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비즈니스다(3): 김영덕 감독의 빛과 그림자 下

인생이란 반드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by 동물의삽

1. 시스템의 몰락과 엄혹한 대가


'프로는 비즈니스다 (상/上) 편'에서 보았듯, 김영덕 감독의 '전능한 효율성' 시스템은 1982년 OB 베어스에게 원년 우승이라는 최고의 성과를 안겨주었죠. 그러나 그 대가는 에이스 박철순 투수의 부상과 불투명한 미래를 남긴 비극적인 희생이었습니다.


시스템이 핵심 자원(박철순)을 소진한 여파는 1983년 OB의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고, 김영덕 감독은 결국 '일본 유학'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OB 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요. 시스템의 단기 성과 극대화 전략이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며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2. 비즈니스 vs 비즈니스: 삼성과의 전격적인 계약과 김성근과의 마찰


그러나 김영덕 감독의 사임은 시스템의 종료가 아닌, 더욱 냉혹한 비즈니스 전쟁의 서막이었죠. 그는 OB에 사퇴 의사를 밝힌 지 불과 10여 일 만에 경쟁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야구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11일 만에 갈아입은 삼성 유니폼)


이 사건은 OB의 차기 감독으로 내정되었던 김성근 코치에게 예전 삼성의 제안이 있었던 것이 어떤 뜻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 사이 냉큼 삼성으로 옮긴 김영덕 감독에게 '감독직 가로채기'라는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두 명장은 선후배 관계에서 앙숙 지간이 되어버렸죠. 이 갈등은 1984년 시즌 중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아시죠? 김성근 감독님도 자비가 없는 분이라는 거..)


당시 OB 선수들은 김성근 감독의 묵인 하에 삼성 벤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는데요. 특히 신인 포수 배원영은 선배들의 부추김에 김영덕 감독을 향해 "변태, 변태"라고 조롱했는데, 김영덕 감독은 경기 후 OB 더그아웃으로 찾아와 배원영의 뺨을 때리며 "니들이 그러고도 프로냐!"라고 일갈했습니다.


이 사건은 감정적 배신감(OB 선수)과 시스템의 규율(김영덕)이 충돌한 상징적인 장면이었죠. 김영덕 감독에게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성과를 위한 엄격한 통제였고, 개인의 감정은 그 통제 아래에서 철저히 무시되어야 했습니다.



3. 1984년: 통합 우승과 '결과 지상주의'의 절정


김영덕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자신의 '전능한 효율성' 시스템을 다시 한번 입증했는데요. 그는 1984년 삼성의 압도적인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이길 줄 아는 감독'이라는 명성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는 '프로는 비즈니스다.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한다'는 그의 철학이, 당대 KBO 리그의 구조적 환경에서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했음을 보여주는 성적표와 같았죠.


4. 윤리적 마지노선: 져주기 논란과 최동원의 4승


그러나 이 승리 지상주의는 곧 비즈니스 윤리의 마지노선에 도전하게 되었는데요. 삼성은 후기리그에서 한국시리즈 상대로 OB를 피하기 위해 자이언츠에게 의도적으로 패배(져주기 논란)하는 선택을 합니다. 김영덕 감독의 '시스템의 효율'은 경쟁팀에 대한 적대감과 승리 확률 극대화라는 목표 앞에서 스포츠맨십이라는 윤리적 규범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최동원.jpg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스템의 계산은 인간적 투혼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롯데의 에이스 최동원 투수가 홀로 4승을 따내는 전설적인 활약에 패배하며 전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주었죠. 이는 '시스템의 냉혹한 전략'이 '개인의 신념과 인간적인 투혼'이라는 압도적인 변수를 예측하지 못하고 패배한 가장 극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



5. 시스템의 최종 유산: 빙그레, 영광의 준우승을 반복하다


김영덕 감독의 마지막 커리어는 빙그레 이글스에서 펼쳐졌는데요. 그는 창단 3년 차의 신생팀인 빙그레의 감독을 맡아 장종훈을 '연습생 신화'에서 리그 최고 타자로, 이상군, 한희민을 에이스로 키워내는 등 미가공의 재능들을 시스템으로 고속 성장시키는 리빌딩의 귀재였습니다.


(빙그레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중심, 장종훈 선수)


그의 시스템 덕분에 빙그레는 강팀으로 군림하며 네 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번번이 김응룡 감독의 해태 타이거즈에게 무릎을 꿇으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게다가 1992년에는 마치 최동원을 연상시키듯, 안경 쓴 에이스 염종석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역투로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자이언츠와의 리턴 매치를 통해, 5년간 4번의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얻었음에도, 또다시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이글스 팬들에게는 굉장히 아쉬운 순간이었는데요. 하필 그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한국시리즈에서는...


또다시 금테안경을 쓴 에이스가 8년 만에 돌아와 자신의 팀을 꺾는 평행우주가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진 만큼, 김영덕 감독의 안타까움은 더했을 듯합니다.


이러한 준우승 징크스는 김영덕 시스템의 씁쓸한 역설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시스템은 '최고의 효율성으로 강팀을 만드는' 능력을 입증했으나, '최종 승리(한국시리즈 우승)'라는 궁극적인 결과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김영덕 감독은 혹사와 져주기 논란을 감수하며 결과 지상주의를 외쳤지만, 시스템의 창시자로서 완벽한 성과를 완성하지 못한 영원한 이인자라는 딜레마를 남겼습니다. 그의 유산은 '프로는 비즈니스'라는 명제에 가장 필요한 시스템의 효율을 제시했으나, 동시에 시스템이 극복하지 못한 인간적 한계와 윤리적 책임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로 남겼습니다.


(김영덕 감독의 말년 모습입니다)


김영덕 감독은 이글스 감독을 끝으로 다시는 프로야구 1군 감독을 맡지 않았는데요. 그 뒤에는 이글스 이후 다시는 타 팀의 1군 감독을 맡지 않겠다는 한화 김승연 회장과의 약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KBO 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기록 중의 하나인 원년 우승 감독인 동시에, 져주기 논란이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야구 인생을 살았던 김영덕 감독님은, 어찌 보면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목표 달성과 생존을 가장 먼저 추구했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의 삶은 공과 과가 공존하지만, 내년 세워질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에는, 아마도 감독들 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언급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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