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을 돌아보면 언제나 천상에서 들려오던 목소리
2월 4일. 오늘은 팝 음악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듀오 카펜터즈의 보컬, 카렌 카펜터가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43년이 되는 기일이다. 수많은 장르가 흥했다 사라지고, 음악을 듣는 방식도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맘때면 라디오 주파수에 실려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목소리가 있다. 우리가 다시 불러 마주해야 할 그 이름, 카렌 카펜터다.
'Yesterday Once More'의 도입부는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렸다는 가사는, 당신이 어떤 세대든 간에 음악과 함께했던 그 간절한 순간들과 맞닿아 있다. 카세트테이프를 돌리며, MP3 파일을 다운로드히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며 우리가 기다렸던 그 설렘처럼.
그녀는 고음의 화려함에 기대지 않는 싱어였다. 낮고 깊은 음역대에서 오히려 묵직한 호소력을 쏟아냈으며, 그 울림만으로 공간 전체를 장악했다. 청중의 영혼을 흔드는 것은 기교 섞인 고음이 아니라, 그 시절의 공기를 단숨에 소환하는 그녀만의 독보적인 중저음이었다. 인위적인 슬픔이 아닌 목소리 그 자체가 지닌 무게감. 그것이 카렌 카펜터가 지닌 음악적 품격의 본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곡의 진짜 메시지인 2절을 종종 외면하곤 한다. 1절의 설렘에 취해 "그때가 좋았지"라고 회상하는 사이, 그녀는 2절을 통해 뒤돌아본 이들의 서글픈 자각을 노래한다. 세월이 지나 옛날을 뒤돌아보니, 나를 스쳐 간 좋았던 시절들이 오히려 오늘을 더 슬퍼 보이게 만든다는 고백.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렸고(So much has changed), 그 오래된 멜로디들이 세월을 녹여내듯 흘러가 버렸음을 그녀는 담담하게 읊조린다.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안다. 그 가사가 얼마나 흔한 이별과 회상의 이야기인지. 하지만 그 평범함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서글퍼진다. 그 평범한 가사 한 줄에 온 세상을 잃은 듯 울어버리던 뜨겁고 순수했던 감정조차, 이제는 다시 소환할 수 없는 '지난날'로 멀어져 버렸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2절의 가사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그 노래들은 이제 오늘을 더 고독하게 만드는 배경음악이 되었다.
카렌 카펜터는 천사 같은 목소리를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완벽주의자였던 오빠 리처드의 그늘에서, 어머니의 차갑고 높은 기대 아래에서, 그녀는 점점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섭식장애는 그녀의 몸을 서서히 갉아먹었고, 32세의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다 결국 자신을 잃어버린 한 여성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남긴 곡들을 듣는 동안 우리는 삶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이 곡은 명확한 마침표 대신 서서히 멀어지는 페이드 아웃(Fade-out)을 택한다. 소리는 점차 잦아들지만 그 리듬과 선율은 기억 속 어딘가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듯한 환상을 심어준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처럼, 그녀가 떠난 이후 40여 년이 흘렀어도 진정 고마움을 말하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오늘 이 곡을 준비했다. 노래가 끝난 뒤 밀려오는 긴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고백한다.
누구나 간절히 바라지만, 지난날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지만 당신이 그 지난날 속에 있어줘서, 당신의 목소리가 우리 곁에 남아있어서,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