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맑음 Aug 20. 2021

저는 ‘김밥말기의 달인’입니다.


중2 때, 엄마가 ‘김밥집’을 하셨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문을 달아 만든 틈새 가게로, 두 사람 정도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초미니 가게였어요. 김밥, 어묵, 떡볶이, 튀김이 주 메뉴였습니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좋았고 제법 장사가 잘 됐습니다. 오가며 사드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출입 손님보다 ‘김밥 도시락 주문’이 참 많이 들어왔어요. 주말이면 도시락 단체 주문이 50개에서 많을 땐 100개, 150개까지 들어왔습니다. 중학교 시절 주말은, 언제나 김밥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엄마는 초저녁부터 부지런히 재료를 다듬고 준비하셨습니다. 저는 새벽 2시가 되면 김밥을 말기 위해 거실로 나갔어요. 넓은 상 위에는  엄마가 미리 준비해둔 김밥 재료들이 오색찬란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초록 시금치, 주황 당근, 샛노랑 단무지, 노란 계란지단, 빨간 맛살, 진분홍 햄, 검정 김, 김발, 그리고 고소한 참기름, 깨소금, 소금 등등.. 고운 빛깔에 한번 놀라고, 산처럼 쌓여있는 양에 두 번 놀라고, 콧속으로 달려드는 고소한 향기에 세 번 놀랍니다.


드디어, 엄마와 마주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김밥을 말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웃으며 말씀하세요.


현주는 손이 야무져서, 김밥을 돌같이 마네.. 역시 엄마 딸이라 달라.”


손의 힘이 좋아서, 야무져서, 김밥을 돌같이 싼다는 엄마의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김밥을   싸고 싶게 만들었고,  효도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언니는 돕고 싶었지만 김밥을 자꾸 터뜨려서 탈락되었고, 일부러 그런  아닐 테지만, 그렇게 꿀잠을  언니는 저보다 키가 5센티 큽니다. 김밥 200 말기는 오롯이 엄마와 ,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검은색 김밥이 한 줄, 열 줄, 오십 줄, 백 줄이 되면 엄마는 이제 도마 위에 김밥을 올려놓고 썰기 시작하셨고, 저는 200백 줄을 향해 쉬지 않고 김밥을 말았습니다. 그러니 김밥 싸는 실력이 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날이 밝아 새벽 5시 30분이 되면,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남동생이 눈을 비비며 나옵니다. 쪼르륵 차례차례 앉아, 엄마가 김밥을 썰어 도시락 용기에 담아 건네면 후반 작업을 합니다. 언니는 참기름을 솔솔 발라주고, 남동생은 그 위에 깨소금을 총총 뿌립니다. 아빠는 도시락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노란 고무줄을 둘러 마지막 매듭을 짓습니다. 도시락을 다시 커다란 박스에 차곡차곡 눌러 담고 쓰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끈으로 묶어줍니다. 엄마는 함께 먹을 어묵 국이 담긴 커다란 들통을 들고 아빠와 함께 약속 장소로 출발합니다.


그렇게 부모님이 나가시고 나면, 한숨 쉬며 벌렁 드러눕고 싶지만, 전쟁터와 같이 엉망이 된 거실과 부엌을 그냥 볼 수 없어서 언니와 함께 뒷정리를 합니다.


엄마는 미니 김밥집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지하상가에 번듯한(1평 반) 분식점을 차리셨고, 드디어 우리 가족은 김밥 도시락 배달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주말을 되찾았어요. 저의 김밥 말기도 이제 끝이 나는 듯싶었습니다만..


대학시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편의점은 수원역 앞 몫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어요. 역 앞이니, 김밥도 즉석에서 말아 판매를 하고 있었고 유입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장사가 잘됐습니다. 가만 보니, 계산 알바는 1시간에 천 원, 김밥말기 알바는 1시간에 이천 원으로 시급이 무려 두배였어요. 저건 제 밥그릇이나 마찬가지인데 제가 가만있을 수가 있나요? 그래서, 김밥 싸는 친구에게 살짝 귓속말로 이야기했습니다.


“친구야, 혹시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되면, 나에게 먼저 이야기해줘”


그리고 얼마 뒤 친구는 개인 사정으로 김밥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고, 제가 그 김밥 알바를 대신하게 되었어요. 점장님과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보는 앞에서 김밥을 말게 된 첫날이었습니다. 저는 검정 김 위에 포슬포슬 하얀 쌀밥을 거침없이 올려놓고 홍해가 갈라지듯 밥을 양쪽으로 쫘-악! 펼치며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히야, 감탄 소리와 함께 재야의 고수를 바라보듯 놀란 토끼눈을 한 점장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야, 너! 완전히 전문가네?! 밥을 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그리고 속도가 워낙 빨라서 지난번 친구보다 두배 빠르겠어.”


그날 이후, 어디서 이런 김밥 신동이 나타났다며, 저를 아주 귀하게 대접해 주셨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다른 김밥 알바 친구들 김밥 30줄 쌀 때, 저는 50줄을 말았으니까요. 엄청난 속도에 돌같이 단단히 마는 야무짐까지 보유하고 있었으니, 사랑과 인정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엄마의 큰 그림이었을까요?


 엄마!
엄마에게 전수받은 김밥 특훈 덕분에,
편의점 김밥 싸기 알바, 에이스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이름은 부끄럽지만 맛은 부끄럽지 않은 ‘누드김밥’ 말기를 섭렵했고, 불고기 김밥, 김치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등을 싸는 방법도 모두 하사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김밥 달인”이 될 수 있었어요. 편의점 유리 앞에 앞치마를 두르고 앉아 김밥을 열심히 말고 있으면, 친구들이 삼삼오오 지나가다 유리를 톡톡 두드리며 웃어 주었어요. 그 또한 재밌는 추억입니다. 비록 저의 대학시절은, 집, 학교, 아르바이트, 이렇게 삼각 트라이앵글을 그리는 일상이었지만 뜻밖에 만난 김밥 싸기 아르바이트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세아가 중2가 되던 해 봄, 소풍을 간다기에 여느 때처럼 새벽 김밥을 싸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엄마의 음성이 환청처럼 들렸기 때문이에요.


엄마는..
너를 조금이라도 더 재우고 싶어서
어떻게든 혼자 재료 준비 다 하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시간에
널 깨우고 싶었는데...
새벽 2시만 되면,
혼자 알아서 척! 일어나 나오는 거야.
거기다가 졸린 기색도 안 하고,
웃으면서 김밥을 말아주는데...
엄마는 그게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맙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


이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면서.. 중2 딸을 가진 엄마가 되어서야, 그때 엄마의 심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곤히 잠든 어린 세아를 깨워야 한다면 죽어도 못 깨울 것 같거든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친정엄마에게 이 고백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엄마!
저 역시, 일을 시키기 위해
딸의 새벽 단잠 깨워야 한다면..
차마 못 깨울 것 같아요.
그때 엄마의 마음 빛깔이
흑빛이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정확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엄마, 미안해 마세요..
그 시절,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참기름 칠하고, 깨소금 뿌리고
도시락을 준비하던 풍경이
제겐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에요.
엄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계란, 햄, 맛살, 단무지, 시금치, 당근/ 기본이 최고로 맛있습니다.^^

그렇게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지, 주말마다 아점으로 김밥을 주문하는 저희 아이들입니다.


사진을 찍기위해 더욱 정갈하게 담았다는건 안비밀입니다.^^

정갈하게 정성껏 재료를 준비합니다.


일단, 두줄만 썰어서 담아봤습니다.^^

어떤가요? 달인의 솜씨라 할 만한가요? 누드 김밥을 보여드려야 깜짝 놀라실 텐데.. 아쉽습니다.


2021.8.7 토요일 아점으로 만든 김밥입니다.^^

저는 내일 주말 아침에도 여전히.. 정성껏, 사랑의 김밥을 말고 있을 거예요. 추억을 생각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