비해서는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일단 보온이 전혀 안 되는 것에서 바로 눈길을 돌렸다. 세 번째는 주로 대학생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기숙사처럼 여러 명이 한 구역을 나누어 쓰는 형태였다. 대학교 근처라 교통이 편리하고 아무래도 또래와 함께 살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좋았으나 안타깝게도 7월부터 입주 가능하다고 한다. 분명 사이트에는 6월부터 가능하다고 나와있었는데 말이다.
지금 거주 중인 곳은 이다음번에 본 집이다. 아시아인을 선호한다는 집주인은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는데 외국생활을 오래 한 탓인지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익숙하고 편하다고 했다. 집은 2층으로 된 주택구조로 1층은 거실과 부엌으로 이루어진 공용공간, 2층은 5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개인공간이었다. 여기는 누가 봐도 1명만 받는 것이어서 정말 마음에 들면 따로 살더라도 나는 하겠다는 마음으로 왔는데 이게 웬 걸. 마침 입주자 중 한 명이 곧 나갈 예정이라 우리가 들어오고 싶은 날에는 2명 모두 이용 가능하다는 게 아니겠나. 화장실이나 부엌, 방도 비교적 깔끔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괜찮은 데다 최소거주기간 및 Notice(나가기 전 얼마 전에는 알리라는 기간)이 없다고 한다. 인스펙션 하다 우연히 마주친 입주자가 상냥한 것을 보기까지 했으니 도저히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좋은 조건에는 뭐든 어느 것 하나는 흠이 있는 것 아니겠나. 여기에는 몇몇 룰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10시 이전에는 모든 활동을 끝내고 10시 이후로는 그 어떤 소음도 내지 않을 것'이었다. 이걸 어기면 나가야 한다고 하는 것을 보니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 듯했다. 그래도 호주가 워낙 일찍 어두워지기도 하고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동안 그토록 늦게 활동한 적이 없었기에 괜찮겠다 싶었다. 아직 호주의 현실을 모르는 어린 생각이었다는 걸 입주 2일 만에 깨닫게 되었지만.
호주 온 지 일주일째에 집을 정하고, 2주째에 이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이제 이틀밤이 지났다. 집주인은 한숨이 많고 청결과 안전에 예민한 분이었지만 부러 우리가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를 위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약도를 그려가며 설명해 주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바로 옆방에서 묵고 있는 일본인 친구도 조용하지만 눈이 마주칠 때면 슬며시 미소 짓는, 첫인상 그대로 상냥한 사람이고. 버스정류장도 도보 10분 이내에 마트와 식당까지도 도보 20분인 위치적으로도, 사람들도 좋은 곳이다.
그래, 그런데. 정말 방음이 안 된다. 이전 숙소에서 지낼 때도 호주 집들은 방음이 안 되구나, 생각했지만 정말 안 된다. 옆방 사람이 기침하는 소리, 사부작거리는 소리부터 2층에 있는데도 1층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 정도다. 집주인이며 원 입주자까지 워낙 조용한 사람들이라 집안에서는 적막뿐이다. 심지어는 집주인이 일반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정도의 음성으로 말하다가 친구가 지나가니까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워낙 조심조심 다니니 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 안에서 중얼거리며 공부하는 소리마저 다 들린다는데 어떡해. 조용히 해야지. 원체 소음이 많은 곳에서 살던 내게는 정말 큰 스트레스다. 꼭 독서실에 온 것처럼 살금살금, 조심조심하니 차라리 밖이 더 나은 느낌도 났다.
더군다나 홈쉐어이다보니 방을 나설 때마다 문을 잠구어야하고, 화장실에 갈 때면 늘 휴지를 지참해 가야 하는데 이것도 꽤나 불편했다. 일층에서 식사하고 바로 나가려고 했다가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다시 2층의 방으로 와 휴지를 가지고 화장실에 갔다 다시 방에 두고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문을 열고 잠그고 하니 한 번씩은 그 과정이 귀찮아 화장실을 참기도 했다.
심지어 집에 도둑이라도 들었던 것인지 현관문은 삼중 잠금장치로 되어있어 오갈 때면 총 네 번의 문 따기가 있어야 한다. 안전 측면에서는 정말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무거운 짐이 있거나 화장실이 급할 때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생판 모르던 남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겠냐만은 홈쉐어는 상상 이상으로 불편하고 답답했다. 내 방, 네 방 없이 거실에서 가족들과 엉켜 자고, 한 공간에서 한 명은 TV를 보고 한 명은 릴스를 보고 또 다른 한 명은 공부를 하던 생활을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동안 해왔던 탓일까. 지극히 서로를 배려하고 각자의 공간을 존중해야 하는 생활방식이 불편했다.
오늘은 그 불편과 지난날의 불안이 뒤엉켜 폭발한 날이었다.
이러저러 불편한 점을 말하긴 했으나 어찌 되었던 좋은 사람들, 좋은 위치에 있는 집을 구한 것과는 별개로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호주에 오고 이틀차부터 지금까지.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온갖 사이트를 누비며 이력서를 넣은 것이 300군데에 달한다. 그중 연락이 온 곳은 3군데로 첫 번째는 면접가능일을 말해달라고 해놓고 답했더니 답이 없었다. 두 번째는 편의점이었는데 위치를 착각해 다른 지역-차 타고 33시간인-에 이력서를 넣은 것이었던 탓에 죄송하다고 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연락 온 곳은 스시집으로 한국어로 면접 가능하냐고 왔길래 한인잡 사이트에서 구한 일인 줄 알았더니 놀랍게도 오지잡 사이트에서 구한 일이었다. 이름을 보고 한국인인 줄 알고 한국어로 답을 보낸 것이었다.
이메일을 받자마자 메일에 나온 번호로 연락을 한 나는 이틀 뒤로 면접날을 잡았다. 처음 보는 면접인 탓에 떨리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고 간 스시집은 놀랍게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을 검색했는데 배가 나와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했다. 지도가 알려준 대로 선착장으로 간 후에도 주춤이며 이게 맞는지, 지금이라도 연락해서 못 간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다 근처에 서 계시던 여자분께 가서 여기서 배를 타는 것이 맞는지, 얼마정도 하는지를 물었다. 선글라스에 상당히 힙하게 입고 계신 터라 다소 긴장하고 물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상대는 굉장히 친절하게 답해왔다. 이거 타면 되는 것이 맞고, 가격은 2~3불 정도-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 정도-라고 했다. 감기기운 탓에 잔뜩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 낯선 곳에서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였는지 예쁘게 웃으며 이 근처에 사는지를 물으며 ferry를 타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놀랍게도 호주에서는 Ferry가 흔한 교통수단이며 교통카드로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한 정류장 앞서 내리셨는데 내리면서 내게 다음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고 알려주기까지 했다. 친절한 호주 사람들. ferry를 타고 내릴 때마다 마주치는 직원들도 무척 밝고 친절했다.
무튼 그렇게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하고 도착한 스시집.
인터뷰는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그래도 호주니까 영어로 면접 보지 않을까 했는데 매니저님도 한국어가 편한 것인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한국어로 물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어디서 사는지, 언제부터 일이 가능한지, 일이 힘든데 버틸 수 있는지, 체력은 좋은 편인지를 물었다. 또 Kichen Hand로 지원했는데 날 보더니 주방은 정말 많이 힘들고 힘써야 해서 그건 못할 것 같고 하게 된다면 홀을 맡기고 싶은데 어떠냐 물었다. 시켜만 준다면 홀을 더 선호했기에 당연히 괜찮다고 했고 나흘 뒤에 트라이얼 하러 오라는 말을 끝으로 면접은 끝나게 되었다.
대망의 트라이얼은 바로 어제였다. 과외만 오래 했지 따로 많은 알바 경력이 없었던 탓에 일을 잘하지 못할까, 경험 없는 게 많이 티나진 않을까, 외국인 손님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과 불안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전날 밤에는 불안감이 극에 달해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30분 만에 일어나 밖을 보고 시계를 보기를 반복했더랬다. 트라이얼을 하러 가는 길은 더했다. 혹여나 늦을까 싶어 1시간 걸리는 거리를 2시간 전에 출발했는데 이게 웬 걸. 버스가 안 온다? 도착예정시간이 한참을 지났는데도 자취를 보이지 않는 버스에 마음을 졸이며 있기를 40분.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버스에 부랴부랴 몸을 싣고 나니 불안감은 더더욱 증폭되었다. 제시간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하, 그냥 이대로 안 가고 싶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정적인 생각에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가빠져왔다.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열기를 다스리기를 반복하니 도착한 초밥집.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가게로 들어섰다.
밤새 트라이얼 영상을 보며 손님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어떤 말로 묻고 답하는 것이 예의 있는지를 연습한 것이 우습게도 트라이얼은 그냥 처음 음식점에서 일 배울 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느 식당이 그러하듯 처음부터 손님 응대를 시키지는 않았고 그저 기본적인 음식 준비, 그릇세팅, 청소 정도만을 알려주고 하게끔 시켰다. 손님 응대라고는 해봤자 음료를 드리며 "excuse me"하는 것이 다였다. 날 지도해 준 직원분도 한국 분이셔서 더더욱 한국에서 알바했던 것과 다름없게 느껴졌다.
약속했던 트라이얼 종료시간이 되기 30분 전, 매니저님은 잠시 해보니 어떠냐 물었고 얼떨떨했던 나는 괜찮은 것 같다는 맹한 답이나 내놓았다. 매니저님은 집에서 오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손님들에게 메뉴 설명하려면 메뉴 공부는 따로 좀 해와야 하는데 괜찮은지, 다음 주는 언제 일할 수 있는지를 묻더니 메뉴판을 주며 이따 연락하겠다고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라고 했다. 메뉴판을 주었으니 합격을 한 것인가 싶다가도, 바로 시간 얘기를 하지 않고 후에 연락을 한다고 하니 트라이얼 할 다른 사람들이 더 있는 건가 싶기도 해서 어영부영 인사하고 나왔다. 어쨌든 완전히 부정적인 답은 아니었던지라 조금 들뜨기도 했다.
되고 안 되고를 떠나 트라이얼, 외국에서의 일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 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큰 배움이었다. 한국에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끝무렵에는 어딜 가든 영어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탓에 우쭐했던 초기와 달리 시간이 지나며 못 알아듣는 경우, 그로 인해 한숨 쉬는 외국인들을 만나며 많이 기가 죽었던 것 같다. '이런 것도 못 알아듣는데 내가 과연 일을 할 수 있을까?' 용맹하게 오지잡 홀만을 지원했던 초반과 달리 계속해서 주방 쪽, 한인잡 위주로 지원을 한 것도 자신감이 줄었던 탓이 컸다.
그러나 트라이얼을 하며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고작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접하진 못했지만 못 알아듣겠는 말은 전혀 없었고 일도 어렵지 않았다. 손님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거나 음료를 가져다줄 때면 늘 고맙다고 하며 미소로 답해주기도 했기에 외레 이런 사람들을 접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들었다.
문득 경험이라는 게 이런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접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생각보다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해보지 않았기에, 미지에 속한 공포의 실체를 마주하고 그것이 우리가 극복할 만한 것임을, 우리 스스로가 생각보다 더 단단함을 깨달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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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스시집에서는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 Kichen hand로 지원했을 때 본 구인공고에서는 12시부터 5시까지 근무라고 나와있기에 괜찮았는데 홀 담당은 밤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통금시간 때문에 포기하게 되었다. 처음에 홀 괜찮냐는 얘기를 하며 시간 얘기를 따로 안 하길래 당연히 구인공고대로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트라이얼 후 돌아오며 문득 그게 맞을까 싶은 마음에 문자를 드렸다. 통금시간이 있어서 8시 이전까지만 된다고. 한참 지나 온 답에는 그러면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좋은 다른 일자리 구하길 바라겠다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어찌 되었든 좋은 경험이었다.
첫 물에 배부를 생각 마라고, 첫 트라이얼부터 잘 되리라 생각지는 않았기에 그건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난 숙소에서 집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편히 잘 잤기에 이사한 이 집에서도 잘 잘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도 예민한 성격의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첫날은 트라이얼 때문에 긴장해서 그렇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니라고 느껴서일까 밤새 뒤척였고 그동안 라면과 빵으로 점철된 나날을 보냈던 내게 수면부족은 치명적이었다.
원체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다. 때문에 한국을 떠난 지 채 나흘도 되지 않아 집에 있는 우리 강아지, 우리 동네가 그리워졌었다. 닷새째에는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울컥 눈물이 났다. 더군다나 함께 해 의지가 되리라 생각했던 친구는 성격, 생활습관의 차이로 갈수록 서먹해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사귄 친구 하나 없이, 누구에게도 일상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지독하게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활한 하늘, 높이 솟은 푸른 나무와 상냥한 사람들 덕에 어찌저찌 버티고 있던 것들이 수면부족으로 울컥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마침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던 탓에 오전 시간 내내 앉아 멍하니 생각했다. 여기서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이 맞을까. 온 지 2주가 조금 넘은 것밖에 안 되었는데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것일까. 이런 기분, 감정이 지속적인 것일까. 내가 여기 뭐 하러 왔을까. 그저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물씬 들었다.
얼굴에 열기가 오르도록 쿵쿵대는 심장과 가빠져오는 숨은 불안장애로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해 무섭기까지 했다. 아등바등 노력해서 겨우 조금 나아졌는데 더 나아지려고 온 곳에서 마음의 병만 얻어가는 것은 아닐까. 비행기표를 살펴보기도 했다.
늘어지는 몸과 무거운 머리를 끌어안고 한참을 고민했다. 사실 친구와 함께 온 게 아니라면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랜 기간 준비해서 많은 돈을 들여, 친구와 온 것이니 조금은 더 노력해 보고, 조금은 더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어딘가에라도 털어놓고 싶어 언제고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에게 전화해 투정을 들어놓기도 했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지치고, 나 너무 의지박약인 것 같다고 찡얼대는데도 친구는 묵묵히 들어주며 힘들면 돌아오라고 했다.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언제고 돌아와도 환영해 주겠다고. 친구 목소리를 듣자마자부터 글썽이던 눈가에서 한 움큼 눈물이 떨구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말이 필요했구나. 이런 응원이 필요했구나. 내게 필요한 말을, 필요한 순간에 해준 친구가 너무 고맙고 또 미안했다. 모처럼 연락해서 한다는 말이 투정이라니. 막내로 태어나 어딜 가든 오구오구 받던 탓에 이런 오냐 오냐가 없으면 잠시도 못 버티는구나 싶어 스스로가 우습기도 했다.
서러움인지, 안도인지, 불안함인지, 고마움인지 모를 눈물을 훌쩍이며 나는 그렇게 브리즈번 스퀘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고의 흐름은 단순했다. 우울과 불안은 대게 고여있을 때 찾아오곤 해서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외국에서, 전혀 다른 음식, 전혀 다른 환경을 보던 내게 전환이라고 한다면 역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곳은 모임인데 도서관에서는 마침 English conversation group이라고 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하며 영어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오늘 마침 그것이 열린다는 것을 알기도 했고, 갈까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곧장 그리로 향했다.
눈이 화끈거리는 것을 보니 누가 봐도 운 게 티 날 텐데 이런 상태로 가도 될까 하는 고민이 들긴 했지만 잠깐이었다. 어차피 오늘 보고 말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데 오늘은 내 기분만 생각하자. 무례하게 굴지만 않으면 됐지,라는 다소 막무가내의 생각을 안고 간 도서관 모임.
예전부터 있었던 모임이라 인지도가 있는지 사람이 무척 많았다. 3층 룸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 지어 서 있고 입구에 있는 직원이 한 명씩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묻고 조를 배정해 줬다. 다국적으로 섞이게 하기 위함인 듯했다.
내가 속한 11조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일본인 1명, 터키인 1명, 아프가니스탄인 1명으로 구성되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질문지가 있었는데 오늘은 운동에 대한 것이었다-이전에 와 본 터키인의 말에 따르면 매번 주제가 바뀌는 듯했다. 대충 어떤 스포츠 좋아하냐, 유산소냐 무산소냐 하는 것들이었는데 그닥 흥미롭지 않았던 탓에 중간부터는 프리토킹으로 이루어졌다. 대화는 꽤 즐거웠다. 다들 영어권 사람이 아닌지라 서툴렀지만 서로에게 집중했고 어떻게든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중간부터는 터키 사람과 아프가니스탄 사람의 터키 집값과 호주 집값 중 어떤 게 더 높은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는데 터키 화폐 단위와 지역을 잘 모르는 탓에 끝무렵에는 흥미를 잃고 옆자리의 한국인과 대화했던 것 같다. 터키, 아프가니스탄 두 분이 일본인 친구와의 사이를 가로막고 열띤 토론을 펼친 탓에 그 분과는 대화를 하기 어려웠다. 그분도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끝에는 폰만 했다.
한국분은 호주에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파릇파릇한 초기 워홀러로 - 나도 뭐라 할 것 못 되지만 - 아직 영어에 많이 서툰 듯했다. 나도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데 중간중간 못 알아들으셔서 열심히 통역했던 것 같다. 그중 몇몇 전문용어는 우연히 아는 게 나와서 말해준 것이었는데 "우와. 진짜 똑똑하시네요."라고 해주셔서 으쓱해 더 알려주려 했던 것 같다. 여기 오고 난 후로는 처음 받는 언어적 인정이라 굉장히 기뻤다. 이 분과 연락처 교환을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대화가 끝나고 일본인 친구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같은 바지, 비슷한 신발을 신고 온 데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아, 저 사람이랑 많이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라 끝나고 꼭 물어야지 했는데 기쁘게도 일본 친구가 먼저 물어봐 줬다. 한국 드라마, K-pop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SNS 가득 한국어, 한국 아이돌이 도배되어 있어 "한국분 아니세요?"라고 물을 뻔했다. 다음 주에 한 번 같이 식사하기로 했는데 굉장히 설렌다.
여기 오고 나서부터 내가 한국의 국민이라는 걸 실감하는 듯하다. 원래도 한국 고유의 것, 한국사에 관심이 많고 자긍심을 느끼는 편이긴 했으나 외국에 나오니 더더욱 한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표하게 되는 듯싶다.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한국을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에 괜히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기도 하고.
*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층 가벼웠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야 알았는데 지난날 구인공고 붙어있는 것 보고 찾아갔다 이력서만 두고 가라고 해서 대차게 까인 줄 알았던 집에서 연락이 왔었다. 아침에 오늘 면접 보러 올 수 있냐고 온 것이었는데 땅굴 파느라 못 본 것이었다.
진부한 말이지만 마음이 고여 허물어질 땐 우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고, 변화가 필요할 땐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는 게 맞는 말인 듯하다.
여전히 낯선 상황,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계속해서 노력해 본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안 되면 돌아가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