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태어난 지 484일 되는 날
규민아,
너에게 항상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너를 재우고 난 뒤에는 너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잊은 채 시간을 보내느라 글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태어난 지 484일이 되는 오늘에 문득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오늘 네가 여느 때와 같이 건강하고, 씩씩하고, 호기심이 많은, 너의 평소의 모습 그대로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서 이 늦은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았단다.
회사에서 2년이라는 육아휴직기간을 허락해주어서 엄마는 임신 초기에 휴직원을 제출한 뒤로 너와 온전히 붙어있는 시간을 보내왔단다.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캘리그래피, 피아노, 털실로 인형 만들기, 프랑스 자수, 컬러링, 클래식 듣기 등 평소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취미들이 어찌나 재미있어 보이 던 지.. 엄마 자신도 그렇게 여성스러운 취미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놀라움을 느끼면서 태교를 해왔단다. 너를 출산하고 주말에만 서울에 오시는 아빠 때문에 홀로 육아를 한다는 게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네가 성장하면서 엄마에게 보여준 모습들은 엄마만 알고 있는 은밀한 보물 같아서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네 몸의 세포가 급성장을 하듯이 엄마와 쌓인 추억들도 꾸준히 차곡차곡 쌓여있더구나. 어느새 태어난 지 1년이 지나고 너의 성장 속도는 예년에 비해 느려진 것 같지만 너는 여전히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엄마를 놀라킨단다.
아직 너와 함께 하고픈게 너무나도 많은데 엄마는 복직을 앞두고 생각이 많단다. 적어도 만 24개월까지는 주양육자를 바꾸지 말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너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아빠 직장 따라 이사 온 이 곳 부산에서의 직장생활이 녹록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단다. 이 곳에는 시댁도, 친정도 가깝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서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엄마가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단다. 일하는 엄마를 둔 너의 마음속에 엄마의 빈자리가 트라우마로 남아 너의 가슴에 큰 구멍을 남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앞서기도 한단다.
복직하고 나면 너와 함께하지 못하게 될 순간들. 그중에서도 아침밥을 먹고 침대에서 같이 뒹굴거리며 책도 읽고 숨도 못 쉴 정도로 깔깔 웃으며 장난치고, 어린이집에 일찍이 너를 픽업하여 집으로 데려와 목욕탕에서 함께 물놀이를 하고, 집 앞 놀이터에 나가 처음으로 네가 미끄럼틀을 혼자 힘으로 타는 걸보며 느꼈던 행복한 순간들을 매일 보지 못하게 되겠지. 월요일 해가 뜨면 '아! 규민이랑 놀게 어서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자고 있는 네 이마에 입맞춤을 하곤 출근을 하겠지. 정말 상상만 해도 아쉽고 서운하다.
그래서 엄마는 편지를 쓰는 엄마가 되기로 했단다. 언젠가 네가 성장하여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 편지를 읽어주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이해해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그랬구나. 한 마디만으로도 엄마한테는 맘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단다.
오늘은 첫 편지라 수다가 길었네. 내일은 좀 더 간결해지도록 해볼게.
사랑한다 아들,
Behold, children are
a gift of the LORD,
the fruit of the womb
is a reward.
[Psalm 1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