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품격(4): 스필버그와 야누스 카민스키

유한한 인간의 서사를 영원한 빛의 기록으로 치환하는 법

by 동물의삽

1991년, 이미 전 세계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던 스필버그는 TV 영화 <와일드플라워>를 보다 멈칫한다. 화면을 타고 흐르는 빛의 질감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곧장 이름도 생소했던 폴란드 출신의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를 찾아냈다. 누군가는 이를 거장의 단순한 픽업이라 불렀지만, 결과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각적 파트너십’의 탄생이었다.


스필버그는 존 윌리엄스를 일컬어 "내 영화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지만, 그것을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윌리엄스의 음악이다."라고 극찬했었고, 또한 그의 촬영 감독인 야누스 카민스키에 대해서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앞에 진짜 아티스트가 서 있다는 걸 알았다.”라는 말로 앞으로 계속 이어질 그들의 동반자 관계를 암시했다.




1. 쉰들러 리스트


https://youtu.be/j1VL-y9JHuI

그들의 첫 협업작 <쉰들러 리스트(1993)>는 스필버그 개인에게나 할리우드 역사에나 거대한 분기점이었다.

카민스키와 스필버그의 협업이 단순한 기술적 결합을 넘어선 예술적 승화였음을 증명하는 단 하나의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쉰들러 리스트>의 '빨간 코트의 소녀'일 것이다. 모든 인간성이 소멸해 가는 학살의 현장, 무채색의 절망 사이로 홀로 붉게 일렁이던 그 작은 실루엣은 관객의 망막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는다.


카민스키는 화면 전체의 질감을 철저히 억제함으로써 그 미세한 색채가 가진 '생명의 무게'를 극대화했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 강조를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방관자였던 쉰들러가 비로소 참혹한 현실을 개인의 비극으로 직시하게 만드는 '윤리적 섬광'이었으며, 훗날 시신 더미 속에서 발견되는 그 빛바랜 빨간색은 스필버그가 세상에 던진 가장 고요하고도 처절한 증거였다. 이 찰나의 붉은빛은 이후 그들이 펼쳐낼 수많은 시각적 실험들이 결국 '인간의 존엄'이라는 하나의 과녁을 향해 있음을 선언하는 서막과도 같았다


그전까지 스필버그는 기술상과 미술상에 익숙한 '재능 있는 흥행술사'였으나, 카민스키가 빚어낸 흑백의 엄숙한 빛 안에서 비로소 '작품상'과 '감독상'이라는 왕관을 거머쥐며 진정한 거장으로 추대받았다. 카민스키는 스필버그의 서사에 결핍되어 있던 고전적 품격과 리얼리티를 채워 넣었고, 두 현역 거장은 이때부터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며 영화적 동행을 이어오고 있다.




2.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전쟁 영화의 역사는 이 작품의 전과 후로 나뉜다. 단순히 영화의 스케일 때문만은 아니다. 카민스키는 ‘표백 바이패스(Bleach Bypass)’ 기법으로 희망의 밝은 채도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죽음의 공포와 금속성의 섬찟한 탄피들을 채워 넣었다.


https://youtu.be/cuVrVDnVXuQ

도입부 오마하 해변의 20분은,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는 ‘체험’의 시간이었다. 관객을 지옥의 한복판에 밀어 넣음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반전(反戰) 메시지를 던진 이 작품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캐릭터를 유지하는지를 집요하게 포착해 냈다.


또한, 카민스키의 카메라는 폭발하는 전장 속에서도 캐릭터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손을 떠는 밀러 대위의 고뇌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업햄의 눈동자...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집요하게 포착한 촬영은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물이 아닌 인류학적 보고서로 격상시켰다.




3. A.I.


비록 개봉 당시 호불호가 갈렸으나, <A.I.>는 스필버그와 카민스키가 도달한 가장 과소평가된 걸작이다. 완벽주의자 큐브릭이 설계한 차가운 디스토피아 위에 스필버그는 특유의 온기를 덧입혔고, 카민스키는 이를 장르를 넘나드는 빛의 변주로 완성했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라는 천재적인 아역 배우는 큐브릭이 꿈꿨던 안드로이드 그 이상이었다. 그가 어머니에게 바치는 유통기한 없는 맹목적인 사랑은, 가변적이고 비겁한 우리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눈부시고 고결한 ‘순백’이었다. 지골로 조(주드로)의 화려한 네온이 걷히고 남은 그 시린 백색광은, 질책이 아니라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순수함에 대한 경외였다.


https://youtu.be/C3mTJsBfjr4

출처: JoBlo originals

영화의 끝, 인간들이 사라진(혹은 떠난) 먼 미래의 지구를 지키는 초월적 존재들은 외계인이 아니다. 그들은 데이비드가 지켜온 ‘사랑’이라는 데이터를 계승해 진화한 데이비드의 후예들이다. 창조주는 사라졌으나 피조물은 창조주가 심어준 가장 아름다운 오류인 ‘사랑’을 우주의 유일한 질서로 복원해 낸다.


큐브릭은 죽었지만 그의 의지는 스필버그와 카민스키라는 현역 거장들에 의해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진화하고 있다. 기술은 큐브릭을 멈춰 세웠으나, 사랑(낙관)은 스필버그를 걷게 했고, 카민스키는 그 길을 가장 찬란한 빛으로 닦아냈다. 이들이 빚어낸 빛의 궤적은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데이비드의 눈동자 속에 영원히 남을, 인류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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