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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Aug 29. 2021

영화 [세 자매 ] 상처는 마주해야 비로소 치유된다.

영화 “세 자매” 너무 기다렸던 영화라 올해 1월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갔다. 관람객은 중앙에 앉은 50대 여성분 한분과 맨 뒷자리 나 이렇게 딱 두 명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후반으로 갈수록 그분과 나는 마치 박자를 타듯 번갈아 훌쩍였다.


영화는 어두운 밤길을 내복 차림의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흑백의 스크린은 심하게 흔들렸고, 아이들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인트로에서 과거  자매에게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암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가정폭력과 가부장주의의 폐해 다루고 는 영화. 주제가 묵직한 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좋은 영화다.

괜찮은 척, 첫째 희숙 (내가 미안하다.)

괜찮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그지 같다는 말을 달고 사는 첫째 희숙은 이름이 혼자만 돌림자가 아니다. 미연, 미옥 자매는 현재의 엄마가 친엄마지만 희숙은 배가 다른 자식이기 때문이다. 막내 동생 진섭도 엄마가 다르다. ​


아빠는 마치 현재의 아내에게 속죄라도 하듯 술만 마시면 배다른 자식인 희숙과 진섭을 학대하고 무자비하게 때렸다. 어쩌면 아빠에겐 두 사람 모두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저 존재 자체가 죄악이고 부정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학대 속에 자라온 희숙에게 자존감이 있을 리 가 없기 때문에 그녀는 늘 미안하다 내가 잘못이다 괜찮다를 달고 산 게 아닐까. 본인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늘 자신에게 돌린다.


희숙은 날카로운 가시와 나뭇가지를 이용해 몸에 상처를 내서 피를 본다. 처음엔 왜 저러지? 했는데, 후반부를 보고서야 정확히 이해가 되었다. ​매를 맞고 피를 보는 게 익숙했던 희숙은 자신의 삶이 너무 고요하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감이 몰려왔던 게 아닐까. 어느새 폭력에 길들여진 희숙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마약중독자나 알코올 중독자처럼 학대 중독(이런 말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이어서 학대를 끊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희숙. 그녀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곪을 대로 곪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아픈 장면이면서 동시에, 폭력적인 아빠를 증오했을 희숙역시 어느새 아빠의 폭력성을 닮아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참으로 슬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몸은 찢어져 피가 나는데 희숙은 오히려 웃고 있다. 희열 하던 희숙의 복합적인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희숙은 암 진단을 받는다. 어쩌면 예정된 수순 같다. 그 오랜 세월 정신적, 육체적 학대와 폭력을 받아왔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가혹하게도 아버지에게 받았던 폭력은 이제 남편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남편은 희숙이 열심히 꽃집을 운영해 모아놓은 돈을 뜯어가면서도 그녀의 뱃살을 비아냥거린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토록 어둡고 음습한 꽃집은 처음 봤다. 전기세를 아끼려고 그랬다지만, 지금의 희숙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름다운 꽃으로 태어났으나 그녀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아무도 그녀를 예쁜 꽃으로 바라봐 주지 않는다. 빛이 거의 없는 어둡고 음산한 꽃집에서 점점 빛을 잃고 시들어가는 꽃들이 꼭 희숙을 닮았다. 딸 보미 역시 엄마 희숙을 철저히 무시한다. 그들이 미웠지만 사실 그들만 욕할 수는 없다. 엄마 희숙은 피해자인 동시에 딸 보미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인정을 못 받고 자란 희숙은 다소 미숙하고 건강하지 못한 양육을 했을 것이다. 내 눈에는 반항하는 딸 보미 역시 상처로 얼룩진 울고 있는 가여운 어린아이로 보였다. ​엄마 희숙이 온전히 품어 주지 못해서 생긴 사랑의 결핍으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고, 엄마가 웃어야 아이가 웃는다는 말은 진리다. 희숙과 보미 모녀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엄마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장면, 피가 나는데 희열 하는 엄마의 표정을 마주했던 딸 보미.. 보미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음이 무너졌던 장면이다.



완벽한 척, 둘째 미연 (내가 기도하는 거 알지?)

시종일관 고고하게 우아하게 상냥하게 친절하게 내가 기도하는 거 알지? 라며 완벽한 척을 하는 둘째 미연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크리스천들은 알 거다. “기도하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큰 가식인지. 기독교인이 아마도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이 바로 기도하고 있다는 거짓말일 것이다. 나 역시 속으로 뜨끔하고 찔렸다.


둘째 미연은 50평대의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남편은 자랑스러운 대학교수다. 단란한 가정의 표상처럼 남매를 두었으며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 누가 봐도 꽤 성공한 인생이다. ​그러나, 남편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성가대원(남편 대학교 학생)과 바람이 나고 그걸 목격하게 된다. 미연은 떼어내는 방법으로 그녀를 발로 짓밟는 다소 충격적인 폭력의 방법을 쓴다. ​


미연은 어린 시절 언니 희숙과 남동생 진섭이 아빠에게 맞을 때, 말리거나 중재하지 않고 막내 미옥의 손을 잡고(인트로 장면의 주인공) 맨발로 동네 슈퍼로 피신을 갔다. 말리지 못하고 늘 회피했던 방관자였던 자신을 스스로 정죄하며 살지 않았을까 싶다.


미연의 아빠는 교회나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장로였지만 집에서는 학대와 폭력을 일삼았던 두 얼굴의 모습이었다. 미연은 그런 아빠를 미치도록 중오 했지만 아빠와 가장 많이 닮아 있는 딸이 바로 자신이다. 미연 역시 겉으로는 고상해 보이지만 남편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고압적이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이 부분을 가장 잘 설명하는 장면이 바로 식사기도 장면이 아닐까. 매번 정성 들여 음식을 차려놓고도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그놈의 기도로 행복한 시간을 다 날려 버린다. 식사 기도를 잘 못하는 어린 딸에게 “너 그러면 지옥 간다.”는 협박의 말을 서슴지 않는 미연이다. 아이들도 알 것이다, 교회에서는 한없이 상냥한 엄마가 실은 두 얼굴의 위선자라는 사실을. 미연 역시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자신의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는 언어폭력을 일삼는 가해자다.


미연을 둘러싼 배경은 희숙과는 다르게 환하고 밝고 건강해 보이지만 회색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부짖는 장면이 아픈 그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다.



안 취한 척, 셋째 미옥 (나는 쓰레기야.)

글을 쓰는 셋째 미옥은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중학생의 아들을 둔 이혼남과 결혼한다. 남들은 돈 때문에 한 결혼이라 수군댔지만 본인은 착해서 했다고. 이건 진심이었을 거다.


그녀는 상당히 거슬리는 금발머리에 원색의 튀는 옷을 입고 있다. 과자와 술을 입에 달고 살며 말도 툭툭 아무렇게나 거칠게 뱉고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그저 과하고 과하다. 누구든 미옥같은 사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도대체 그녀에겐 어떤 상처가 있길래 이렇게 모든 게 뒤죽박죽 어른이지만 철들지 못한 비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건지 왜 자꾸 스스로를 쓰레기라 하며 알코올에 의존해 사는 건지 그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빠에게 특별히 맞은 기억도 없다. 첫째 희숙과 막내 진섭이 맞을 때면 그저 둘째 언니 미연의 손에 이끌려 맨발로 정신없이 뛰었던 기억과 바닷가 어느 식당에 숨어 들어가듯 들어가 성게비빔밥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전부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부모님 앞에서 해맑게 춤을 추었던 어린 딸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어른이 된 지금 도대체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미성숙한 미옥의 모습을 보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이승윤의 아버지 이재철 목사님의 자녀 교육 중 첫 번째로 강조했던 부분. 바로 “자립”이다.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스스로 해야 한다. 실수조차도 무엇이든 스스로 한 사람이 갖게 되는 것은 “자기만의 영혼”이다.”라고 강조했다.


미옥은 어쩌면 어린 시절 자신을 코치했던 둘째 언니 미연과 여전히 분리되지 못한 어린아이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실수가 두려워 시도조차 쉽게 하지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 어리고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그녀의 엉뚱한 겉모습과 행동에 담긴 게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문제 상황이 오면 언제나 둘째 언니 미연의 뒤에 숨었을 셋째 미옥은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길 때마다 짜증이 밀려올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처럼 보챈다.


“언니가 우리 집에 와서 밥 좀 해주면 안 돼?” ​“나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어”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 ​“언니가 지금 좀 와 주면 안 돼?”


한 인간이 자신만의 건강한 영혼을 간직하고 제대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자립”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스스로 넘어지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 서 본 사람만이 타인 또한 도울 수 있다는 걸 셋째 미옥을 보며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


미옥은 비록 새아들이지만 아들에게만큼은 진짜 좋은 엄마가 돼주고 싶다. ​남편이 아들의 따귀를 때릴 때 “네가 뭔데 애를 때리냐”며 남편 위에 올라타서 폭행하는 장면은 그녀가 희숙과 진섭을 폭행하는 아빠 위에 올라타 “아빠가 뭔데 언니와 동생을 때리냐”는 그녀의 절규처럼 보였다. 절대로 폭행만은 안된다며 그걸 또 폭행으로 저항하는 미옥의 아니러니 함. 어느새 그녀도 증오한던 폭력적인 아빠를 닮아 있는 건 아닐까? 미옥역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마침내! 상처를 마주하다.

아빠의 생신 자리에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상봉을 한다. 식사 중 막내아들 진섭이 생일상에 오줌을 누면서 상황은 일촉즉발의 전쟁터가 된다. 이 장면은 여러 번 되돌려보고 싶은 장면이다. 누구 하나의 표정 한 자락도 버릴 것이 없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사과하세요!
하나님한테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시라고요!


이렇게 말하는 둘째 미연의 외침에 가슴이 쿵! 눈물이 고였다. ​주저주저하다 그냥 돌아서려는 할아버지의 뒤통수에 대고 희숙의 딸 보미가 분노를 터뜨린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사이다 장면이 아닌가 싶다.



아니! CX!
왜 어른이 사과를 못해!
할아버지 우리 엄마한테
사과하세요!
우리 엄마 암이에요!!
암이라고요!!
사과하시라고요!!



보미의 이 외침을 들으며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보미는 집을 나가려다가 엄마 희숙이 “엄마 암 이래, 엄마 조금 무섭다”며 자신의 옷 끝자락을 위태롭게 잡자 엄마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이곳 생일파티까지 따라온 그래도 기특한 딸이다.


아버지는 진심 어린 사과 대신 식당 유리창에 자신의 이마를 쿵! 쿵! 박으며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심 어린 “사과”만이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할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희숙과 진섭은 어린 시절 늘 그래 왔듯 서로 포옹하며 너는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나는 암을 잘 치료해 보자며 부둥켜안았다. 그 뒤로 늘 방관자였던 둘째 미연과 셋째 미옥이 어린 시절 늘 그래 왔듯이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상처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마주하고 드러낸 용기와 미안하다고 사과할 용기만 있다면 벌써 치유는 시작된 거라고 생각한다. ​희숙과 진섭의 곪은 상처가 잘 도려내지고 응어리들이 잘 풀어져 깨끗하게 치료되길 온 맘으로 응원했다. 이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이미 충분하다.


오래전 티브이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과거 가정폭력으로 상처받은 엄마가 딸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훈육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아팠던 과거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세요.
이제 끊어 내셔야 합니다.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어요.
어른이잖아요. 하실 수 있어요.
대물림은 절대 안 됩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과거에 그런 상처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는다. 내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더 멋진 양육을 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드디어! 치유가 시작되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은 가족인가 보다. 가장 가까워서 가장 실수하기 쉽고 함부로 대하기 쉽기 때문에 가장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가장 많은 사과가 필요한 관계가 아닐까 싶다. 곪고 곪아 썩어 문드러진 상처를 어렵게 드러내었으니 이제 따뜻한 햇살 받아 아물고 새살이 돋을 일만 남았다. 바닷가에서 셀카를 찍으며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세 자매의 따뜻한 엔딩에서 윤슬처럼 반짝이는 희망을 본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온 OST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이 곡 때문에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더 앉아있다가 나왔습니다. 영화가 주는 여운과 음악이 딱 맞았어요. 가사도 올려봅니다.


진솔한 마음으로 써본 지극히 주관적인 제 리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괜찮은 가정 폭력은 없습니다. 정당한 가정 폭력도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이소라)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그대  손을 놓쳐서
 길을 잃었죠.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사랑인걸요.

그대  손을 놓쳐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사랑인걸요.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그대 없이  홀로 하려 한다고
나의 이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려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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