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넘어 ‘살아 있고 싶다’는 욕망.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수능날, 진료가 끝난 원장실에서 홀로 앉아 인쇄된 수학 문제지를 잡고 풀어 보았다.
얼마 전 11월 초의 생일이 지나 이제는 만으로도 마흔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읽은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눈여겨보지 못한 사이 지나가버린 시간 앞에서, 나는 아직 괜찮은지 궁금해질 무렵 다시금 수능시험지를 인쇄해 본다. 일 년에 딱 한 번 수험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답은 될 수 없지만,
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그러나 문제도 모르면서!) 하드웨어-두뇌에 대한 불안을 잠시나마 덜어보고 싶어서였다. 데스크 직원 선생님이 출력해 집게로 고이 꽂아놓은 시험지를 바라보며 약간의 불안과 떨림이 밀려왔다.
수능을 치르는 아이들의 마음은 상상도 안 가지만, 나는 조금 다른 핀트에서 떨려했다
초조하게 1번부터 풀어 나갔다.
15번까지는 무리 없이 풀렸다. 다행이었다.
22번에서 고전했지만 결국 해결했다.
시간은 이미 시험 시간보다 훌쩍 넘었지만 상관없었다. 풀어낸다는 것이 중요했다.
공통수학을 다 풀고, 선택과목 중 가장 편해 보이는 확률과 통계를 골라 풀었다.
“복잡하네.. ”라고 중얼대며, 30번에서는 복잡한 가짓수를 나름 정확하게 셌다고 생각했고 채점을 했지만.. 틀렸다.
다시 풀어 이번엔 맞았다. 놓쳤던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다 채점을 해보니 총 세 개 정도 실수가 있었다.
사소한 계산 오류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정말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막상 다 풀고 나니 제법 선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반. 기온은 엄청 떨어진 밤이었다.
몇 개 틀리긴 했지만 끝까지 풀어냈다는 사실에, 긴 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아직은 괜찮네.’
뭔가를 해냈다는 고양감,
아직은 쓸 만한 사고력에 만족한 채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옆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거울 속에는 창백한 불혹의 남자가 볼펜을 입에 물고, 수학 계산으로 가득한 종이를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방 안은 쌀쌀했고 히터는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냉혹한 현실이 전신을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새벽까지 집에도 가지 못하고 원장실에 혼자 남아 스스로를 위로해 보는 남자.
수능 수학을 풀어냈다는 뿌듯함은 여전히 미혼인 채 차가운 방 안에서 문제를 붙잡고 덜덜 떨며 집중하던 얼굴과 겹쳐 묘하게 뒤섞였다.
뿌듯함이 지나가고 씁쓸함이 검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방 안의 한기로 발 끝이 시렸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한 채, 어디로 던져볼 용기보다 익숙하고 안전한 무언가를 붙잡고만 있었던 건 아닐까. 하드웨어가 아직 쓸 만하다는 확인에 안도하며, 그 확인 속에 과거에 안주하려 한 나약함이 스며 있었던 건 아닐까.
추운 방 안에서 뜨거운 히터를 끌어안고 문제를 풀던 내 모습은 오들오들 떨면서도 ‘아직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악착같이 증명해 보이려던
내 안의 또 다른 나
그 위태롭고 집요한 내면 그대로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