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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Jun 18. 2021

달콤 살벌한 ‘연못’의 추억


태조산이 병풍처럼 둘려있는 유량동 우리 마을

빌딩 숲 같았던 시끄러운 아파트를 떠나, 초록 자연을 벗한 삶은 조용하고 좋았지만 종종 개 짖는 소리만 들려올뿐 사람소리를 듣기는 어려웠다. 이렇듯 조용해도  지나차게 조용하니 조금 외롭게 느껴졌다.


시아버님 표 수제 연못

시아버님은 그런 며느리와 손주들의 마음을 아셨는지 이곳에 빠르게 정을 붙일 수 있도록 우리 집 마당 한쪽에 작은 수제 연못을 만들어 주셨다. 네 명의 손주가 올망졸망 둘러앉아 감상하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소형 물레방아, 앙증맞은 분수, 물풀, 부레옥잠, 수초, 바위와 일곱 마리 비단잉어가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연못이었다.


연못 속 수초들이 무럭무럭 자라 가고 비단잉어들이 유유자적 평화롭게 노닐던 어느 날, 잉어 한 마리 등에 못 보던 하얀 반점이 생겨 있었다. 피부병인가? 괜찮아지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어느 날엔, 잉어 숫자가 줄어 보였다. 돌 틈에 숨어있나? 하며 또 그냥 지나쳤는데, 어라? 이번엔 여러 마리의 잉어 등에 징그러운 하얀 반점들이 퍼져있었다.


뭐지? 피부병이 전염성인가? 모두 다 옮은 건가? 그러고 보니 잉어의 숫자도 확실히 줄어 있었다. 얼굴 찡그리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순 반점이 아니라 누군가 긁어놓은 상처였다. 동물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잉어의 등을 긁어놓은 범인과 마주쳤다.



비단잉어의 천적 길고양이

범인은 바로 물고기의 천적 길고양이였다.

“나는 길고양이가 싫어요” 이승복처럼, 목놓아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단잉어 실종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녀석들에게 우리 집 연못은 뷔페식당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 한 마리 배불리 먹고 돌아서면서, 내일의 낚시를 위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긁어놓았던 것이다. 그래야 잉어의 움직임이 둔해질 테니 말이다. 상상을 하니 내 몸이 다 아픈 기분이다.


시아버님이 연못을 만드실 때 혹시라도 손주들이 빠질까 봐, 수심을 아주 낮게 만드셨다. 그러니 먹이를 먹은 고양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먹을 것이 눈앞에 있어 그저 우리는 감사히 먹었을 뿐이라는 길고양이들의 항변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알아보니, 전원주택의 연못은 겨울 동파를 막기 위해서라도 수심을 최소 1미터 깊이로 만들어야 한단다. 허망하게 예쁜 비단잉어 일곱 마리를 떠내 보낸 뒤, 우리는 더 이상 잉어를 키우지 않았다. 주인 없는 연못은 객들- 물방개와 소금쟁이-의 놀이터로 변해갔다.


그렇게 연못의 시간이 멈춘 어느 여름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였다.


“꾸르릉. 꾸웅 꾸. 꾸룽.”


정체불명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우리 귀에 확성기를 대고 우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머리가 쭈볏거리고, 온몸에 소름이 가시처럼 돋아났다. 우리 가족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엄마! 이게 무슨 소리야?” 아이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물어왔다. “그러게, 이게 무슨 소리지?” 나 역시 질려 있었다.


혹시 이 소리의 정체가 두꺼비일까? 그 늦은 밤에 우리 가족은 머리를 맞대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두꺼비의 울음소리는 “뽀복뽀복” 이렇게 경쾌한 울음소리라니, 밖에서 들려오는 징그러운 소리와는 제법 달랐다. 두꺼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발 아니길 바라는 바로 그 파충류의 울음소리일까? 가슴 두근거리며 영상을 재생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는지.


왼쪽/두꺼비 & 오른쪽/황소개구리


맞다. 황소개구리!

영상으로 보았던 그 징그러운 모습을 실제 마주하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인 없는 연못인 줄은 또 어찌 알고 그곳에 둥지를 틀었을까?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새벽, 쩌렁쩌렁 온 마을에 울려 퍼지는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 ‘야! 이 녀석아 제발 방 좀 빼주세요, 황소개구리님!’ 한껏 주눅이 들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우리는 겨우 잠이 들었다. 다행히도 황소개구리는 다음날 바로 방을 뺐고,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연못에 흙을 덮어 아예 흔적을 지워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연못은 볼 수 없지만, 연못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추억을 선물해 주고 떠났다. 연못이 아니었다면, 한밤중에 온 가족이 유튜브 영상을 찾아 파충류들을 검색해 볼 일이 있었을까? 당시에는 무서웠지만 지나고 보니 가족 모두가 함께했던 즐거운 추억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 연못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 집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못 물속 가득 나무 바람구름이 놀다가 가기도 하고, 무서운 친구들 때문에 연못이 사라져야 했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은 항상, '그때 그 집에는 멋진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함께 계셨다'라고 마무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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