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은 꿈에서 시작해'는 웡카 대사를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해당 글은 영화 감상 중 필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원래 대사와 상이할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은 영화 <웡카>에 대한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무얼 할까 고민하던 중 얼마 전 개봉했다는 영화 <웡카>가 떠올랐다. 영화를 즐기는 다른 친구들이 기대된다고 하던 작품이기에 궁금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어 바로 근처 극장을 찾아갔다. 심야영화인 탓일까, 다들 출근을 앞두고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일요일 밤이어서일까, 상영관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어디 재벌가 2세라도 되어서 조용히 낭만을 즐기겠답시고 영화관 전세 낸 사람처럼 어두워지는 상영관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퍽 유쾌했다. 심야영화의 특별한 점이다.
영화 <웡카>는 꿈을 찾아 떠나는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웡카는 마술사이자 초코 요리사이다. 어머니와 한적한 곳에서 자란 그는 어머니 사후 생전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곤 하셨던 달콤 백화점에서 초콜릿 가게를 열겠다는 꿈을 가진 채 바다를 건넌다. 적은 돈으로 타지에서 생활한 웡카는 안타깝게도 현실감각이 부족했다. 하루 만에 전재산을 탕진한 그는 눈 오는 겨울날 노숙을 결정한다. 얼어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산뜻한 그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남자가 다가온다. 남자는 웡카에게 저렴한 가격에 방을 빌려주며 지금 돈이 없다면 다음날까지만 내면 된다고 한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글자를 봐."라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흔쾌히 이를 승낙하고 다음날 거리로 나가 처음으로 초콜릿을 판다. 여러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맛과 먹고 나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놀라운 효과까지. 웡카의 특별한 초콜릿은 순식간에 인기를 끌게 되지만 그 동네를 주름잡던 3명의 초콜릿 상인에 의해 신고당하며 영업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날 벌어들인 수입마저 압수당하고야 만다. 슬픔에 빠진 웡카는 순경에게 말해 겨우 방값만을 받은 채 숙소로 돌아온다. 힘 빠진 걸음으로 돈을 전했지만 숙소 주인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긴 명세서를 꺼내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명세서에는 '불을 쬔 값, 계단을 이용한 값, 오자마자 묻지도 않고 먹인 술값' 등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용을 청구하며 큰 금액을 내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한다. 가련한 청년 웡카는 당연하게도 그런 돈은 없다며 황당해했고, 숙소 주인들은 그렇다면 노동으로 갚으라며 그를 세탁소에 처넣는다. 세탁소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그에게 "작은 글씨를 보"라고 했던 소녀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소녀는 세탁소에 버려진 고아로, 키워준 값이라며 숙소 주인들이 불합리한 금액을 내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며 학대했다고 한다. 평생을 세탁소에서 살 수 없었던 웡카는 소녀에게 자신의 초코를 맛 보여주며 자신이 나가서 초콜릿을 팔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희망을 심어주는 초콜릿을 먹은 소녀, 누들은 고민 후 이를 승낙하고 이후 세탁소의 다른 피해자들까지 합류하며 웡카의 초콜릿 가게가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존 초콜릿 상인들의 독점적 경쟁과 기업인들과 행정부의 부정관계, 일반 시민의 저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가장 주된 이야기는 '웡카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지만.
<웡카>는 동화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우선 작중 가장 큰 빌런 중 하나인 기존 초콜릿 상인 3인방이 웡카를 방해하는 가장 큰 목적이 '기업 이윤' 때문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재고가 충분함에도 감추어두고 일정한 양만, 그것도 과도하게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며 안정적인 독점적 경쟁을 하던 그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초콜릿을 파는 웡카는 큰 위협이다. 실제로 웡카가 활동을 하며 그들의 실적이 대폭 하락되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고자 그들은 고위 공직자를 매수한다. 이때 공직자가 바로 청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경찰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물러나던 이가 계속되는 청탁과 높아지는 대가에 홀라당 넘어가버리고 만다. 기업인들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성직자 측도 매수하는데, '초콜릿'을 테마로 한 이야기답게 초콜릿을 주며 거행을 치른다. 이는 근래 대두되고 있는 '마약'의 문제점과 연관 지어 생각되기도 한다. 더불어, 웡카가 겨우 돈을 모아 세운 가게를 무너뜨리는 방법 또한 현실적이다. 기업 측에서 숙소 사장들에게 세탁소 피해자들의 작태를 말하며 그들이 더 이상 설치지 못하도록 하라고 이르는데, 악독한 표정이나 몇 번이나 '사망'을 입에 담았던 기업가들이 공모한 것이니만큼 웡카들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웡카의 가게는 순조롭게 개업했고 화려한 인테리어와 뛰어난 맛과 효능 덕에 사람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다. 얼굴 가득 피어오른 기쁨에 저도 모르게 따라 웃을 무렵, 일은 벌어진다. 손님들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초콜릿을 먹은 이들의 몸에서 털이 자라거나 색이 바뀌는 등 괴이쩍은 현상이 벌어졌다. 누군가 초콜릿에 독을 탔음을 깨달은 웡카는 초콜릿 섭취를 멈추라고 외치지만 이미 먹을 사람은 모두 먹은 상태. 분노한 손님들은 가게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다. 황폐화된 가게에 기업인들이 찾아와 거금을 주며 꿈을 접고 떠난다면 세탁소 사람들이 자유를 되찾게 해 주겠노라 회유한다.
한 번 떠나간 민심은 잘 돌아오지 않는다. 거리낌은 남고, 웡카의 잘못이 아님이 밝혀지더라도 이미 과도하게 분노를 표한 입장에서 다시 그를 찾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땐 내가 오해했다.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웡카의 가게 자체에 대해 불신을 심어준 기업인들의 뒷작업은 상당히 용렬하고 치밀하다. 증거가 남지 않았기에 더더욱. 기쁨을 본 직후이기에, 또 긴 고생 끝에 이루었던 것이기에 웡카는 지쳐버렸고, 함께하며 정을 쌓았던 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은 놓기 힘든 대가였다.
영화 <웡카>가 좋았던 것은, 이러한 현실적인 면모를 동화적으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거래의 많은 부분이 '초콜릿'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 중간중간 웡카의 특별한 초콜릿으로 인해 일어나는 신묘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노래와 함께 풀어냈다는 점, 그리고 기린과 대화하고 풍선을 타고 날아오르는 등 낭만적 요소를 가미하여 이야기가 침울해지거나 잔인해지지 않도록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기에 현실에 도처 한 사회문제로 인식을 전환하는 과정도 유연하게 일어난다. 결말이 희망적이라는 점 또한 관객이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욕심쟁이가 가난뱅이를 이겨, 월리. 그게 세상의 이치야. -누들-
나는 세상을 바꿀 거야 -웡카-
기업인들에 의해 가게가 무너지고 숙소에 갇힌 누들과 누들을 구하러 온 웡카의 대화이다. 웡카는 세탁소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업인들이 숨겨둔 회계장부-비리내역이 담겨있다-를 찾아내고 그들은 감옥에 가게 된다. 자유를 얻은 세탁소 사람들은 각자의 길에 들어서 저마다의 삶을 이어간다.
웡카에게 초콜릿 요리사의 꿈을 심어준 웡카의 어머니는 뛰어난 요리사였다. 언젠가 그녀에게 물었던 비결을, 웡카는 긴 이야기 끝에서야 깨닫게 된다. '초콜릿 보다 그걸 함께 나누는 사람이 더 중요해.'. 어떠한 목적을 위해, 혹은 삶의 종착점을 위해 달려 나가는 과정에서 무수히 듣지만 늘 잊어가는 사실. 식상함은 때론 중요함의 다른 말이다. 식상하리만치 반복되는 말, 도처에 즐비한 말은 대개 '진리'라 칭할 수 있는 것을 담곤 하니까.
바쁜 일상 속에 흐려지는 마음을, 어린 시절의 동화와 꼭 닮은 이야기를 통해 상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신명 나는 날, 편안히 즐기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