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품격(9):캐롤 킹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는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by 동물의삽


캐롤 킹의 목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971년 발표된 앨범 <Tapestry>에 수록된 "You've Got a Friend"를 들을 때마다, 그 꾸밈없는 음성이 고막을 직격 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 정말로 내 옆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 곡은 표면적으로 "당신에게는 친구가 있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북풍이 불기 시작할 때,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달려오겠다는 약속. 아름다운 우정의 찬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202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런 친구가 과연 있을까?



현대인의 일상은 바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 안에서 견고한 성을 쌓고 산다. 퇴근 후에는 지쳐서,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로, 명절에는 가족 행사로 채워진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여유를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간표를 재조정해야 하고, 그것은 곧 자신의 균형을 흔드는 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다. 타인의 영역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으려 하고, 내 영역 안으로 누군가를 깊이 들이는 것도 경계한다. "혹시 내가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이 정도 고민으로 연락하는 게 부담스러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다면 가족은 어떨까. 부모, 형제, 배우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말하기 어려운 고민들이 있다. 부모에게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고, 형제에게는 비교당하는 것이 두렵고, 배우자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망설여진다.


만약 가족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혼자 쓸쓸히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You've Got a Friend"를 다른 방식으로 듣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누군가가 나에게 불러주는 곡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불러주는 곡으로. 거울 앞에 선 나 자신을 바라보며, "당신에게는 친구가 있어. 바로 여기, 당신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한 채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려 하면, 그 손길은 진정성을 잃는다. 자신의 고독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의 외로움을 달래려 하면, 그 위로는 공허해진다.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이기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을 온전히 돌보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도 온전히 돌볼 수 있다. 스스로에게 "괜찮아, 네가 느끼는 감정은 당연한 거야"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도 존중할 수 있다. 자신의 실패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의 실수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캐롤 킹이 피아노 앞에 앉아 이 곡을 작곡했을 때, 그녀 역시 혼자였을 것이다. 송라이터로서의 화려한 성공, 결혼 생활의 파탄, 새로운 출발. 그 모든 순간들을 거치며 그녀가 발견한 것은 아마도 이것이 아니었을까. 가장 어두운 밤,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오는 존재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자신을 친구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위로가 시작된다는 것.


"Winter, spring, summer, or fall, all you have to do is call." 어느 계절이든, 부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잊는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를 부르는 것을. 거울 속의 그 사람, 매일 아침 깨어나 함께하는 그 사람, 모든 기억과 상처를 다 알고 있는 그 사람. 바로 나 자신을.


누군가 "You've Got a Friend"를 틀 때, 이제는 이렇게 들어보길 권한다. 이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부르는 노래라고. 당신은 이미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를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 친구는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https://youtu.be/Hnu53l7brEE?list=RDHnu53l7brEE

그렇게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에게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캐롤 킹의 목소리가 꾸밈없이 우리 고막을 직격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진실한 사랑의 형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사랑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


위대한 싱어송라이터가 남긴 이 걸작은, 그래서 여전히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이 곡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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