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걸 지금 이야기하냐면
2020년 6월, 자려고 누웠을 때 밤의 어둠 속에 무언가 반짝 떠올랐다. 확고한 문장이었다.
2년 내에 웹소설 작가가 되지 못하면
직장생활 다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겠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홈런을 맞고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면서 문득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는데, 그보다는 덜 상큼한 그림이어도 충격은 비슷했던 것 같다. 직장생활에 꿈은 없어도 미련은 있었다. 아슬아슬 이어가는 서울살이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잊고 살던 어린 시절의 숙원이 그렇게 또렷한 색채를 띠고 다가올 줄은 몰랐다.
2년, 목표를 이루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으로 보였다. 밑천은 하나도 없었다. 웹소설 업계는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3달 후, 나는 첫 계약서를 등기로 전달받게 된다.
과거를 알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나라의 중대사도 그렇게 예측할 수 있는데, 한낮 뚠뚠 개미에 불과한 나 정도의 역사야 한 번 제대로 짚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게다가 2020년의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시도했고, 많은 걸 성공했고, 많은 걸 실패했다. 이걸 정리하면 내 삶의 방향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1. 드디어 만족스럽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갓난아기 때 나는 자려고 불 끄면 울기 시작해서 아빠가 출근하면 잠드는 아기였다고 한다. 엄마는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나는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도 그럴 게, 난 평생 잠으로 고생한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잠드는 게 너무 어려웠다. 자려고 불을 끄면 어두운 게 무서웠고, 뒤척거려도 잠은 안 오니 자연스럽게 늦게 자게 되었다. 학교에 가면 긴장이 풀려 그대로 교과서 펴놓고 엎드려 잤다. 그냥 계속 잠을 잤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그랬다. 수업을 듣는 습관이 잡혀 있지 않았으니 대학에서도, 학원에서도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야행성 인간인 걸 받아들여 밤과 새벽을 만족스럽게 채운 것도 아니었다. 불안감을 잠재우고자 인터넷과 SNS에 매달렸다.
그런 내가 드디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법을 익혔다. 생산성 있는 하루가 어떤 것인지,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면 되는지 3n년을 살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미라클 모닝을 하며 오전 4시에 일어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규칙적인 삶은 정말 기분이 좋다. 나는 앞으로 어떤 성취를 이루더라도 이 기분을 잊지 않을 것이다.
2. 술을 줄였다. 술을 먹지 않은 주말의 기쁨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번의 연장선상에 있다. 술을 마시니 다음날 최소 오후까지는 늘어지게 되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아깝다 보니, 아무리 주말이라 해도 하루의 절반을 날리는 음주는 자제하게 되었다. 그래도 술을 좋아해서 매번 아쉽긴 하다 :(
3. 수익의 파이프라인을 늘렸다. 하나 하나는 큰 수익이 아니어도, 모이면 만족스럽더라.
지난 2~3년간 나는 월급을 버는 한편 외주로 추가 수익을 올렸다. 작년은 여기에 추가 수입을 더할 수 있었다. 웹소설 작가로 버는 부가 수익이 더해진 것이다. 약간이지만 수입의 파이프라인이 늘어난 게 의외의 여유를 더 가져다 주었다.
4. 운동을 규칙적으로 했고, 줄어든 몸무게를 픽스했고, 운동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꾸준하게 하는 건 어려워하지 않는 편이라, 일주일에 적어도 2~3일씩은 나가게 되었다. 이 헬스장은 PCS 프로그램이 있는 곳이었다. 퍼스널 트레이닝까지는 아니어도, 헬스 트레이너가 운동 프로그램을 짜주고 짧게 관리도 도와주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유산소와 무산소를 섞어서 운동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헬스클럽이 자꾸 문을 닫아서 호흡이 끊기는 게 아쉽지만, 이만큼 운동을 꾸준히 한 적도, 즐겁게 한 적도 없었다.
5. 웹소설 작가로 데뷔했다.
이것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짧게 줄이지를 못하겠다. 그냥 글을 새로 팔 것임.
1. 브런치를 꾸준히 쓰지 못했다.
내 브런치를 보면 아시겠지만 소재의 난삽함이 이루 말할 데 없다. 브런치는 아예 오프토픽으로 내 삶을 기록하는 기록장으로만 쓰자! 라고 생각했지만… 그 방법조차도 중간에 끊겼다. 변명거리야 많다. 작년에 새로 도전하는 일을 하느라고 시간이 없었고, 다른 자기계발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못 한 건 못 한 거지. 작년의 실패 1. 땅땅.
2. 음악 평론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역시 이 브런치에 있는 콘텐츠들이다. 지금도 나는 K팝의 열렬한 팬이다. 글도 나름 쓰는 편이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참고용으로 다른 K팝 칼럼들을 뜯어볼수록 내 글의 부족함이 넘치더라. 좋아하는 만큼 지식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음악에 매진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좋은 평론을 즐겁게 읽는 영원한 리스너로 남기로 했다.
3. 2킬로가 줄었는데 2킬로를 더 줄이지는 못했다.
장점의 4번에 몸무게를 줄인 게 성공이라고 썼다. 맞다. 그러나 더 줄이지 못한 게 실패다. 원래는 4kg 감량이 목적이었거든. 그런데 2kg을 뺐다. 절반의 성공이었으니, 절반은 실패다. 현재는 16:8의 간헐적 단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면 후기를 쓸게욥…
4. 동학개미 합류 실패
점 보면 칼같이 '주식 하지 마라'라고 뜨는 게 나다. 남들은 다 해도 내가 못 하면 못 하는 일이다. 해보니까, 난 진짜 주식은 안 되겠더라. 빚지는 거 빼고 하지 말라는 건 다 했다. 변하는 숫자 보고 쫄아서 돈 집어넣기, 하루 떨어졌다고 소리지르며 빼기, 오르는 거 보며 다시 넣기… 그걸 보면서 깨달았다. 장이 좋아도 나같은 쫄보에게까지 좋을 수는 없다. 재테크를 한다고 해도, 개별 주식에 투자하는 방법은 절대로 할 수 없다. 나는 내 업무와 내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5. 그 외
야심차게 맞춤법 공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교정교열이 너무 재미가 없더라고요. 거기에 쏟을 시간을 다른 공부에 쓰기로 했습니다. 실패.
그런데 어학 공부도 못 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한 건 좋은데, 하루에 3개 이상의 큰 덩어리 일을 하면 몸이 못 견디겠더라.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고민하며, 실패.
종이 신문을 읽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들었다. 형광펜으로 밑줄 치며 스크랩을 하면 정말 한도끝도 없이 시간이 들어갔다. 나는 하는 게 너무 많았다. 실패.
나는 그래도 2020년이 좋다. 시도해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즐거움을 알려준 한 해였으니까. 시도라는 게 칼로 자르듯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이때 깨달은 것들이 나의 2021년 한 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후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오늘 풀어본 2020년의 소회는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긴 목차와 같다. 이제 이 브런치는 제 머릿속을 지배했던 잡념과, 그럼에도 한 발짝 어떻게든 내디뎠던 역사로 채울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