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뭘 해야 잘 쓸 수 있죠?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더라?
대학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 학과는 안 갔을 거다. 먹고 사는 데 그다지 도움되는 과가 아니기 때문이다(아마 시간을 되돌린다면 심리학과 지원했을 듯). 하지만 그렇다고 배운 게 없는 건 아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학과에 들어갔고, 졸업할 때에는 꽤 늘어서 나왔으니까. 귀감이 될 만한 선배들과 친하게 지냈고, 좋은 책을 많이 읽었고, 열심히 습작을 썼다.
졸업한 이후에는 패션SNS홍보 업무를 시작했다. 돌아간다면 역시 그 직종은 택하지 않을 것이다. 패션도 SNS도 내 길이 아닌데, 그걸 아는 데 3년이나 썼기 때문이다. 3개월이면 알 수 있는 거였는데 왜 그렇게 오래… 하지만 거기에서도 배운 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름시름 앓았던 패션에 대한 짝사랑을 버릴 수 있었고, SNS 홍보는 요새 시대에 득이 될 만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 직장이었고 업무도 빡셌기 때문에, 신입이 배워야 하는 업무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모두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직장에서 3년이나 버티는 맷집도 길렀다. 그래도 역시 돌아간다면 그 직종은 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간간히 글을 쓸 기회가 생겼다.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글을 썼다. 나 자체가 뭘해도 열심히 하는 돌쇠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했다. 별로 흥미있는 분야에 대한 글이 아니어도 자료조사를 위해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띄워 밤새서 관련 자료를 통동했다.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도 아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했다.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헤밍웨이도 초고는 걸레를 쓰는데 내가 뭐라고 초고부터 문장 완벽하게 뽑아내려고 고민하는가. 초고는 모름지기 빨리 뽑고, 하루 지나서 리프레시된 두뇌로 다시 봐서 수정하는 게 최고다. 그래서 마감은 늘 시간 맞춰 여유롭게 지켰다. 완성도도 놓쳐본 적 없다고 내 나름대로는 생각한다.
그러다 깨달았다. 글 쓰는 일이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고. 그러니 더 나이먹기 전에 제대로 글쓰기에 매진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면 대학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글만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건 프롤로그다. 무엇에 대한 프롤로그냐면, 글쓰기에 대한 고민의 기록인 동시에 고민을 해결하는 솔루션의 기록이다. 깔끔하게 제목을 붙여 보면,
누구 같은 글을 쓸까?
… 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올바른 목표설정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왜 목표가 중요할까? 다이어트에 빗대서 설명하도록 하자.
다이어트에 돌입할 때 패션모델이나 아이돌 사진을 참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패션모델과 나의 몸은 굳이 지방량이나 근육량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요소가 다르다. 타고난 뼈대의 굵기, 사지의 길이, 신체의 비율 등은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 애초에 이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만 다이어트가 끝났을 때 만족할 수 있다. 헬스 트레이너들이 세간의 완벽한 몸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근력량 증가, 체지방 감량 등의 개인적인 숫자를 목표로 지정해주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내가 목표하는 '잘 쓴 글'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처럼 잘 쓴 글이 아니라, 내가 나처럼 잘 쓴 글이다. 내가 세상을 살며 키워 온 내 시각과 내가 이해한 세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업그레이드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목표를 잡아야 할까? 나는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은' 글은 없다.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내가 가장 쓰고 싶어 하는 글은 픽션이라는 걸 전제하고 말해 본다.
● 논리의 뼈대가 잘 세워진 글
● 비유가 신선하고, 리듬감이 좋은 글
● 대사를 찰지게 구사하는 글
이것은 마치 RPG 게임 같은 것이다. 검술을 올리고 싶다면 검으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마력을 높이고 싶다면 마법을 많이 써야 한다. 글쓰기를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라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정 스탯을 더 높일 수 있는 책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것은 친구와의 고민 끝에 내린 나만의 '레벨업 키트'다.
1. 논리를 키우고 싶다면? 기사를 읽자.
신문기사는 논리를 키우고 싶을 때 가장 많이 추천된다. 기자들은 이곳저곳 흩어진 정보들을 모아 기승전결의 구조에 맞춰 나열하며, 여기에서 상상하지 못한 인사이트를 끌어낸다. 전기회로를 연결하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다. 작업 과정은 극도로 신중해야 하고, 작업이 끝난 후에는 막힘없이 흘러 완전히 새로운 결론을 창출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과연 우리나라 기레기가 이를 얼마나 뒷받침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매일매일 신문을 구독해서 읽는 것은 시간관계상 상당히 어려운 일이므로, 보다 정밀하게 압축된 고퀄리티의 주간지 기사를 읽기로 했다.
2. 비유를 잘 하고 싶다면? 시를 읽자.
비유, 리듬과 운율. 극단적으로 말해 시인은 평생 그것만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쓴 시는 상상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지평의 언어로 독자를 데려간다. 내가 굳이 시를 쓸 건 아니니까, 거기에서 멋지다 싶은 비유 있으면 살짝 들고 와서 내 식으로 재해석해서 써먹을 생각이다.ㅎㅎ
3. 대사를 잘 쓰고 싶다면? 스티븐 킹은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주의깊게 들으라고. 나는 생각했다. 대사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한 드라마를 보자고.
스티븐 킹은 아주 맞는 말을 했다. 실제 사람이 말하는 것만큼 대사를 쓰는 데 좋은 방법론은 없다. 문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람들 사이에 뛰어드는 건 좀… 그래서 그 방법은 잠시 제쳐두고, 드라마를 보면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해서 보기로 했다. 단점이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정신 차려 보면 대사가 아니라 스토리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려나.
이 매거진의 글들은 내가 이 방법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하지만 나름 실용적인 방법들의 기록이 될 것이다. 이게 맞나 싶어서 때로는 덜컥덜컥 흔들리겠지만, 어차피 아무도 정답을 모를 것 같으니 나름 자신있게 시도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뭐, 비장할 필요 없다. 어쨌든 수많은 기사와 시와 드라마를 본다는 건 좋은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